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한국 언론의 정신병

by 격암(강국진) 2020. 5. 3.

한 기상학자가 자신의 테드 강연에서 사람들은 세가지 편견으로 인해 인지적 오류를 범한다고 소개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확증편향, 더닝-그루거 효과 그리고 인지부조화.


사실 그 강연은 과학적 지식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걸 들으며 나는 한국 언론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요즘 자기 정체성 붕괴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세가지 편견이 뭔지를 하나 하나 말해보자.


확증편향이란 자신이 믿는 것을 증명해 주는 증거만 보는 태도를 말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계속 보다가 결국 그 사람이 뭔가 의심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하면 바로 '봤지!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하고 외치면서 역시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자신이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주식사서 좀 올라본 경험있다고 자신을 주식전문가로 여기고, 유명인과 인사 몇번해봤다고 자신을 사회 지도층으로 여기며, 실제로는 뭐하나 깊게 공부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세상 모든 일에 자신이 전문성이 있다고 믿는 그런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자신의 기존 생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정보나 생각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그걸 억누르려는 경향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확증편향의 반대편인 셈이다. 확증편향은 믿고 싶은 것의 증거를 자꾸 모아서 자기 생각을 더 확실하게 만들어 심리적인 만족감을 얻는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해가 안되는 정보는 없는 이유를 만들어 의미를 뒤집는다. 신포도와 여우의 이야기처럼 포도를 먹을 수 없다는 상황이 고통스러우면 애초에 나는 포도를 원하지 않았으며 저 포도는 너무 시다고 말해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 너무 잘 들어 맞는 것이 한국언론이라는 것에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예를 들어 보자. 언론은 국민들에게 쓸만한 정보를 줬는가? 솔직히 유튜브나 트위터를 하거나 잘가는 게시판이 있는 사람들은 신문 방송을 보는 것보다 그런 곳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더 빠르고 더 정확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한국언론의 보도는 느리고 그 분석은 둔하고 엉성하다. 


한국 언론은 그 능력과 전문성을 생각하면 스스로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다. 그저 자신들이 돈이 많고 높은 경쟁률을 뚫어서 합격한 사람이며 많은 돈을 들여서 컨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신이 블로거나 유튜버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차이가 없다. 한국 언론은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자신이 뭘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 과대망상에 빠져 있다. 문제는 언론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의 능력과 재능 이상으로 그 시스템이다. 중립이 이런 거라는 고정관념, 기사는 본래 이렇게 쓰는 거라는 관행 같은 것이 최종적 결과물을 그렇게 만든다. 


예를 들어 이름없는 블로거나 유튜버라도 그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의견을 말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즉 그들은 옳건 그르건 이 말은 내가 책임질 내 의견이며 내 해석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거대 시스템안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은 그저 타성에 젖어서 부품역할을 하는데 익숙하고 그러다보면 자기가 뭘 못보는지를 모르고, 세상은 본래 이런거라는 생각에 빠진다. 자기가 쓴 기사에도 자기가 책임을 안진다. 그 기사는 자기 기사가 아니라 중앙일보 기사나 KBS 보도라는 생각을 하는 것같다. 어느 정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위에서 칭찬해 주는 대로 썼으니까 말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 언론들은 대안도 전문적 정보도 없이 그저 타성적으로 정부 욕하기에만 바빴다. 그리고 또 타성적으로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은 잘하는데 우리는 왜 이러냐는 결론으로 뛰어들기에 바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지고 있는 전수진 중앙일보기자의 한국인이라서 미안하다는 기사가 좋은 예다. 





한국인이라서 미안하다? 외적이 처들어 와서 누구는 목숨걸고 싸우는 전쟁이 벌어졌는데 그런 전쟁이 터지자 마자, 우리는 전쟁에 졌다면서 한국인이라는 게 부끄럽다고 편안한 곳에서 노트북이나 두들기는 것이 기자인가? 그런 개인적인 생각이 블로그의 글로 남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을 대표한 중앙이나 조선일보의 기사로 일본에 번역되어 세계로 전송되는 것을 봐야 하는 것이 난리통에 빠져서 정신없는 국민들이나 의료인이나 정부에게 한국을 대표한다는 언론사가 해야 하는 일인가? 그렇게 냉큼 그렇게 빨리 한국인이라서 부끄러워해야만 했는가?


