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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제주도

by 격암(강국진) 2019. 5. 9.

제주가 몇년전부터 불안하기는 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소식들을 듣고 댓글을 보다보니 정말 이젠 확실히 망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는 그저 신혼여행이나 가는 곳에서 올레길이 유명해 지면서 힐링의 대명사처럼 변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안적 삶을 찾아서 주소지를 옮기는 섬이었기도 했고 관광객이 하와이의 두배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말은 제주도 가느니 일본이나 중국 혹은 동남아 관광을 가겠다는 것이었고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며 땅값이 너무 비싸졌다는 말이고 지나친 개발로 이젠 텅빈 호텔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 같은 것 뿐이다. 생활오수는 바다로 그냥 들어가고 있고 생산되는 쓰레기는 해결이 안되어 해외로까지 보냈다가 문제가 되어 돌아왔다. 이렇게 가다간 제주도는 철학이 없으면 로또를 맞아도 그걸 지킬 수 없다는 대표적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같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제주도에 대한 시선이 매우 냉정하다. 비자림숲 개발때도 그 숲을 왜 없애냐고 본토사람들은 애태워하는데 정작 그 개발을 결정한 것은 제주도민이 뽑은 원희룡도지사였고 그 개발을 찬성하는 것도 도로가 생기면 이익을 볼거라고 믿는 지역주민들이었다. 비자림숲이 위험하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그저 개발에 미친 몇몇 공무원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은 이것이 제주도민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식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제주도 전체를 평가절하하게 된다. 요즘 제주도 기사가 나오면 악플 밖에는 달리지 않는 것을 봐도 이미 이런 추세가 상당히 진전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제 제주도는 어떤 악당에게 위협당하는 땅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거대한 악덕 기업처럼 이미지가 변한 것이다. 제주도민 전체를 욕하는 사람도 많은 것같다. 이미지는 항상 중요하지만 제주도 같이 관광산업이 중요한 땅이 이미지가 망해서야 그냥 망한거나 다름없다. 


돌아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 잊혀졌다. 제주도의 가치는 제주가 육지 예를 들어 서울과 다르기 때문에 나온다. 그런데 다르다는 것이 뭐가 다른 것일까? 이 점에 대한 이해가 핵심적이다. 그건 그냥 자연경관이 아니다. 제주의 자연경관이라면 수십년부터 있던 것인데 이제와 제주도의 경관이 더 화제가 될 이유가 있을까? 마찬가지로 호텔이나 관광지도 아니다. 호텔이나 관광지는 대도시에서 더 가까운 섬들에도 지을 수 있다. 제주의 매력, 제주의 차이가 호텔이나 관광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알맹이는 잊어먹고 포장지에만 정신이 나간 생각이다. 포장지도 중요하겠지만 포장지는 포장지다. 알맹이가 없으면 사기가 될 뿐이다. 


제주와 서울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현대 한국 문화내지 생활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다. 해방이후 70여년동안 한국은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수도권이 있다. 우리는 더 높은 빌딩과 많은 아파트와 많은 차와 레스토랑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가? 발전이라는게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모두가 똑같이 똑같이를 외치는 한국에서도 어딘가에는 대안적 삶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한국의 경제 문화적 중심인 수도권에서 가장 멀리 있는 제주는 그곳에서는 대안적 삶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곳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듯이 제주로 이사를 가지는 않더라도 이따금 방문해서 우리 사는 모습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체험을 주는 곳이 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올레길이라는 것이 지금은 어디나 있어서 대단한 것같지 않지만 인기를 얻기 전에는 그 상업적 가치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말하자면 무소유를 말하는 출가체험같은 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느낌이랄까. 길을 걷는 것은 가장 소박한 행동이고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게 되듯이 사색적인 행동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걸으며 끝없이 남과 떠들지 않는다. 결국은 자기와 대화하게 되고 자기를 느끼게 된다. 서울과 가장 먼 제주도까지 가서 몇시간에 걸쳐서 사색에 잠기는 것은 뭘 위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내가 이대로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우리안의 불안감과 맞서겠다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어떤 결실을 맺으려면 대도시의 거리를 걷는 것이 아니라 바다건너 가장 먼 곳에 있는 제주도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우리는 제주로 간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변해버린 제주도가, 망해버린 제주도가 너무 아깝다. 망했다고 해도 언젠가는 또 일어설 수 있겠지만 난개발로 만들어 진 무형 유형의 쓰레기를 정말 제주도 사람들이 다 치울 수가 있을런지 그게 된다면 언제나 될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건 어딘가에 있는 자연휴양림에 수천만톤의 똥을 가져다 부은 것같은 느낌이다. 그 똥은 누가 치우나. 그 똥은 언제 치우나. 분명한 건 원희룡이 치우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제주에 애착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오랜간 피땀 흘려가며 치우게 될 것이다. 


제주도는 정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 유명한 제주도지만 사실 제주도는 인구로 보면 인구 6-70만의 시하나정도밖에 규모가 안된다. 제주도의 인구는 2012년에 57만 8천명이어던 것이 2018년에는 69만 천명이 되었다. 이 중 외국인 증가분이 2만 4천여명이다. 그러니까 6년만에 인구가 20%가 불어난 것이다. 그리고 물론 변한 것은 인구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겉모습은 아주 다른 것같지만 결국 제주는 서울화했다. 가야할 이유가 별로 없는 섬이 된 것이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여유를 잃어버린 제주는 싸구려 모텔이나 카페같은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제주가 작은 섬에 불과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기억했다면 우리는 제주를 훨씬 더 소중히 여기고 모두의 것으로 생각해야 했다. 그냥 여기는 내 땅이니 뭘 하든 내 맘이고 내 가게에서 뭘 팔든 그건 내 맘이라는 각자도생의 길로 간다면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섬은 쑥대밭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욕망은 지극히 억제되었어야 했고 개발이익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모든 제주도민에게 골고루 주어지는 것이 되었어야 했다. 더 빨리 많이 성장하는 것에 대해 욕심을 내기 보다는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제주도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 했다. 


지금의 모습을 보면 제주는 망했고 망해야 하는 것같아 보인다. 망하지 않고는 살길이 없어 보인다. 난개발이 지금도 감당이 안되는데 여기서 더 흥하다가 망한다면 제주가 치워야 할 쓰레기만 엄청나게 증가할 판이다. 지금도 제주의 바다는 생활오수로 죽었고 제주에다가 전혀 제주스럽지 않은 시설들 예를 들어 사파리같은 것을 건설하는 판이니까 말이다. 


제주는 결국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준다. 뭐든지 소유하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뭘 보고 느끼는가가 세상이 변하는 방향을 결정한다. 제주가 보다 진보적인 섬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제주가 세련되고 문화적 힘이 느껴지는 섬이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이런 거라고 보여주는 곳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제주는 여전히 쌀밥에 고깃국 타령하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의해서 개발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제주를 망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그들은 그들이 스스로를 망치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의 세대는 그렇다고 해도 제주의 다음세대들은 숙제만 많이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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