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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일본을 도와야 할까?

by 격암(강국진) 2020. 5. 4.

요즘 코로나 문제로 일본을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이는 사실 어느 정도 언론이 만들어 낸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자꾸 반복되니 정리가 필요한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단 우리는 먼저 한가지 원칙을 확인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국난 극복의 주체가 우리가 아니라 그 나라라는 것입니다. 국난은 스스로 극복하지 못할 때 극복되기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지만 잊혀지기도 아주 쉬운 원칙입니다. 


무엇보다 이 원칙은 한계도 있습니다. 극빈에 시달리거나 나라가 내전에 돌입해서 국가적 기능이 정지해 버린 상황도 세상에는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나라를 무시하는 일이 인도적 차원에서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입장에서는 푼돈에 불과한 원조만 해도 어떤 나라가 집단적 기아나 집단적 발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그걸 자력구제의 원칙에 의해 방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기가 쉽지 않아도 사실 대개 다른 나라를 주체성의 원칙을 무시하고 돕는 것은 잘해야 무의미하고 종종 무의미한 것보다 더 나쁩니다. 단순히 아프리카 사람들이 굶는다고 식량을 보냈다가는 그 원조덕분에 인구가 늘어나고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더 대량의 기아로 인한 죽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탈레반이 나쁘네 후세인이 나쁘네 하는 식으로 아프칸이나 이라크를 침공하는 것은 어쩌면 미국같은 강대국에게는 쉬운 일이겠지만 그 대단한 미국도 아프칸과 이라크에서 벗어날 방법을 몰라서 고민합니다. 돈많은 유럽국가가 식민지안에 맘대로 질서를 만들고 그때문에 르완다의 비극같은 비극이 일어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결국 돕는다는것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국가간의 원조란 대개 내 자식처럼, 내 가족처럼 무한 책임으로 돕는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여유있는 만큼만 신경쓸 뿐이죠. 게다가 우리 자신도 천사가 아니니 소위 도움의 과정속에서 비극도 만들어 집니다.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일은 너무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어려움에 대해 우리 자신의 입장을 당연시한 나머지 그것의 해법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우리 해법이 옳다는 겁니다. 그것에 대해 상대방의 국가가 동의하면 좋은 일이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종종 불교국가에 기독교도가 가서 잘살게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인간은 주말에는 교회에 가야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도에게는 그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불교도에게 그것은 종교분쟁을 일으키고 국가분열을 일으키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론에 대해서는 이쯤하고 일본을 봅시다. 정부가 일본이 원조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이 없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이래서 중요한 겁니다. 더구나 일본은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3배반이나 큰 거대 강대국입니다. 일본의 현실이 어떤 면에서는 안타까울 수 있지만 그 일본을 무슨 불쌍한 극빈국가 보듯 하면서 접근하는 것은 큰 착각이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현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 우리 입장을 너무 당연시해서는 안됩니다. 답이 마스크이고 진단키트이며 한국의 방역 시스템이니 빨리 우리 것을 배워서 드라이브 스루도 하고 접촉자 추적도 하라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그들이 우리 의견을 물어보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입니다. 나라마다 입장은 다르니까요. 싱가폴이 방역이 무너져서 코로나 환자가 급증했지만 초기에는 한국보다도 인구당 환자수가 더 작았습니다. 그렇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싱가폴이 한국에게 방역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조언하는 것은 싱가폴과 한국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상황도 다르고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는데 오만한 행동처럼 보이겠죠. 실제로 요즘 인터넷에는 베트남이 건방지다는 말이 아주 많은데 이에는 코로나 상황초기에 베트남이 자신을 방역선진국으로 여기면서 한국을 조롱했다는 말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 작은 도움도 그 나라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같은 강대국에서도 진단키트 얼마 가져가고 고맙다고 하는 주지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시 미국이 원하는 도움을 우리가 줬기 때문이죠. 주체성의 원칙을 어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월권을 하면서 돕는다고 하면 홍콩이나 싱가폴도 한국은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일본을 월권해서 돕는 다는 발상은 대단히 비현실적입니다. 일본이 가난하고 무식한 나라가 아닙니다. 피해는 크겠지만 정신만 차리면 우리보다 더 대단한 대국입니다. 거기서 원칙을 어기고 돕니 마니 하는 말로 소동을 일으키면 안그래도 나쁜 양국관계는 더 나빠질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베트남을 기분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유튜브에는 베트남과의 관계를 다 정리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너무 확신하기 쉽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그저 조금 과도한 표현쯤으로 보이겠지만 저쪽 국가에서는 조롱과 침략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이래서 섯불리 다른 국가를 돕는다는 발상은 상상이상으로 위험한 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정부발표가 믿을 만하고 일본발표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들은 그 반대입니다. 그들도 자기 정부발표에 의구심을 가지지만 그들에게 한국정부란 한국인이 보는 베트남 정부같은 겁니다. 가난한 나라,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그들은 한국의 통계가 일본의 통계보다 부실하다고 반대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현실인식과 일본인의 현실인식은 크게 다릅니다. 일본인들 중에는 지금의 코로나 전쟁에서 일본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됩니다. 즉 그들이 이미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겁니다. 공식통계상 사망자가 많지 않으니까요. 


일본은 망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어떤 식으로건 손해를 볼지 몰라도 국난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한국이 월권해서 간섭할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버릴 진단키트나 마스크가 산처럼 쌓여 있다면 이것을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겠죠. 하지만 지금 세계 전체가 이 방역물품이 부족해서 난리입니다. 인도적 차원이라고 하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이나 러시아 사람들 그리고 유럽인들이나 미국인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그런데 그걸 왜 일본에 줍니까? 


원칙은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기발한 이유가 있다면서 원칙을 어기려고 하지만 그게 다 숨겨진 위험이 있는 접근법입니다.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 원칙을 무시하고 그래도 우리가 도와야 한다는 둥하는 식의 발언은 없는 게 좋습니다. 이미 한국원조 이야기로 일본내에서 혐한은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원칙없는 원조논의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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