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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빈 것의 쓸모

by 격암(강국진) 2020. 7. 1.

20.7.1

빈 것은 아름답고 흥미로우며 쓸모가 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빈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뭔가가 비어있어서는 안된다는 강박관념까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시간을 보자. 우리는 하루의 계획이나 한달의 계획을 세우는 일이 많다. 그래서 비록 앞으로 다가 올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해야 할 일로 가득 채우고 만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쓰러져 잠이 들 때까지 있는 시간은 모두 이것 저것으로 미리 다 채워 두고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학생이라면 오늘은 이런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에 하루를 가득 시간표로 채우고 시작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렇게 여행을 가거나 시간을 쓰는 것은 적어도 언제나 현명한 일은 아니며 아주 종종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우리가 여행을 가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가보면 뭘 좋아할런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해 버리면 미래의 나는 그 여행지에서 순간 순간 느끼고 배우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되더라도 과거의 내가 만든 계획때문에 그런 마음을 억누르게 된다. 이는 마치 멀리 있는 사람이 원격으로 자동차 운전을 하는 것과 같으니 그 자동차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좋기만 한게 아니라 아슬아슬하고 아쉬운 일이 되기 쉽다. 사람들은 계획이라는 선입견에 가득차서 위험해지고 아까운 낭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좋아서 아무 것도 더 필요없는 곳에 가서도 계획이 있으니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하면서 고생을 시작하고 그걸 낭비없는 여행이라고 부르기 쉽다. 뭐가 진짜 낭비인가?

 

미리 계획을 하고 시간이든 공간이든 돈이든 채워버리는 것은 한가지를 가정하는 일이다. 그건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를 미리 다 알고 있다는 가정이다. 이런 가정은 지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옳다. 예를 들어 이 세상 무슨일이 있어도 나는 지금부터 오직 이 책 한권을 공부하리라는 결심을 했다고 하자. 그리고 다행히 그게 옳은 판단이었다고 하자. 그런 경우에는 계획이 효율성을 크게 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그 책을 읽다보면 애초에 그 책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다른 것을 먼저 배우고 이걸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며 그런 생각이 지극히 옳은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애초의 생각만 고집하다보면 고생해서 책을 읽어서 좋을 게 없는게 아니라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 공부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계획없는 여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짧은 여행이나 공부도 그런데 긴 인생을 말하기 시작하면 미리 우리의 생각과 시간을 채워버리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초등학교때 세운 계획에 따라 평생을 산다는 것은 일관성과 의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인 동시에 끔찍한 이야기다. 그 사람은 초등학생때의 관점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빈 것의 아름다움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예술에서도 중요해 보인다. 일찌기 내가 좋아하는 수필가 윤오영은 예술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완벽한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에 더해 어떤 파격을 가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청자가 있다고 하면 완벽하게 대칭인 자기는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대칭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면서도 어느 부분에서 그 대칭을 깨는 파격이 있을 때 거기에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보이게 된다.

 

글쓰기도 그렇다. 글을 쓰기 전에 내가 할 말을 잘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늘어놓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완벽함과 균형감이 지나치면 그 글은 아무런 특징도 주장도 없는 글이 된다. 읽을만한 글은 대개 어떤 불균형이 있다. 어떤 부조화스러운 강조가 있다. 그리고 그 부조화안에 인간이 담기게 된다. 그 인간은 여기도 좋은 사람 저기도 좋은 사람하는 식으로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이게 지금의 내 마음이라고 솔직히 표현하는 인간이다.

