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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종교관련글

친일파 신도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by 격암(강국진) 2019. 8. 8.

어제는 탐사 기획스트레이트 59회, "배은망덕한 한국" 친일선봉에 선 교회편을 보고 착착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저의 즉각적인 반응은 정치에 관여하는 교회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화가 나는 것이었고 그런 분노는 여전합니다만 얼마지나지 않아  "저들은 뭘 원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들을 여기에 정리해 볼까 합니다. 

 

 

 

 

친일을 외치는 교회신자들이나 목사들은 정말 뭘 원하는 걸까요? 그들은 물론 표면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뭔가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 주장의 표면적 내용에는 솔직히 큰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성적 주장을 한다기 보다는 권위주의적이고 순종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들 자신도 자기 말의 무게나 일관성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만약 목사가 뭔가를 다르게 말하면 그 신도들의 말도 당장 달라질 것같았습니다. 만약 목사가 일어나서 일본과 싸우는 것이 한국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말하면 그들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서 누구보다도 강경하게 일본과 싸울 것같았습니다. 태도를 바꾸는 부끄러움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며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만 그 이유들이라는 것이 진심으로 자기 가슴과 머리에서 나온다기보다는 그냥 결론은 정해놓고 들은대로 말한다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되건 안되건 말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말은 그냥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데"라던가 "우리 박근혜가 얼마나 좋은 분인데"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입니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목사를 지키고, 목사에게 순종하고 특히 그 목사를 중심으로한 어떤 공동체를 지켜내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들의 머리를 채운 것은 그것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분노뿐이며 그것을 지켜내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은 그것이 법이건 국가건 이웃이건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은 저를 포함한 많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말이나 철학이나 의미보다는 보다 생생한 물질이나 사회적 보호같은 현실적 목적에 더 비중을 둡니다. '말 따위는 한푼의 값어치도 없다, 믿을 것은 행동이나 돈뿐이다, 어차피 세상사람은 다 이기적이고 도둑놈이며 사기꾼이다.' 같은 식의 태도랄까요.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문화적 차이입니다. 편의를 위해 이 두 그룹을 관념론자와 유물론자로 부른다면 관념론자들은 사상이니 법이니 하는 추상적이고 언어적인 약속을 믿고 그 것을 가치있게 생각합니다. 반면에 유물론자들에게 말이란 그저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는 하나도 값어치가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유물론자는 민주주의같은 말 안믿습니다. 그건 그냥 듣기 좋은 사기꾼의 말일 뿐인거죠. 

 

종교란 추상적이고 성서는 말로 채워져 있는데 친일적 기독교인들을 '말을 무시하는 유물론자'로 말하는 것이 어리둥절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래서 친일적 기독교인들은 이런 의미에서는 종교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신이나 예수를 믿는게 아니라 사실은 그 목사만 믿으니까요. 종교를 추상화하고 이론적으로 만들면 그것은 이제 그 종교를 설파하는 목사를 넘어서는 것이됩니다. 진리는 인간너머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물론 그 대신에 그 종교는 훨씬 더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가지게 되죠. 

 

하지만 그들이 진짜 믿는 건 이런게 아닙니다. 적어도 친일발언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보편성과 일관성을 가진 종교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우리 교회내지 우리 목사에게 충성할 뿐입니다. 그 목사가 살아있는 예수고 진리인 겁니다. 그러니까 설사 목사라고 해도 다른 교회의 목사에게는 같은 정도의 충성심을 보이지 않으며 교회에 다니는 분들은 같은 기독교 교회라고 해서 다른 교회에 쉽게 나가지도 않습니다. 목사가 혈연을 기반으로 교회를 세습해도 순종합니다. 목사가 성추문을 일으키고 사치를 해도 순종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건 기독교라고 주장할 뿐 사실 작은 별개의 사이비종교인 겁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들은 온갖 종파로 갈라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조차 실종된 그 교회란 그 목사만의 수용소 혹은 왕국입니다. 