또 다른 예를 보자. 얼마전에는 한 신문사가 한국총리가 일본에 의료물자를 지원하는 것을 고려한다고 근거없는 기사를 써서 난리가 난적이 있다. 그 기사를 일본언론이 받아쓰고 그게 다시 한국에 보도되어 많은 한국인들은 흥분하고, 일본인들은 필요없다는 식의 댓글까지 달린 일이 있었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그런 고려는 아직 해본 적이 없다고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런 사람들이 나는 언론인이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고 자신의 목소리를 억누르면 언론탄압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한국 언론인들은 대개 한국인은 열등하다라는 확증편향에 빠져 있다. 이 점에서 이데올로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보통의 한국인들과 언론 종사자들은 다르다. 한국에서 보수 정치권에 널리 퍼져있는 이 신념을 보수건 진보건 언론사 직원들은 대부분 다 공유한다. 누군가가 그걸 지적하면 그 사람은 종종 민족주의에 빠진 광신도로 취급받는 다.


한국에서 보수쪽은 일제침략이나 군사독재의 정당화를 위해 한국인이 열등하다는 생각을 상당히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한국인이란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주는 정도의 복지제도만 시행해도 그 다음부터는 무제한의 도둑처럼 정부를 공격해 나라가 망할 거라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그저 빨갱이 간첩 한명이면 무더기로 속는 인간들이 한국인이라고 믿는다. 


진보도 사실 거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 일본, 유럽따위의 외국을 숭배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 숭배를 종종 보편주의로 가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독일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노동자나 여자나 외국인이나 성적소수자나 과학자등 모든 사람들이 천국처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헬조선이라고 말하면 스스로를 진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지는 경우가 한국에는 많다. 이게 열등감이 아니면 뭔가. 


이런 한국언론의 열등감 확증편향은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는 거의 매국노같은 입장으로 보이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 계속 우리는 못하다는 말만 하다보니까 요즘은 BBC가 민족 정론을 펴는 언론사라고 사람들이 자조섞인 말을 한다. 채널 A가 한국 진단키트가 불량률이 높다고 보도한 것이 돌아서 일본 사람들은 한국 진단키트 불량률이 높은 줄 안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번역판에 익숙한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경제제재 하면 한국정부가 바로 항복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문재인이 탄핵당하기라고 할 줄 알았을 것이다. 일본이 한국을 억압하면 일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고 한국내부에서 반정부 시위라도 일어날 줄 알았을 것이다.  한국 보수의 환상을 아베총리같은 일본사람들에게 집어넣어서 한국을 위험하게 만드는 행위는 매국노같은 행위가 아닌가? 


이 열등감과 근거없는 비방자체가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결과지만 한국언론이 극복해야 할 고통스런 현실은 이것말고도 많다. 나는 왜 기레기라고 불리는가, 나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고, 나도 나름대로 애국자인데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언론은 중요하고, 이 사회의 기둥이라는 주문을 외운다, 그들은 끝없이 자신들은 팟캐스터나 유튜버나 블로거 같은 사람들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언론신뢰도는 날로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광고수입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예전에는 김어준을 무시하던 때도 있었던 그들이 요즘은 너도 나도 예능같은 뉴스를 추구해서 자기들이 유튜브로 진출하고 김어준을 흉내내고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 J같은 방송을 본 사람들은 적어도 한국 언론이 정상 비슷한 곳에 도달했다는 생각을 안할 것이다. 사실 김어준이 능력이 있다고 해도 겨우 라디오 방송이 한국 방송에 큰 영향력을 미칠 정도라는 것은 한국 언론의 허술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 인력과 그 자금을 생각하면 말이다. 


한국의 기성언론은 일단 스스로를 사회를 감시하는 존재이며 사회적 개혁의 도구나 사회적 안정을 위한 기둥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당신들은 감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시당해야 하는 적폐다. 개혁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혁당해야 하는 개혁의 대상이다. 사회적 안정을 위한 기둥이 아니라 사회적 안정을 위해 뿌리 뽑혀야 하는 사회적 위협이다.


이런 나의 말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럼 언론은 필요없다는 말인가. 당신은 언론 자체를 싫어하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언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언론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항상 이런 생각에서 나온다.


나 아니면 안된다.


그런 과격한 방법은 개혁이 아니지만 지금 한국의 메이저 언론사 기자들을 모두 섬으로 추방해도 한국에 언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언론은 존재할 것이다. 좋은 정보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적폐로 변해버린 언론종사자들이 필요없다고 생각할 뿐이며 그들이 싫을 뿐이다. 자기 정체성도 모르면서 흐느적거리는 한국 언론들은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들의 민폐가 그들을 적폐로 만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