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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의미있게 살기

by 격암(강국진) 2020. 6. 20.

20.6.20

우리는 종종 우리가 무의미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우울에 빠진다. 그저 하루 하루 밥을 먹고 똥을 생산하는 삶이랄까. 누가 기억해주지도 못하고 뭔가를 남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막 출세를 하고 있거나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 개인적으로도 즐겁고 자극이 있게 사는 것같지도 않은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발전도 영광도 없이 우리는 그저 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저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나는 여기에는 발전과 의미에 대한 강박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성장하라, 의미있는 데 시간을 써라같은 조언을 많이 받았고 스스로도 스스로에게 그런 조언을 준다. 따라서 발전해야 하고 의미있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좀 더 부자가 되고, 좀 더 높은 자리에 올라서고, 좀 더 체력이 강해지고, 좀 더 많은 인맥을 가지게 되고, 좀 더 많은 글과, 작품과 실적과 제자를 생산하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사는 것으로는 안된다. 우리는 의미있게 살아야 하고 성장해야 한다. 

 

물론 이런 강박은 우리의 처지가 정말로 다급해지면 사라진다. 정말 살아남기가 힘든다는 생각이 들정도가 되면 그때는 발전은 커녕 그냥 현상유지만 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재수가 좋아 우리의 삶에서 극단적인 어려움이 없어지고 나면 이제는 이 발전과 의미에 대한 강박이 되살아나고 심하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10대나 20대에는 몰라도 중장년기를 넘어 노년기로 접어들면 계속 발전하고 계속 의미있게 살아야 겠다는 몸부림은 스스로에게 무리한 욕심을 가지라고 촉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소년기에는 아무 것도 안해도 변화가 생긴다. 그걸 아무 것도 안한다고 하기에는 미안하지만 사실 시간이 지나면 초등학생은 아무것도 안해도 중학생으로 성장한다. 청년은 자라서 연애도 하게 되고 평생 한번도 안가본 곳에 가보게 된다. 발전과 의미에 대한 강박은 어쩌면 30살이전의 삶에서 취득되어진 버릇같은 것일 수 있다. 

 

우리는 이것때문에 알게 모르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알면서 받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때는 아 그 스트레스가 나에게도 이렇게 대단했는데 나는 그걸 몰랐구나 하고 그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순간도 있다. 내가 병역을 마치기 위해 대학원을 휴학했을 때 나는 그것을 느꼈다. 군대에 입대해 보면 사람은 그저 밥먹고 하루를 보낸 것만으로 뭔가를 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데 왜냐면 그것은 하루의 병역을 마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나는 병역을 마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통장에 있는 돈이 나는 아무런 노동을 안했는데 저절로 나에게 돈을 주는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평생 느껴보지못했던 해방감을 이때 느꼈다. 

 

대학원에서 논문쓰고 공부하고 있으면 하루 하루가 성취감과 의미로 찰 것같지만 현실은 그렇지않다. 공부를 해도 공부가 쌓이질 않는다는 느낌이고 연구를 해도 연구가 결과를 만들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며 특히 박사학위로 들어가면 그렇다. 무슨 직업이든 그런 면이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사람마다도 다르겠지만 연구자의 삶은 사실 1년에 한달정도를 빼면 허무와 싸우면서 하루 하루를 보내다가 뭔가를 깨닫고 뛸듯이 기뻐하게 되는 일의 반복이다. 작가로 말하면 오랜동안 쓸만한 것을 쓰지 못하다가 겨우 아이디어가 떠올라 기쁘게 한권을 쓰지만 그러고 나면 다음번의 것을 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루 하루를 살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분야마다 차이는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논문은 세상에 없는 지식을 써내는 것이고 따라서 벽돌쌓듯 생각없이 노동하면 한편 한편 나오는 그런게 아니다. 몇년을 가도 논문한편 쓰지 못해서 원형탈모증이 생기는 사람들이 대학원에는 흔하다. 매일 몸부림쳤지만 결과로 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몇년을 보냈다는 생각때문이다. 젊은 사람은 젊어서 나이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이 발전과 의미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의미는 그냥 존재하게 되는 게 아니다. 그건 보려고 하는 사람, 볼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것이다. 또 우리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삶이 사실은 의미로 가득찬 삶이고 의미로 가득하다는 삶이 실제로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삶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전쟁이 났다고 해보자. 공부하고 진급하고 돈을 버는 일상의 삶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의 눈으로 보면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질 것이다. 한편으로 임박한 변화를 알지 못하고 그 세상안에서 아둥바둥 더 위로 올라가려고 했던 우리의 몸부림은 전쟁 이후의 우리의 눈에는 허무해 보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전쟁이전에 존재했던 매우 무의미해 보였던 하루 하루가 얼마나 의미로 가득 차 있는 것인지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매일 세끼를 먹고 평화롭게 마트에 가고 출근을 하는 일상이 너무도 귀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확실히 나는 발전과 의미따위는 필요없다고 쓸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저금을 해서 집살 돈을 모으는 사람이나 회사에서 학교에서 한단계 진급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일상의 삶을 무의미한 것으로 폄하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의미는 삶의 패러다임과 보는 관점에서 나온다. 객관적인게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삶의 객관적 조건을 바꿔서 의미를 찾기보다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할 수도 있다. 우물안 개구리의 삶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되기 전에 말이다. 