 

모든 사람이 흑백으로 분명히 갈리는 것도 아니고 그건 저도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는 분명 관념론자입니다. 저는 다른 것을 떠나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저를 지키는 중요한 테두리라고 믿으며 제 국적이 한국인인 한 대한민국의 헌법과 그 가치를 따르는 것은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계약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과 약속과 철학과 사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동의하고 안하고 이전에 한국에서 운전을 하겠다면 한국 도로교통법을 마땅히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여기서 말하는 유물론자들은 말에 별로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기본적 자긍심이나 의무따위에 별로 신경을 쓰지않습니다. 사실 그들은 항상 초법적 지위에 도달하려고 합니다. 즉 한국인이 지켜야 할 상식과 법으로부터 초월적인 지위에 도달하려고 하거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상식이니 법이니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사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법은 힘이없어서 지키는 것이고 바보라서 지키는 것이지 능력있고 똑똑하다는 말은 그들에게 법을 지키지 않는다 혹은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런 유물론자가 내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지 정말로 한국인으로써 가슴깊이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나에게 뭘 해줬냐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관념이 한푼의 값어치나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일제시대의 친일파에 대해 별로 분노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자신들도 그게 이득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안하는 사람을 바보나 사상에 세뇌된 철부지로 여기는 겁니다. 

 

이 유물론자의 뿌리는 사회적 약속과 국가로부터 배신받아온 민중의 체험일 겁니다. 박근혜를 탄핵할 때 관념론자들은 탄식을 하면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습니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한국이 나라라고 믿고 있기에 실망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유물론자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라같은 거 믿은 적이 없는 겁니다. 어차피 법이니 나라니 하는 틀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그저 권력자들이 내세우는 값어치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와서 또 교묘하게 민중을 선동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더 나쁜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왜냐면 결국 그들은 민중을 등쳐먹고 출세하기 위해서 교묘한 말들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을 무시하는 유물론자들이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은 돈이고 권력이며 개인적인 친분입니다. 기본적으로 직접대면에 기반하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매달리는 것은 교회가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이 더이상 힘없는 아무개가 아니라 법도 두렵지 않은 대단한 권세를 가진 인간처럼 행동하게 해주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그들이 가진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팔아먹는다던가 민주주의가 망가진다던가 하는 것은 애초에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허상인 겁니다. 그런건 진정으로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으니까요. 

 

언뜻 저는 관념론자들만 찬양하고 유물론자들을 욕하고 있는 것같지만 사실 완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관념론자들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흔히 말이 대표하는 보편성속에서 발앞의 일을 보지 못하고 아주 구체적인 하나의 사안에 집중하기 어려워 합니다. 사물을 여러가지 이야기 속에서 파악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만 뒤집어 말하면 관념론자들은 남의 이야기에 너무 쉽게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너무 쉽게 믿기 때문입니다. 

 

유물론자들에게 먹히는 것은 개인적 친분입니다. 그러니까 악수한번하고, 내가 너를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를 하고, 막걸리 한잔이라도 공짜로 먹으면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고 댓가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를 지지해 달라고 하면서 수건한장, 설렁탕한그릇 안가져 오는 사람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물론자들은 종종 극빈자와 저학력자이거나 반대로 부자들입니다. 없는 사람들은 이 복잡한 세상에서 계약서 내밀고 이런 저런 규칙 내밀면서 말잔치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적인 스킨쉽이 있고 막걸리라도 한잔 주는게 있어야 인정하는 겁니다. 반대로 부자들은 이런 유물론자들이 법따위 별로 신경쓰지 않고 싼 값에 포섭된다는 점때문에 좋아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관념론자들은 친분에 흔들리고 규칙이 깨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적으로 건조하게 행동합니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유물론자와 관념론자의 차이가 따뜻한 인간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가면 반드시 어느 쪽에 답이 있지는 않습니다. 관념론자들은 시스템을 너무 쉽게 믿고 그 핑게를 댑니다. 관념론자들이 길에서 걸인을 만나면 그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걸인을 구하기 위한 정책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기관과 단체가 있다. 따라서 이건 내 일이 아니다. 직장이 없어서 괴로워하는 단 한명의 청년을 앞에 두고도 그들은 흔히 취업에 대한 정책이 옳은가 아닌가를 따집니다. 복잡한 터치스크린 화면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늦장을 피우는 노인을 보면 저 분이 고통받는 것은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관념론자들은 너무 쉽게 더 크고 보편적인 것에 빠져듭니다. 

