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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지능이 최고의 무기가 되는 시대

by 격암(강국진) 2020. 4. 28.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4월 28일 현재 세계의 코로나 환자는 3백만을 넘겼고 사망자는 21만명이다. 그리고 미국의 코로나 환자가 백만을 넘었다. 이 코로나 사건내지 코로나 전쟁은 적어도 백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단한 피해를 세상에주고 있다. 


이 코로나 전쟁은 집단적 지능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과 싸우는 것은 강력한 학자나 뛰어난 정치적 리더 혹은 공무원 조직같은 일부의 힘만 있어서는 안된다. 국민이 잘해도 정부가 망칠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노벨상을 열개받는 학자가 있다고 해도 그 학자를 국민들이 신뢰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학자 개인이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언론의 역할도, 사법부의 역할도 과학자의 역할도 심지어 시인이나 가수의 역할도 다 중요하다. 





한국의 경우는 신천지라는 사이비종교집단이 얼마나 이 집단지성에 큰 위협인가를 보여줬다. 다행히도 한국사회는 그 몸통을 이루는 집단지성이 이런 사이비종교집단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따라서 위험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일본,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등 여러나라에서 모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특히 강대한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으로 지구상의 유일한 슈퍼파워로 불리던 미국이 이번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핵무기나 항공모함을 얼마나 가지고 있건,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려 댈 수 있건 간에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정부와 국민이 모두 멍청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3차 세계대전으로 종종 불리는 이 코로나 전쟁은 우리가 지금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전쟁의 진행을 보면 그것은 마치 엄청난 농지를 가지고 농업경제를 굴리던 봉건시대의 기득권자들이 산업혁명이후 상공업을 중심으로 돈을 버는 세력에게 망가지는 것을 보는 느낌이다. 봉건제의 사람들은 새 시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밀을 많이 생산하고 최대한 큰 소를 키우는 농부도 그다지 돈을 벌지 못하는 시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건을 그저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 상업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지금 이순간 일본, 서유럽, 미국등 전통적으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부자나라의 국민들은 어리둥절한 상태에 빠졌다. 그들은 그들의 강함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들을 쫒아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라들이 그들보다도 오히려 훨씬 앞에 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마스크나 진단키트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문제뿐만 아니라, 지극히 어리석게 행동하는, 그러니까 사이비 종교 단체의 사람들같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가득하며 한국같은 나라와는 달리 그들은 그 비합리적인 사람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어떤 때는 대통령이 그들중의 하나다. 선진국의 시민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느꼈던 것은 그들은 애초에 저성장한 다른 나라보다 더 시민의식이 뛰어나고 자질이 뛰어나다는 점이었으므로 이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구의 개인주의는 파산했다. 그들은 그들이 백년내지 이백년전에 만든 사회적 틀안에서 최대한 개인의 자유를 확대하고 그것에 안주하는 일을 해 왔다. 서구 개인주의의 이상향은 사실 지구위에서 혼자 사는 것이다. 타인은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다. 더 많은 자유는 더 가치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20세기 초반에 빅브라더를 꿈꿨던 사람의 비전에 아직도 빠져 있다. 그들은 한국이 하는 감염자 정보추적에 대해 비난하고 반대하고 머뭇거린다. 


웃기는 것은 지금 우리는 이미 구글이 우리의 검색내용을 다알아서 우리에게 맞춤 광고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우리는 SNS가 세계를 연결하고 세계가 온갖 복잡한 공급망으로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도 우리를 자유로운 개인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사회는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에 대해서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간섭을 한다. 자신의 영토안에서 홀로 왕처럼 사는 것을 추구하는 이상은, 즉 사유재산을 강조하는 서구 개인주의의 이상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집이 벽돌이 아니듯 사회적 가치는 대부분 연결에 있으며 사회는 개인의 단순합이 아니다. 우리는 이성을 가진 집단이 필요하다. 빠른 통신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협업하는 이 집단은 개인에 주목하면 별거 아니지만 코로나 처럼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던져지는 위협 앞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 


말하자면 이전에는 무조건 큰 나라가 좋았다. 그 큰 나라를 강력한 중앙이 움직이면 작은 나라는 이길 수가 없었다. 지능보다는 덩치가 더 중요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낡은 이데올로기에 빠진 사람들은 문제를 만든다. 그들에게 사회적 질서란 우선 중앙에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구성원 각자가 자기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망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국의 대통령이 주지사들과 설전을 벌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 잘 들어나고 일본의 아베총리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일본을 어리석은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 잘 들어난다. 