 

전기차 회사 테슬라와 우주탐사를 하는 스페이스 X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 같은 세계적 명사의 삶은 의미가 있을까? 물론 그렇다. 그는 어떤 식으로건 역사에 남을 만한 유명인이다. 하지만 그의 삶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걸 주목하라. 그의 성공은 다가 아니라면 상당부분 그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선택을 했기에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그 다른 선택들을 하고 성공을 하기 전에 머스크는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 그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적어도 많은 사람의 눈에는 발전이 없고 무의미한 삶을 산다고 보였을 것이다. 성공할 리가 없으니 그저 시간과 돈만 낭비한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다니던 박사과정이나 계속 다녀서 박사나 받았으면 얼마나 좋아. 저런 헛 짓을 하느라고 무의미하게 살다니 참 아깝네."

 

이런 말을 머스크에게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대학을 사버릴 수 있을 정도의 부자가 된 지금의 머스크를 보면 이 말은 웃기는 말이지만 그건 성공 이후의 일이다. 그걸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고 과제를 하고 논문을 쓰지 않고 있는 머스크가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거다. 머스크의 삶이 그렇게 의미있어 보이는 것은 그가 남과는 다른 선택을 했기 때문인데 남과 다른 선택을 하면 적어도 초기에는 그의 삶이 발전이 없고 의미도 없는 삶처럼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면 자신의 삶이 의미있고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꾸로 충분히 도전하고 있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남이 만든 게임의 한판 한판을 통과하듯이 남이 만들어 낸 길 위를 달리고 있을 뿐이고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비범한 삶을 사는 개척자에게 너의 삶은 왜 이렇게 무의미하냐고 비웃는 말을 날리기란 참 쉽다.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인생은 무의미할 수가 없다. 당신이 만약 남들이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된다면 하루 하루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화성에 가서 산다고 해보자. 당신은 분명히 그저 하루를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인류의 역사를 쓰고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마치 병역을 하고 있을 때의 나처럼 하루를 그저 보낸 것만으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이다. 설사 화성에서 살아남기라는 당신의 초기목표가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의미있는 시도였던 실패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의 핵심적 질문에 도달한다. 화성이나 달에 가거나 극지방이나 세계 최고봉을 자랑하는 산처럼 아무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가야만 우리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일까? 우리가 남을 흉내내고,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가야한다는 강박에서만 벗어나면 우리 모두의 삶은 모두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지방에서 한달살기라던가 귀촌의 삶같은 것이 유튜브같은 곳에서 인기있는 컨텐츠가 된지도 벌써 꽤 오래되었다. 이런 컨텐츠가 인기있는 중요한 한가지 이유는 이런 시도들이 현대의 많은 한국인들이 가진 한가지 다급한 질문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수도권에서 직장을 잡고 살아가는 것 말고도 대안이 될만한 삶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직장이 없어서 교육 인프라가 부족해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뒤쳐지는 것같아서 수도권에 살아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참 어렵다. 비싸고 바쁘다. 그런데 지방의 삶을 봐도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할 때 답이 없어도 그냥 살아보는 것이 왜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떻게 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살다보면 적응을 한다. 쉽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다가 실패하는 일도 많겠지만 어쩌면 적응을 해서 남들에게 이렇게 살면 지방에서도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방법이 있다고 소개해줄만한 것을 찾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살기를 보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하고 하루 하루를 사는 것도 다 의미가 있게 된다. 남들이 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된다. 농사를 짓거나 그 지역의 유지로 땅부자라거나 그 지역의 공무원이라던가 하지 않아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의 삶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할 때 높은 주거비를 포함하는 높은 생활비와 붐비는 도시의 삶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어찌보면 이것이 에베레스트에 올라가고 달에 가는 것보다 의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에베레스트나 달에 안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확실한 성공이 아니더라도 쉽사리 저건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런 태도는 우리를 다시 대안없는 흔한 삶으로 되돌릴 것이다. 

 

우리는 서로 조금씩 다르게 태어났고 각자의 판단으로 이 광활한 의미의 우주속에서 다른 곳을 헤매고 있다. 어떤 눈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의미로 가득 차 있는데 남의 삶은 그렇지 않다거나 그 반대로 보일 수도 있지만 관점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이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고대 그리스의 작은 도시국가였던 아테네에서 고집만 부리다가 죽은 소크라테스를 보고 사람들은 개죽음이라고, 그의 삶은 무의미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 사람들은 그가 서구문화의 아버지로 통하는 위치에 이르게 될 것을 몰랐을 것이다. 무의미해 보일 수록 오히려 그것은 의미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역사를 쓰는 일이다. 앞으로 나아가고 적응하는 적극적인 행위다. 그래서 하루를 버틴다는 것은 언제나 의미가 있다. 무의미해 보일 수록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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