 

물론 저는 따뜻한 유물론자가 있듯이 따뜻한 관념론자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하고, 자기 주변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 바로 관념론자라는 특성과 함께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따뜻함이 없을 때 우리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저기 어딘가에 지식도 없고 인맥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가 있다고 해봅시다. 관념론자인 사람들은 흔히 그 지역의 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유롭지만 자기 스스로 사는 것이 요즘 세상이니까요. 그런데 그 마을에 목사가 하나 나타나는 겁니다. 이 목사는 성서에 나오는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고 아주 사람좋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교회안에서 그 사람들이 뭉치게 만듭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생겨난 공동체는 뿔뿔히 흩어져 있을 때는 해내지 못했던 일도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전국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정말 가난해 보이는 마을에도 큰 건물이 올라가곤 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 교회들이 정말 보편성을 추구하는 관념적 교회들일까요? 아니면 앞에서 말한 유물론자들의 교회, 유물론자들의 공동체일까요. 

 

그들이 원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관념론자가 국가공동체에서 기대하는 일을 유물론자들은 개인적 친분에 근거한 사적 공동체에서 성취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지키려고 하는 저의 발상이나 친일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저 신도들이나 비슷한 뿌리가 있는 겁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있어야 제가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들은 나라따위 어차피 한푼 갚어치가 없으며 교회가 있어야 하고 내가 사적으로 구축한 친분이 있는 그 패거리가 살아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가 있지만 호국을 외치던 사람들이 살던 호국불교의 이나라에 친일파 신도, 매국노 신도는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문제는 신뢰고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한국은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제공합니다. 한국은 문제가 여전히 많지만 자랑스런 나라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미국인들도 일본인들도 부러워할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가 사회와 국가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노령연금을 받고 의료비 혜택을 받으며 교통비 할인을 받으며 사시는 많은 노인들분들은 그러면서도 나라가 우리에게 해준게 뭐가 있냐고 말하곤 합니다. 

 

그걸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들은 박정희나 전두환을 거기에 가져다 댑니다. 그들은 민주화나 노조따위가 뭘 이뤄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탄핵정국에서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돈으로 동원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관념이 그렇게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사적인 작은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안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역사의 현장을 보고 나면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한국을 대단하게 생각할 수록 유물론자들은 의심에 빠집니다. 빌보드 차트를 BTS가 점령했다는 것을 유물론자는 믿기 힘듭니다. 삼성같은 회사가 일본회사보다 더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을 유물론자는 믿기 힘듭니다. 프랑스나 일본이나 미국이 그렇게 대단하다는데 요즘은 한국이 더 좋다더라같은 말이 나오면 유물론자는 흔들립니다. 교회같은거 믿지 말고, 믿기 힘든 사적인 친구모임 믿지 말고 한국을 믿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것입니다.

 

친일파 신도는 나라가 나라답지 못해서 만들어졌습니다. 불신은 일단 만들어지면 쉽사리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국이 지금보다 훨씬 더 대단한 나라가 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가 만들어 낸 불신의 감옥안에서 고통받을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박근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 경제적으로 소수파가 될 때 적어도 미디어에서는 그들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 총선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보수대 진보라는 구도가 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박당이 국회를 주무를 수 없는 소수당이 되고 나면 그들은 놀라운 속력으로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친일파 목사니 뉴라이트니 하는 이야기를 먼 과거에 있었던 괴상한 사건으로만 기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친일파 신도들이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이런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절박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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