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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의 생태계

by 격암(강국진) 2019. 5. 16.

제가 이따금씩 방문하는 서울이나 부산의 거리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합니다만 요즘 제가 사는 전주의 신시가지 번화가를 걷다보면 이자카야라고 써있는 술집을 참 많이 발견합니다. 그밖에도 초밥집이며 돈카스집이며 라면집같은 것이 많이 생겼습니다. 반면에 전주에 흔하고 내가 어렸을 때는 여기저기 많이 있었던 막걸리집이며 민속주점같은 것은 적어도 번화가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누가 뭐래도 한식의 고향이고 얼굴이라고 주장하는 전주에서도 말입니다. 그런 것은 좀 더 후미진 곳에 있거나 아예 막걸리골목으로 알려져 관광객들을 많이 받는 곳에 있거나 산자락같은 곳에 있습니다. 



이건 왜 이럴까요? 언뜻 생각하면 좀 이상할 것같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유는 뻔합니다. 돈때문입니다. 업주는 기본적으로는 돈을 벌려고 장사를 하는 것이니까 당연히 돈을 벌 수 있는 장사를 합니다. 좀 더 다르게 표현하면 요즘처럼 가게가 흔한 세상에서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장사를 하는 것이죠. 돈을 벌 수 없으면 인건비도 임대료도 지불할 수 없으니까 제 아무리 뜻깊고 사랑하는 장사라도 계속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 한식이 보기 힘들어 진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한식으로 돈벌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임대료가 비싼 골목에 가보면 한식 가게는 없거나 매우 고급의 가게만 주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인분에 5만원이니 10만원이니 하는 한정식집같은 거 말입니다. 그 이유는 한식은 두가지 특색들을 모두 혹은 적어도 하나는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한식은 싸구려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을 비싸게 붙이면 사람들이 가격만큼의 값어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장사가 잘 안됩니다. 둘째로 한식은 손이 많이 갑니다. 한정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반찬들이 최소한 몇가지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임대료가 올라가는 번화가에서 한식가게를 해서 먹고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싸면 비싸다고 안오고 싸게 팔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식이라고 해도 종류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한식은 기본적으로 한국인이 흔히 먹었던 모든 음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막걸리 파전에 갈비탕, 육개장, 보쌈같은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삼겹살이며 양념통닭이나 짜장면 그리고 떡볶이나 김치볶음밥같은 모든 음식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한식은 지금 대단한 중흥기이자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세계적으로 그 맛을 알리고 있는 동시에 안에서는 위기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번화가에는 이자카야만 가득한 현실입니다. 하나의 가게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생존하기 위해서 여러가지가 필요합니다. 잠시 잠깐 고객을 만족시켜서 되는게 아니라 가게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수입을 만들 어야 하고 운영하는 사람에게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지 말아야 하며 식재료도 지속적으로 구입가능해야 합니다. 어찌보면 가게는 고객과 종업원과 사장과 재료를 납품하는 업자들이 모두 살아가는 작은 생태계입니다. 그래서 그 생태계가 가지는 특성 혹은 형식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전염병으로 모든 생명체가 죽듯이 하나의 문제때문에도 가게는 망해 버리게 됩니다.



저는 이자카야의 예를 여러번 들었는데요. 이렇게 보면 이자카야란 단순히 술집인 것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개발한 하나의 장사의 형식이며 하나의 생태계인 셈입니다. 그런 형식으로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도 있고 고객을 만족시킬 수도 있더라는 겁니다. 특히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임대료가 상당한 부자나라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보면 한식의 위기란 바로 한식의 새로운 형태를 개발하고 있지 못한 위기입니다. 저는 한식이 꼭 비싸지고 고급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저는 한식이 지금까지의 형태로는 살아남을 수 없지 않냐고 이미 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높게 평가하는 한국음식들은 한국에서 가장 흔한 음식들입니다. 파전, 짜장면, 삼겹살, 떡볶이, 호떡, 양념통닭같은 것들은 외국인들도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에서 오히려 이런 음식들이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이런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전반적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이 사람들이 고소득자일 것같습니까? 이건 뒤집어 말하면 지금의 한국의 소득수준에서 이런 장사를 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업종을 바꿔서 이자카야하고 일본식 돈카쓰집하면 돈을 더 쉽게 버는데 누가 계속 이런 장사를 합니까?


