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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데올로기

by 격암(강국진) 2019. 5. 27.

우리나라는 유독 가족내지 가문에 대한 여러가지 행사가 많고 그에 따른 예절도 많다. 친인척간에 그 위치를 정확히 말하는 호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발달되어 있다. 쉬운 예로 우리는 영어에서와는 달리 누나와 언니가 다르고 고모와 이모가 다르다. 즉 같은 사람인데 세세한 관계를 다 따져서 다르게 부르게 한다.  영어에서는 그저 시스터고 안트인데 말이다. 나이에 따라 반말 존댓말 사용하는 것에도 우리는 매우 민감하다. 외국인들은 4촌이니 8촌이니 하는 촌수따지기를 잘 이해못한다. 



우리의 이런 현실을 우리는 그저 문화나 관습으로 혹은 그저 취향의 문제로 생각하여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만은 없다. 언어와 예절 그리고 이런 관행들은 그 바닥에 어떤 가정과 구조를 가진 이데올로기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화는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 호칭이 굉장히 중요하며 이걸 결정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다. 한국 사람들은 종종 누굴 만나면 나이며 직업이며 고향등 뒷조사를 한참하는 데 이것도 이때문이다. 만남이 무거워서 공사가 구분되기 어렵고 부패가 쉽게 생긴다. 바뀌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전에는 일단 형이나 선배로 불리고 나면 음식값을 도맡아 내야하는 일도 있었다. 뭔가 은근슬쩍 혹은 어영부영 결정된 어떤 것이 마치 아주 중요한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거기서 벗어나기 어려운 일이 생긴다. 내 재산권이나 직업선택을 친인척들이 마구 간섭하기도 한다. 이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한국에서 가장 큰 사회적 불화의 원인중의 하나다. 드라마들만 봐도 온통 그것으로 채워져 있다. 해마다 명절이면 멀리서 온 가족들이 만나는데 거기서 싸움이 일어나는 일도 많고 그런 모임자체를 매우 불편하게 여기는 일도 많다. 명절 모임을 위해 일을 하거나 돈을 쓰는 문제는 이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게 다 모두 비현실적인 봉건적 관념탓이다. 


문제의 원인은 분명하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가족 이데올로기는 봉건 이데올로기다. 즉 나라를 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사고방식이며 이미 비현실적이 된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구식 농촌국가를 살고 있지도 않고 집성촌같은 곳에서 태어나고 늙어죽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지도 않다. 그것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지금 세계의 문명국은 어디나 공화제를 실시하고 있다. 봉건제가 현실적인 경우는 국가가 지극히 미개하여 국민들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비참하게 살고 있으며 당연히 그들의 교육수준도 지극히 낮은 경우뿐이다.  


봉건제는 기본적으로 사법 입법 행정등 모든 권력을 왕이 쥔다. 왕이 그 권력을 주변에 좀 나눠줄 수 있을 뿐이다. 권력의 집중은 봉건제의 가장 큰 특징으로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장치다. 그러니까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시스템에서는 사회질서의 파괴가 된다. 사회적 질서를 지키고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불평등을 주장해야 하는 시스템, 집단의 수장이 더 많은 권력과 돈이 나에게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는 시스템, 왕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은 윗사람이 경계없는 무한 권력을 휘두르려고 하는 것이 봉건제다. 


이런 시스템에서 정의의 기준이 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왕이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 뛰어난 수장이라도 조직 혹은 가문의 사람을 다 돌볼 수 없게 된다. 뛰어나지 않으면 말할 것도 없다. 말하자면 심판의 칼자루를 쥔 사람이 장님이나 다를 바없는 것이다. 그러면 공평과 정의가 무너진다. 문제는 수장이나 왕에게만 있지 않다. 왕권을 휘두르고 사람들을 억압하는대신에 모든 국민의 삶에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봉건제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왕이고 공동체라는 것이다. 


자식이 백명쯤되는 부모를 생각해 보라. 그런데 그 중의 한 자식이 사고를 치면 그 사고의 규모가 천문학적인 시대를 우리가 산다고 해보자. 여기에 그 부모까지 좀 어리석다. 그래도 가족은 서로 서로 모두 무한책임을 지려고 한다고 해보자. 이런 핵가족이 지극히 미개하고 비참하게 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사회적 분란이 생기고 결국 그것이 공화국으로 가는 혁명을 낳는 것이다. 그러므로 봉건제와 공화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혼돈은 비극을 만든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나는 오늘날에는 공화제가 봉건제보다 현실적이라는 점을 새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왕과 대통령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가문에 대한 봉건적 문화를 21세기에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뭘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도 않고 맘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는 아주 흔하다. 시대는 봉건시대가 아니지만 문화는 여전히 봉건적이기 때문이다. 사장이 직원을 자식같다고 흔히 말하는 것이 한국의 기업문화가 아닌가? 물론 실제로 그들을 자식처럼 보호해준다기 보다는 자기 자식처럼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때만 말이다. 


가문은 작은 국가나 마찬가지다. 그 국가에는 왕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 가문의 재산이라는 개념도 있고 가문의 힘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문의 왕에 해당하는 상속자에게 그 가문의 재산을 몰아서 세습해야 한다는 관습도 존재한다. 이에 따르면 종갓집이 잘돼야 가문이 번성한다. 부모와 자식만으로 이뤄진 핵가족에서도 장자에게 재산을 몰아 줘서 장자가 성공해야 집안이 번성한다던가 남자는 교육시키지만 여자는 집안을 나갈 것이니 재산 상속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식의 발상이 지금도 다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다 국가와 가문과 가족의 질서를 실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는 봉건적 사고방식의 결과다. 가문을 지켜야 그 가문안의 사람들이 모두 잘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요즘 시대에 누가 누굴 얼마나 책임져 줄 수 있는가. 친부모와 자식도 자식이 크고 나면 책임져 주는데 한계가 있는데 가문? 우리는 종갓집이 엄청난 재산이 있었는데 그걸 종손이 다 해먹었다는 이야기나 온갖 민원에 시달리던 가문의 중심집안이 그러다가 한순간에 몰락했다는 이야기에 익숙하다. 다시 말하지만 봉건제는 시대에 뒤져 있다. 


공화제는 주권이 모든 개인에게 있으며 개인은 평등하다는 것이 강조된다. 물론 우리가 공동체안에서 살아가는 한 법을 지켜야 하고 서로를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자기 뜻대로 살면 된다. 누가 이렇게 저렇게 명령하고 나중에 그 사람의 인생까지 책임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제에서는 권력이 분산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평등이 파괴되고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이 문제다. 그게 사회질서의 파괴다. 


지금 이순간에도 한국에는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고 봉건적으로 사고하면서 윗사람이니 어른이니 하는 권위를 내세우고 그러다가 벌어지는 싸움이 어딘가에서는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남의 인생을 책임질 자격도 능력도 없으면서, 심지어 그렇게 할 의도도 없으면서 자신은 꼭 남의 인생에 관여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못하도록 하면 자신의 권한이 상실될 것처럼 불쾌해하기 까지 한다. 언제나 되어야 봉건제와 공화제가 다르고 왜 그런 관습이 없어져야 하는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때가 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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