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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인공지능에 대한 글

자율운전이란 무엇인가?

by 격암(강국진) 2019. 3. 22.

2019.3.22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을 두고 자율운전이란게 이런게 아니라는 논쟁이 잦다. 테슬라의 머스크같은 사람은 올해안에 실질적인 자율운전차가 완성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포브스같은 유명언론이 어떤 자율운전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서는 머스크는 자율운전의 개념을 잘못알고 있으며 따라서 많은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게 하는 식이다. 자동차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해마다 자율운전기술에 대한 평가도 이뤄지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 평가에 따르면 대개 테슬라는 2위거나 심지어 최하위권이다(관련기사). 머스크는 자신의 회사는 다른 회사를 몇년은 따돌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자율운전이란 무엇인가? 왜 뻔해 보이는 이런 질문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는가. 1에서 5단계의 자율운전이 있다는 둥하는 말을 늘어 놓으면 자율운전이 뭔지가 보다 분명해 지는가? 이런 질문들에 답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한번 고려해 보자. 

 

운전가능한 자동차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자율운전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보다 쉬워보인다. 일단 많은 차들을 사람들이 이미 운전하고 있고 도로 위를 이미 엄청난 수의 자동차가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운전가능한 자동차를 엄청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런 걸 생각해 보라. 어떤 자동차를 누가 만들었는데 이 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 달려서 사고가 나지 않은 적이 한번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자동차는 운전가능하지 않다고 할 것이고 팔아서는 안된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가 그 차를 타고 나갈 때마다 길가는 사람들이 그 차에 치여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자동차는 운전가능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 운전가능한 자동차라는 것이 없는 시절에 여기서 누군가가 나타나서 운전가능한 차란 절대로 사고도 나지 않고 사람도 죽이지 않는 차라고 말한다면 그런 차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2015년 기준으로 인구 백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를 따지면 1위가 노르웨이로 22.5명이고 한국은 37위로 91.3명이며 독일이 42.5명, 일본이 38.3명 그리고 미국이 109.5이라고 한다 (더 자세한 수치는 여기). 그러니까 한국만 해도 해마다 4천명씩 죽고 있다. 자동차가 대중화된지 백년이 지난 21세기에 말이다. 전세계로 치면 사망자만 수십만명이니까 부상자까지 포함하는 사상자의 수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물론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 않는 교통사고는 더 많다. 전쟁이 터진 것처럼 사람들이 자동차로 죽고 다치고 있는 셈이다. 

 

운전가능한 차는 사고가 나지 않는 차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자율운전차란 사고를 내지 않는 차가 아니다. 그런 차는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자율운전차는 자율운전기술의 발달 이상으로 운전환경의 변화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술도 개발해야 겠지만 동시에 자율운전 자동차가 혼동을 일으키기 쉬운 환경을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율운전차는 이미 있다. 철로위를 달리는 전철이 그것이다. 그렇게 까지 제한된 환경에서는 중앙에서 전철들을 통제하여 자율로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는 몇년안에는 고속도로 같은 환경에서는 운전자가 잠을 자도 자율운전차량이 스스로 운전하게 하는 일이 가능한 때가 올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일의 책임은 대개 자율운전 프로그램을 시동시킨 사람이 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조만간 도로나 거리를 정비하고 그곳에서는 자율운전이 허용되는 구역이라고 선언하게 될지 모른다. 즉 그런 환경에서는 자율운전프로그램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예 그런 지역에서는 인간이 운전을 하는 것이 금지될 수도 있다. 특정한 환경에서 기계가 인간보다 더 운전을 잘하게 되는 상황은 이미 현실이다. 

 

자율운전차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계속 이런 식의 질문을 던진다. 자율운전차가 이러저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라는 식이다. 갑자기 누가 튀어 나온다던가, 어떤 난폭운전자가 실수를 한다던가하는 돌발상황같은 것 말이다. 그런 질문들은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만약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자율운전차가 다 제대로 반응하기 전에는 우리는 운전대를 인공지능에게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라면 그런 건 합리적일 수가 없다. 

 

인간이 운전하면서 수십만명씩 죽고 아마도 수백만명이 해마다 다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조잡한 자율운전차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운전자가 술을 먹었거나 피곤해서 잠에 빠져들었을 때도 자율운전은 완전하지 않으니 운전을 하면 안된다고 해야 할까? 

 

나는 자율운전의 개념을 회색으로 만들어 모든 자율운전기술을 옹호하고 지금 당장 자율운전으로 자동차를 운행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자율운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통계고 확률의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느정도는 주관적이다. 이것은 흑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자율운전이란 무엇인가라고 본질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다. 

 

그보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 혹은 곧 존재하게 될 기술을 통해서 우리가 뭘 달성하려고 하는가에 신경써야 한다. 우리는 교통사고를 줄이고 싶고, 운전이 주는 피곤을 줄이고 싶으며 어려운 운전을 기계가 맡아주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인간이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고 편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 

 

그런 시대는 자동차들이 센서들로 뒤덮이고 있는 지금 이미 시작되었다. '진정한' 자율운전차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나오지 못하거나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식의 말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면 진정한 운전가능한 자동차도 아직 출현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보가 아니라서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켰고 자동차의 혜택을 보고 있다. 자동차는 자동차의 문제가 있지만 분명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발명중의 하나였다. 진정한 자동차의 발명때까지 기다리자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면 우리는 그 혜택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나라가 있다면 그런 나라는 아직도 말을 타고 다니며 말똥을 치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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