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좋은 인생

by 격암(강국진) 2020. 3. 15.

20.3.15

좋은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좋은 인생이 뭔지에 대해 충분조건을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좋은 인생이라면 적어도 다음의 두가지는 갖춰야 할 것이다. 하나는 가진 것의 조화다. 우리가 많이 가졌다고 해도 그것을 잘 조화롭게 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가진 것의 조화라는 문제는 종종 무시되는 것같다. 

 

산처럼 많이 돈을 가졌다고 해도 전혀 그 쓸 곳을 알지 못한다면 오히려 그 돈을 가지지 못한 것보다 나쁘다. 큰 돈을 소유하자면 그 돈을 얻기 위해 큰 노력을 해야 하고, 그 돈을 가지고 나서도 그 돈을 관리하고 지키는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 한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머릿속에 많은 지식을 채워넣기만 하는 것도 댓가를 요구하며 그 지식들은 정리되어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종종 지식을 삼키기에 바뻐서 그걸 정리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는 아는게 독이 될 수 밖에 없다. 

 

한국이 부유해진 요즘 기성세대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흔히 그들이 많은 것을 가졌다는 것을 지적하며 불평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유는 어떤 의미에서 저주 일 수도 있다. 양적으로 소유를 많이 하는게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고 소유에는 댓가가 따르며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소화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어렸던 시절에는 한국의 모든 것이 엉성했고 그래서 나빴다. 하지만 그래서 젊은이들도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우리 나라가, 이 사회가 뭘 결핍하고 있는지는 깊은 통찰력따위가 없어도 분명했고 가난한 시대였으니 작은 성취에도 기뻐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오늘날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진 젊은이들은 훨씬 더 대단한 성과를 낼 것을 요구받는다. 과거의 기성세대는 힘들어도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그들이 원하는 나라를 만들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미 존재하는 기성시스템안에서 그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많아서 쉴 틈이 없다. 기대하는 삶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그걸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과연 그들이 더 풍요로운 나라에 태어났기 더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좋은 인생이 가져야할 두번째 조건은 체험이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모두 먹었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흔한 햄버거나 김밥을 맛있게 먹어본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10억가진 사람은 1억가진 사람보다 행복하고, 이사는 부장보다 행복하며, 전 세계 일주 여행을 해 본 사람은 자기 마을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유는 필요한 것이고 어려운 것이지만 체험은 당연한 것이며 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행복을 너무 빨리 객관화한다. 그래서 성공이나 행복이란 이러저러한 거라고 수치가 제시되고 그 숫자는 크면 클수록 좋다. 

 

하지만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은 그것을 체험하는 우리를 바꾼다. 물한잔이 필요한 목마른 사람에게 물한잔은 소중하며 아주 맛난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이 한정없이 더 있으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지금 입장에서 어떤 것이 좋다고 객관화하고 그것을 한정없이 확대해석하는 가운데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잊게 된다. 그게 정말 좋은 것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세계를 한바퀴 여행하면서 인생최고의 순간을 보낸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도 세계를 한바퀴 돌면 무조건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것이다. 요리조차도 레시피대로 해서 같은 맛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인생을 그렇게 대충 수치화하고 객관화해서 그렇게 껍데기만 똑같이 따라하면 내가 같은 체험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학력이 나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녀보지 못한 부모는 자식이 학벌좋고 좋은 직장에 다니기를 원한다. 그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고 옳은 일일지 모르나 그것도 지나치면 큰 착각이 된다. 그것은 물한잔을 원하는 사람이 물 한 탱크면 얼마나 행복하겠냐면서 자식에게 물 한 탱크를 구하는데 전력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그렇게 하는 동안 정말 중요한 것이 희생당하고 있을 수 있고 정작 물 한 탱크 분량의 명성과 학벌을 가지게 된 자식은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전혀 안 행복할 수도 있다. 

 

좋은 인생에 있어서 더 많이 가진 것의 가치는 예술의 창작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림을 그릴 때 흑백의 수묵화를 그릴 수도 있고 더 많은 자유도를 가진 채색물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자유도를 가진다는 것이 반드시 더 훌룡한 예술작품을 가능하게 할까? 

 

예술은 제약과 창의성의 싸움이다. 즉 제약은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있어서 장애이기도 하지만 창의성을 발휘하게 만드는 기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존의 형식에 따라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할 때 그것은 극복해야 할 장애가 되지만 동시에 우리가 훌룡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모든 형식을 파괴하고 작품을 만든다고 훌룡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일찌기 고전역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양자역학이라는 혁명적 이론을 제시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혁명은 어쩔 수 없을 때 꼭 필요한 부분에만 집중해서 일으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 시대가 예로부터 내려오는 형식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내용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형식은 몇몇 사람에 의해 조심스럽게 파괴된다. 그 파괴조차도 시대적 과제에 집중해서 파괴되는 것이지 아무렇게나 파괴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진짜 혁명이다. 

 

우리 중에는 로또복권에 맞아서 10억이나 천억쯤 가지게 되면 진짜 행복하고 보람차게 그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그 돈이면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사람이 더 많다. 그 소유를, 그 소유가 주는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지는 것에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의 한계를 충분히 느끼면서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풍요가 너무 많은 자유를 주고 그때문에 창의력이 고갈되고 남들이 말하는 대로 사는 인생, 유행을 따라가는 인생, 가진 것에 휘둘리기만 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