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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마이크 플래너건의 힐하우스의 유령을 보고

by 격암(강국진) 2018. 10. 29.

세상을 점점 장악해 가는 듯한 유명 기업들이 있다. 아마존이 그렇고 테슬라가 그런데 넷플릭스도 그런 것같다. 넥플릭스에서 자체 제작하는 컨텐츠들이 점점 좋아져서 이제 넷플릭스는 방송계의 생태계를 바꾸고 있는 것같다. 이런 넷플릭스에서 공포 드라마 힐 하우스의 유령을 방송했다.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으므로 여기에 잠깐 소개를 할까 한다. 모두 10부작인 힐 하우스의 유령은 셜리 잭슨의 고전 호러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며 스티븐 킹은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샤이닝이라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힐하우스의 유령은 거의 성과 같은 큰 집을 고쳐서 팔려고 들어온 부부와 그들의 다섯아이들 그리고 그 집 자체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공포드라마이므로 죽음과 유령이 나오지만 이 드라마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그런 뻔한 장치가 아니다. 사실 근래의 좀비영화나 액션영화에 비하면 이 드라마에는 잔인한 장면은 거의 안나온다고도 할 수 있어서 과거에 인기있었던 링이라던가 여고괴담류의 공포영화와 힐하우스의 유령은 확실한 차이가 있다. 


모든 훌룡한 영화나 드라마가 그렇듯이 힐하우스는 기본적으로 시각적 아름다움과 설득력있는 근사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마치 18세기의 영국의 성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집인 힐하우스는 그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동상들과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원작 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세익스피어의 작품들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가 세익스피어 연극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중의 하나인 엄마가 입고 나오는 옷들도 매우 고풍스럽다. 그래서 힐 하우스의 유령은 21세기가 배경인데도 마치 18세기의 유럽 어딘가에서 일이 벌어지는 것같은 고전적 분위기가 있으며 그것이 이 드라마를 다른 미국드라마와는 다르게  느끼게 만든다. 무엇 보다 그런 고전적 분위기가 이 드라마를 사색적인 것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철없는 미국 청년들이 귀신나오는 집에 들어가 비명을 꽥꽥질러대다가 모두가 죽고 마는 어리석은 이야기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것은 배우중 하나가 독백을 시작하면 한두페이지는 될 것같은 긴 대사를 말하며 자신의 심리를 설명하는 드라마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진짜 주제는 유령이 아니라 소통이다. 이 드라마의 주요 출연인물들인 부부와 오남매는 모두 비밀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집에서 살았고 같은 사건을 겪었는데도 그것에 대해서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기억한다. 자신이 본 것이 유령인지 실제인지도 잘 모른다. 소통이 불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감정과 비밀을 숨기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그게 매우 답답한데 그것때문에 사람들이 다들 헛소리를 끝없이 늘어놓으며 서로에 대해 오해를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단순히 사람들이 용기가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말을 해도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다를지는 몰라도 각자가 정상이라고 믿는 현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는 서로가 서로에게 그 정상상태를 기준으로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자신의 비밀을 말하면 자신이 미친 사람취급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힐하우스는 각자가 가진 세계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유령을 보는데도 그들은 서로에게 그건 꿈이라던가 그건 유전에 의한 정신병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에게 제발 진실을 말하라고 하는 큰 아들은 아버지가 진실에 대해 입을 열자마자 그것으로 부터 등을 돌리고 다시 진실을 말해 달라고 말한다. 그들은 명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것 즉 자신의 세계로부터 떠날 수가 없고 그래서 타인들은 물론 자기 자신도 믿을 수가 없다. 이것이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모두가 서로를 원망하게 만든다. 현실에 존재하는 비극에 대한 진짜 원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않을 때 우리는 맹인이 된다. 진짜 이유가 보이지 않으므로 이제 우리게 남은 것은 서로를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원망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이렇게 사람들이 각자의 상식, 각자의 세계를 고집할 때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에 집착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비현실 혹은 꿈으로 여긴다. 있었던 것을 없었던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공포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어떤 폭력적인 일을 해서라도 그 꿈에서 스스로와 사람들을 깨우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죽이고 가족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악몽에서 깨어나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정상적인 세계로 돌아가려고 한다. 물론 이같은 반응은 그들이 그토록 피하려고 하는 비극과 고통을 계속 만들어 낸다. 그들은 서로를 그렇게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가 없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왕좌의 게임처럼 화려한 그래픽을 추구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좋은 작품이 그러하듯이 한번이상 다시 볼만한 드라마이고 그래도 여전히 재미있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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