문제는 세가지다. 첫째는 드물고 치명적인 블랙스완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방대하고 정확한 정보가 수집되고 처리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째는 이 것들을 빠르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으로 할 수 없는 것일뿐만 아니라 중앙집중식인 기존의 국가들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 19는 치명률도 높지만 전파속력이 너무 빨랐다. 이렇게 되면 여러 국가들은 느릿한 판단으로는 아무 대비도 없이 코로나 19의 습격을 받게 되던가 아니면 과도한 반응으로 자해를 하기 쉽다. 후자의 예에 해당하는 것은 중국일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우한봉쇄로 코로나를 이겼다고 말하지만 중국처럼 거대한 나라가 코로나 19와의 싸움에 몰두하면 경제적 피해가 너무 커질 것이고 그렇다고 경제를 신경쓰기 시작하면 다시 코로나가 퍼질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의 힘도 있어야 하기에 덩치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는 민주성을 가진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정부나 어떤 인물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빨리 퍼지고 그것이 현실화되고 개선되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집단, 그런 집단적 지능을 가진 집단이 필요하다.


집단 지성은 빠른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같은 하드웨어도 필요하고, 그런 환경에서 지속적으로 훈련받은 인간들도 필요하다. 한국은 촛불혁명같은 것을 통해 그런 훈련을 해온 셈이다. 박근혜라는 국난이 우리에게 떨어졌을 때 그것과 싸운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은 코로나 전쟁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딜 찾아가야 하는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운 것이다. 우리는 방관자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뭉치면 촛불혁명같은 대단한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누군가는 백서를 만들고, 누군가는 취재를 나선다, 누군가는 매뉴얼을 번역하고,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짜낸다. 하드웨어 이상으로 이런 신뢰와 경험이 집단지성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이런 집단지성이 한 국가에게 최고의 무기가 되는 시대로 진입했다. 코로나 19는 그걸 깨닫게 해주는 계기다. 이런 집단지성이 보다 실체화되면 이것은 기존의 언론, 사법, 경제, 정치를 뛰어넘고 그것을 크게 바꾸는 존재로 뚜렷하게 등장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국가나 거대 재벌을 능가하는 개미들의 집단행동이 존재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일본은 한국 사람들이 불매운동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우습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집단 지성이 바로 지금이 불매운동에 들어가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면 그것이 정말 사소한 일일까? 다시 말해 불매운동을 하냐 안하냐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데 그걸 선택하는 것이 집단지성이었다면 어떨까.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네만은 인간은 비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간이란 이 글의 문맥에서 말하자면 집단 지성의 일부가 되지 못한 근대사회의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다. 만약 집단지성이 이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제대로 된 판단들을 해내는 시대가 된다면 그런 시대에 그저 평범한 개인들은 마치 인간과 침팬지간의 차이만큼이나 이 집단지성과 다를 것이다. 


물론 이 집단지성이라는 게 진짜로 실체인지는 알기 어렵다. 단순히 인터넷에서 몰려다니면서 다수의 횡포를 저지르는 것을 집단지성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집단지성이란 훈련받은 인간들과 뛰어난 정보통신 하드웨어가 융합된 것으로 차차 우리가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인공지능이란게 별게 아니다. 통계분석도 인공지능이고 구글 검색도 인공지능인데 정보검색이 오늘날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면 인공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는 이미 와있다. 


그것은 집단지능이 드문 사건에 반응하고, 방대한 정보를 수집 분석하며 그것을 빠르게 해내는 일에 있어서 그야 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대다. 그렇게 해서 그것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코로나 19같은 일이 벌어질 때 가장 작은 피해를 입거나 오히려 큰 수익을 올려서 성장하고 부유해지는 시대다. 


집단 지성은 아직은 유령같다. 그러나 코로나 전쟁같은 사건이 그것을 자꾸 움직이게 하고 그러면 언젠가 그것이 뚜렷한 존재감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럴 때가 오면 마치 신이 보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가듯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집단 지성을 하나의 실체로 믿고 그것에 의존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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