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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신과 모순

by 격암(강국진) 2019. 5. 7.

나는 최근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유튜브 녹화를 하고 있고 요즘은 부분과 전체의 두장 정도에 대해서 소개하는 비디오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녹음을 하고 나면 왠지 미진한 부분이 느껴져도 다시 녹음하기는 어려운 지라 참고 마는 일이 생기는데 최근의 녹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 그에 대해 몇마디 쓰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 볼까 한다. 





문제는 물리적 이론에 있어서 수학적 완결성이 가지는 의미다. 이렇게 들으면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같고 일반인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같지만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가 많으며 나는 특히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믿음들을 검증하지 않으면 그 믿음들은 종종 상호모순적인 것이 되고 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명제도 참이거나 거짓이라는 것을 마음대로 증명할 수 있다. 왜냐면 모순된 믿음으로 이뤄진 시스템은 그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수학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몇마디 해보자. 수학이론은 흔히 공리와 그것으로 전개된 정리들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공리들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냥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사실들이며 정리들은 이 공리들을 논리적으로 결합해서 만들어 낸 결과들이다. 흔한 예로 말해 보자면 우리가 사칙연산 같은 것을 알고 있을 때 그것을 통해서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인수분해 공식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일단 인순분해 공식을 증명하고 나면 그걸 외우고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쓴다. 이렇게 증명된 정리를 외워서 쓰는 것이야 말로 수학의 힘이다. 일단 한번 증명하고 나면 중간과정을 다 뛰어넘어서 결과물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계산도 쉽게 되는 것이다. 증명하는데 몇천페이지가 걸리는 내용도 외워서 쓰면 그 과정을 뛰어넘을 수가 있다. 


말하자면 이 정리들이야 말로 수학의 열매다. 하지만 우리는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공리들에 대해서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 공리들은 서로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어서는 안된다. 공리들이 서로 모순이 된다면 우리는 그런 것을 조합해서 뭐든지 참이나 거짓으로 만들 수 있다. 마치 뭔가를 증명한 것처럼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논리적 수학적 시스템을 만들 때 우리는 임의로 공리를 마구 추가할 수 없다.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는 모순된 시스템을 만들기 쉽고 그 결과 전체 시스템의 가치를 붕괴시키고 말며 또한 간결한 공리가 주는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이해가 사라지고 만다. 


하이젠베르크가 8장에서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과 뉴튼 물리학은 별의 움직임을 이야기할 때는 같은 예측을 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수준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뉴튼의 중력법칙은 달과 사과를 포함하는 모든 물체에 있어서 같은 힘을 가정하고 같은 중력의 법칙과 운동의 법칙이 모든 운동을 설명한다는 과학이론이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그저 별의 궤도에 대해 관측된 사실을 재현하기 위해서 원들을 끝없이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튼의 물리학은 우리에게 깊은 이해를 주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은 별로 그렇지가 못하다. 


이렇게 논리적 혹은 수학적 완결성이 이론에서 중요성을 가질 때 우리는 단순히 어떤 이론이 현실과 부합한다 하지 않는다는 것 이상의 가치를 이론에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오랫동안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진리 그자체로 여겼으며 인간이 순수히 이성만으로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증거로까지 여겼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5개의 공리로 전개되는 수학시스템에 불과하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완전히 부합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것은 관찰과 비교가 필요한 것이다. 이 같은 점은 유클리드 기하학과는 다른 정리를 사용하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발견됨으로써 논리적으로 완결성을 가진 다수의 기하학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후 우리는 엄밀하게 말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옳은 세상에 살고 있다고 믿어지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정확히 180도가 아닌것이다. 근사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이제는 유클리드 기하학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그냥 잊어버려야 할 틀린 기하학인가? 우리는 현실에서는 여전히 그것을 진리인 것처럼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인데 그것은 우리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뉴튼역학적 방식으로 사고하고 계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로 그것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간편한 방식을 택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가 부분과 전체의 8장에서 강조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엄밀한 과학은 수학적 완결성을 신경써야 하고 그럴 때 과학이론의 교체란 공리의 교체의 의미를 가지는 불연속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것은 쿤이 후일에 말한 패러다임의 교체를 연상시키는 특성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과학 이론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순하게 과학이론에 대한 것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우리의 사고는 엄밀한 과학이론처럼 논리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한 특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에 대한 어떤 이해를 추구할 때 다시 말해서 인간관계라던가 사회문제같은 것에 있어서 어떤 이해를 하려고 할 때도 소위 말하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이해를 추구하려고 할 때도 우리는 그런 노력의 결과 근본적 믿음들을 가지게 된다. 앞에서 말한 공리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믿음들을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두가지 측면들을 보게 된다. 하나는 우리 자신이다. 즉 우리 자신의 정신이 일관성을 가진 시스템인가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의 판단은 앞뒤가 맞질 않는다. 우리는 뭔가를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같지만 사실은 그저 우리가 원하는 결론에 맞춰서 적당히 이야기를 꾸며댈 뿐이며 마음이 바뀌면 정반대의 주장을 또다시 논리적인 결과인 것처럼 말하게 된다. 


세상에서 종종 발견하는 정신적으로 게으른 사람들의 행동이 불합리한 이유는 그들은 자신들의 여러가지 믿음들이 상호 모순되는가에 대해서 점검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스스로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 만한 일을 하게 되기 쉽다. 가짜 뉴스를 쉽게 믿고 그런 뉴스 한줄에 여태까지 믿어온 수많은 것들을 쉽사리 버린다. 안타깝지만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말들로 자기의 정신을 누더기로 만드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독서는 물론 사색과 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모순되어 있는지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어제의 나와 지금의 내가 서로 싸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가 철학적 사색을 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이런 문제를 멀리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하게 즉흥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뭐가를 믿기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사실들에 비추어 새로운 사실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를 발견한다거나 스스로의 정신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믿음들을 점검하고 자신이 뭘 믿고 행동하는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어떤 철학이 있고 원칙이 있고 근본적 믿음이 있는 정신을 구성하여 살고 있다고 할 때 이 정신이 세상과 합치되는가 하는 것의 문제다. 어떤 정신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일을 모두 이해하는 것은 아니고 세상에는 질문과 미스테리가 남아있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두가지 태도가 모두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이 만들어 온 스스로의 정신 즉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태도다. 백원을 벌자고 만원을 버리면 우리는 가난해 질 것이다. 뭔가가 이해가 안되고 의심쩍다고 우리 스스로를 통째로 버리면 우리의 정신은 누더기가 된다. 또하나의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때로 정신적 비약을 통해서 스스로의 정신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를 지키는 것 이외에 우리가 철학적 사색을 하고 공부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부분과 전체에 나오는 말들은 가치가 있다. 나는 이것을 녹음에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일은 거기서나 여기서나 쉽지가 않다. 그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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