 

파격은 빈 것과 같은 것이다. 파격은 마치 어느 부분은 세밀하게 그려놓고 다른 부분에 가면 넓게 공간을 비워놓은 그림과 같다. 파격은 보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이 빈 곳에 뭘 채워넣겠는가. 당신은 내가 왜 이 빈 것을 내버려 두었는지 아는가. 고전은 바로 이 빈 것을 가지고 있다. 세세히 그 시대를 파고들었는가 싶다가도 어디선가 갑자기 파격적으로 비약한다. 그리고 그 비약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라 시간이 지나고 읽어도 새로운 시대의 사람에게 새로운 의미가 있다. 그런 그림과 조각과 글은 보는 사람이 완성하는 것들이기에 고전일 수 있는 것이고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그의 건축물안에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빈공간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안도 다다오도 모른다. 오직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결정할 일이다. 다시 말해 안도 다다오는 건물안에 낭비스러워 보이는 빈 곳이라는 파격을 집어넣어서 건물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 빈 곳이 있어서 그의 건물은 자유스러워 진다.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는 할 일이 있다. 바로 그 빈 곳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있는 공간은 전부 방으로 만들고 땅과 공간은 최대한의 건폐율로 채워버리는 일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는 생각만큼 효율적이지 않다. 

 

사실 우리의 전통 한옥은 이런 빈 곳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집이었다. 뭐든지 계획을 세우고 공간과 시간을 채워버리려고 하는 서양의 시점으로는 후진적이고 불편하고 낭비같아 보이는 건축일 수 있지만 한옥은 어떤 공간을 서양처럼 완전히 특화시키지 않았고 중정이나 마당 그리고 대청마루같이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공간이 언제나 크게 존재했다. 사실 심지어 방들도 그렇다. 담장안에 있는 한옥의 정원은 우리가 요즘 흔히 보는 전원주택 앞의 정원과는 다르다. 그것은 비어있어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다. 

 

요즘의 흔한 전원주택은 종종 넓은 부지안에 거대하고 바깥으로 폐쇄적인 건물을 세워 놓은 것이다. 그리고 남은 부지도 돌이며 나무며 잔디로 가득 채워놓는다. 그런데 그런 건물들은 대부분 밖의 공간은 거의 쓸모가 없고 그 크기가 우리에게 부담을 준다. 게다가 그 건물은 서구식 사고방식으로 미리 용도가 다 결정되어 있어서 그 거대한 크기에 비해서는 쓸모도 적다. 서재는 서재고 부엌은 부엌이고 거실은 거실이며 침실은 침실이기 때문이다. 창과 문을 열고 닫는 것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집으로 변신할 수 있는 한옥과는 다르다. 

 

우리는 빈 것의 소중함, 쓸모 없는 것의 소중함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 의미를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지금 쓸모를 알 수 없는 일을 하거나 물건을 산다는 것이 반드시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그 빈 것은 나중에 다른 것과 이어져서 의미를 가지게 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된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대개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서 나온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 의미를 모르면서 그냥 하고 있다는 사실자체에 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싶으면 내가 돈받고 하거나 누구 명령을 듣고 하는 일이 아니라 할 필요가 없을 때 여가시간일 때 내가 뭘 하는 가를 보면 안다. 그냥 쉬려고 하는데 당신은 왜 요리를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텃밭을 가꾸는가? 당신은 왜 그 시간을 누군가와 만나서 쓰려고 하는가. 당신 스스로도 그 이유를 잘 모르면서 하고 있는 일이야 말로 가장 당신의 마음에 호소력이 있는 일이다. 아마도 당신은 그 빈 것의 의미를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은 그저 빈 것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당신이 만일 뭔가에 크게 성공한다면 당신은 대개 나중에야 깨달았던 그 빈 것의 의미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작가가 되어야지하고서 글을 써서는 끝내 작가가 된다는 이야기는 허황된 이야기다. 그보다는 남들이 걱정할 정도로 글을 쓰는 '빈 것'의 행동을 한 끝에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가 훨씬 더 현실적이다.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과학을 하는게 아니다. 과학문제가 재미있어서 흥미를 가지며 시간을 낭비하다보면 어느새 과학자가 되어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나중에 그것이 의미있고 마치 계획을 세웠던 것같아 보이는 일이 되더라도 그것들은 모두 애초에 빈 것이었다.

 

그러니 빈 것을 모두 없애버리고 빈 것의 아름다움을 무시하고 그런 걸 시간방비로 여기며 죄책감까지 느끼는 사람들이야 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남이 만들어 놓거나 과거의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서 탈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기 주변 사람도 그 빈 것을 다 채우라고 윽박질러서 같은 운명에 처하게 만들면서 자신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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