예를 들어 전주의 유명 칼국수집에는 베테랑칼국수집이 있습니다. 이 집은 지점도 있지만 본래 한옥마을지역에 있던 작은 분식집이었습니다. 분식집 칼국수가 얼마나 고급이겠습니까. 2014년만 해도 칼국수 한그릇에 5천원이었습니다. 지금도 베테랑칼국수는 7천원입니다. 대접 가득한 잘팔리고 유명한 칼국수가 7천원이지만 한옥마을을 돌아다녀 보면 슈마이처럼 생긴 작은 만두 몇쪽에 3천원이고 커피 한잔에 4천원 5천원입니다. 어느 쪽이 전주 한옥마을의 얼굴이며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가는 분명하지만 어느 쪽이 고생 안하고 돈버는 가도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칼국수를 만원받으면 비싸다고 욕하고 아무도 안오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런 한계는 극복되어져야 하고 극복되어질 걸로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이래서 한식은 외국인 관광객 전용지구에서 비싸게 팔거나 아니면 산자락이나 도시 외곽에서나 파는 음식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자라나는 아이들은 한식에 대한 기호를 점점 잃어버리고 피자나 핫도그가 어릴적부터 먹던 추억의 음식이 되죠. 그 혀에 간장이나 김치의 맛을 추억의 맛으로 새기는 대신에 케쳡이나 치즈의 맛을 추억의 맛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흔하던 통닭집은 점점 고급으로만 변해서 먹기 부담스러워지고 김밥이며 튀김이며 떡볶이를 부담없는 가격으로 팔던 분식집들도 점점 사라지는 것입니다. 과거의 형식으로 현재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즐겨 봅니다. 그걸 봐도 한식의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바를 합니다. 그리고 오래된 가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가게들은 가게를 운영하는 방식, 가게가 도달해야할 기본적 수준에 대해서 새로운 자영업자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자신들이 몇대에 걸쳐서 도달한 것들을 말입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참 대책없이 가게를 엽니다. 백종원은 가게를 방문하면 먼저 식재료 관리와 청결부터 점검합니다. 식당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부분도 한국은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고 배워서 장사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게 주먹구구식이라 청결과 음식의 수준이 수준미달인 곳이 많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괜찮은 실력을 가진 사람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원가를 절감하고 최대한 에너지를 절감해서 가게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후진국 시대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이죠. 


이건 꼭 누구를 비판만 할 일도 아닙니다. 배우려고 해도 뭘 배워야 할지, 어디서 배워야 할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송을 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어디 정말 나라에서 학교라도 세워서 식당 영업의 기초코스라도 가르쳐 주던지 해야 겠다고 말입니다. 알바 한번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음식만드는 거 한달배워서 아니 심지어 일주일 배우고 장사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보였습니다. 그게 후진국장사죠. 그런데 한국은 이제 그런 게 안통하는 시장이 된 겁니다. 


일식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아예 일본에 가서 보고 배워오거나 최소한 일식이 이런거라면서 흉내는 내려고 합니다. 프랑스식당이나 이탈리안 식당만 생각해 봐도 그런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식 식당을 생각하면 우리는 뭘 떠올리게 될까요? 뭘 배워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여기에 대해 그럴 듯한 답이 없다는 것이 한식의 위기입니다. 


저는 한국의 음식이 자랑스럽고 좋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음식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산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음식문화는 한국의 큰 자산이죠. 한식이 이 위기를 잘 돌파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쁨을 주는 문화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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