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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잠 못드는 봉준호의 밤에

by 격암(강국진) 2020. 2. 11.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주요 상들을 휩쓸며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카데미 이전에 기생충의 영광이 지나쳐 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길게 보면 그게 한국에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생충은 왠만한 영광이 아니라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라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일단 당장은 봉준호의 수상에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뻐하는 김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기생충의 수상을 기뻐하는 사람은 결코 한국인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많은 동양인들이 마치 자기일인 것처럼 기뻐하더군요. 게다가 백인들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눈물을 흘릴 듯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뻤지만 그들도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다가 기생충이 의미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생충은 당연히 작은 제작사의 영화고,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약소국에 불과한 한국의 영화이며 서구에 비하면 저평가 되어온 아시아의 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주제 자체가 계급차이에 대한 것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기생충은 기성 기득권에 의해서 저평가되어오고 차별받아온 사람들에게 동일감을 창조해 낸 것같습니다. 그래서 기생충의 성공을 자기의 성공처럼 기뻐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유튜브에서 오스카에 대한 예측 동영상을 여러편보았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번 아카데미 이전에 수상을 예측했는데 그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이겼으면 좋았을 영화와 이길 영화. 즉 그들은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는 영화가 이기지 않을거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카데미는 이럴거야, 아카데미가 변할리 없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지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이 좋았고 이겼으면 좋겠다고 까지 말하면서도 이기는 영화는 1917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측은 실제로 1917이 더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면서 기정사실화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이전에 있었던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영화제를 장악했던 것은 1917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결과가 달랐습니다. 심지어 감독상과 작품상을 1917과 나눠가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기생충이 감독상만 타도 이번 아카데미는 놀랍도록 진보적이었다고 했었을 겁니다. 그런데 주요 상을 전부 기생충이 가져간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 한국사람은 물론 아시아 사람들이나 미국 사람들도 모두 이 승리를 기뻐하고 마치 눈물이라고 흘릴 것같은 표정을 짓더군요. 오랜만에 진짜 최고의 영화를 뽑았다면서 미국 아카데미를 다시 믿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변화를 원해 왔고 그 변화의 시대가 왔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이제야 시대가 앞으로 전진하고 있으며 지루한 현재가 아니라 미래로 달려나갈 것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아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백인들도 기생충의 승리를 매우 크게 기뻐하는 것같았습니다. 


저는 기생충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영화에게 길게봐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얻은 영광이면 충분하고 더 힘을 비축하는 것이 한국에게 좋을거라고 생각한 것이죠. 하지만 이번 승리를 보면서 미국 사회의 진보성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봉준호가 잘한 것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그렇게 하기로 결심할 만큼, 한국 영화라는 이질적인 문화를 제대로 포용하겠다고 뛰어들만큼 그들은 여전히 진보적입니다. 이러한 진보성은 일본은 물론 유럽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것으로 대표적으로 영국 아카데미도 뻔한 결과를 만들었으니까요. 


물론 봉준호와 배우들이 잘한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한가지가 눈에 띄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봉준호가, 나아가 한국이 미국 사회와 진짜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공감대를 보였다는 겁니다. 봉준호는 결코 오스카를 탈취해 오는 것처럼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의바르고 유머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생충의 성공을 미국 영화계의 사람들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있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이건 다시 말해서 미국이 한국을 문화적 식민지로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미국을 착취와 공격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화가 되지 않으면 그건 결국 문화제국주의밖에 안됩니다. 미국이 이기면 우리가 식민지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이기면 미국을 식민지화하겠다는 식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신사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서로의 번영과 협력을 믿게 만드는 기본이 됩니다. 이번 봉준호의 수상을 보면서 저는 그런 분위기가 확산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얼마지나지 않아 미국 대중은 일본인이나 중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합리적이고 말이 통하는 문명인이라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야 말로 진짜 중요한 것이죠. 


오늘밤은 응당 기생충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의는 이제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미국 아카데미에게 나아가 미국 사회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밤입니다. 기생충의 성공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미국은 여전히 참 대단한 나라이며 경의를 표해 마땅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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