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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파업에 대한 이공계 전공자의 단상

by 격암(강국진) 2020. 8. 27.

요즘 의사파업 이야기가 시끄럽습니다. 그걸 듣다보니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그 분야에서 박사를 따고 연구원으로 살았던 저로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군요. 미리 말해 두자면 저는 굳이 의사편을 든다던가 혹은 그들에게 반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부분에 따로 또 말하겠지만 뭐든지 세부사항이 중요하고 보편적 시각이란게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지요. 

 

예를 들어 저도 아는 사람중에 의사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실 애초에 공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어느 정도의 고생을 하고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았는가를 따져서 만약 그가 공대에 입학했더라면 어땠을까를 비교하는 일은 조심해야 합니다. 고생이나 보상 그리고 만족같은 것은 단순히 측정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고생했다지만 이공계 학생들은 고생 안한다고 하는 것도 오만이고 애초에 고생한 만큼 물질적 댓가든 정신적 만족감이든 성취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입니다. 운도 아주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몇가지 이야기가 하고 싶습니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사람을 인적 자원으로 파악하는 일에 익숙한 이 나라에서 어떤 분야의 개선을 위해서 인원을 늘려서 경쟁을 더 많이 하게 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너무나 자주 반복되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스티브 잡스가 유명하면 스티브 잡스를 키우기 위해 인력을 늘린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이 잘나가면 새로운 인공지능 인력을 키운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고위 공무원들이 큰 탁자에 둘러앉아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 쉽게 상상됩니다. 

 

A: 국가적으로 자동차 산업을 육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B: 그럼 관련학과의 정원을 키우고 학생들로 하여금 그 학과에 더 많이 지원하도록 격려합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고 그럴듯해 보일 이 대화는 두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자동차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우는 어떤가 하는 겁니다. 그들의 고민은 아는가요? 지금 스티브 잡스나 아인쉬타인이 어디선가에서 굶어죽고 있는데 스티브잡스와 아인쉬타인을 키우는 학과의 정원을 늘리려는거 아닌가요?

 

두번째는 그렇게 졸업생을 늘리면 자연히 인력과잉공급이 일어나고 승자와 패자가 생깁니다. 즉 관련학과를 졸업했는데 경쟁에 지는 겁니다. 그들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닙니까? 그들은 정말 말그대로 무슨 고무나 대리석같은 천연자원입니까? 예를 들어 물리학을 발전시키자고 물리학자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그보다 백배쯤 정원을 늘려서 물리학 전공자를 만들고 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물리학을 발전시키게 한다고 해 봅시다. 그럼 99%의 인간들은 그냥 실험용 재료가 된 겁니까? 화려한 선전에 속은 학생들은 자기 선택이었으니까 자기가 자기 인생책임지라고 하면 끝입니까? 

 

많으면 고등학교 졸업생의 80%가 대학에 가는 이 나라에서 이공계 정원은 계속 늘어왔습니다. 이런 현실이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내가 말한 위의 대화같은 발상을 통해 결국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같은 대기업을 키우는 비료로 학생들이 사용된 면이 있습니다. 빌 게이츠도 마크 주커버그도 일론 머스크도 없는 이 나라에서 말입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랬죠. 이제야 네이버니 카카오니 하는 신생 부자 회사들이 생긴 참입니다. 

 

이런 현실은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들에 대해 공감하게 하기도하고 그 반대의 감정을 느끼게도 합니다. 뭘 느끼게 되는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의사들이 스스로가 사회를 위한 인적자원으로 소모되는 상황을 막고자 집단행동을 하는 것이 공감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나라에서 그런 문제를 피해간 거의 유일한 집단이 의사와 법조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본인들만 제일 억울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대자동차 블루컬러 노동자의 파업이나 의사 파업 이야기는 들어봤을 겁니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의 파업이나 반도체 관련 이공계 연구원들의 파업같은 이야기 들어봤습니까?

 

한국에는 이공계 전공자들에 대한 이상한 선입견이 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책상에 앉아서 복잡한 것에 대해 일하기를 좋아하는 원래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둘째로 그들은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나 쓰고 펜대나 굴리며 일하니 그다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은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기를 좋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업따위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죠. 본래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이런 나라가 이공계 직원을 원하는 기업에게는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의사는 왜 다를까요? 의사들이 공부 잘해서요? 그건 대학입시라는 전쟁에서 승리한 권리입니까? 사실 의대합격점수가 그토록 높다는 것은 반드시 의사에게 유리한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모든 의사가 인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외과의사같은 특정 전공이 인기가 없다던가 모든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게 아니라 서울 지역은 넘치는데 지방에는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봅시다. 의대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 나라에는 외과의사가 되고 싶고, 지방에서라도 의사로 살고 싶은 학생들이 많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의 높은 의대합격점수는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의사가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에서 의사가 된 사람들은 외과의사가 하기 싫고 지방에서 의사로 살기 싫다고 합니다. 이걸 크게 보면 뭔가를 하고 싶은 다른 사람은 그걸 못하게 해놓고 자기는 안한다는 식이 됩니다. 게다가 의사가 갖춰야 할 재능이 반드시 높은 고등학교 성적인지도 불분명합니다. 의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입니다. 그런게 성적에 반영됩니까? 의사는 체력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게 성적에 반영됩니까? 외과의사는 섬세한 손놀림도 잘해야겠죠. 그런게 성적에 반영됩니까? 누가 국영수 잘하면 그런 걸 잘한다고 합니까?

 

만약 고등학교 성적기준 상위 0.1%만 화가가 될 수 있다면 화가의 희소성은 매우 높아지겠지만 그게 과연 예술이 발전할 나라에서 할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저는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적어도 일정기간은 지방에서만 영업할 것을 약속하거나 외과의사같은 비인기종목의 의사가 되기로 서약하고 의사를 뽑는 일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의사정원을 늘린다면 더 많은 성형외과의사만 만들지 모르지만 제약이 있더라도 의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있을테니까요. 

 

이제까지의 저의 말을 듣고 생각이 복잡해진 분들도 있을 것이고, 뭘 모르는 사람이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제가 한말이 옳고 그른 것을 떠나 사실 이런 말들에는 한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직업이란 반드시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자랑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도 의대갈 수 있을 만큼 공부잘했습니다. 물리학을 전공해서 박사를 딸때까지 공부했으니 의사만큼 길게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이공계분야의 연구원으로 살았습니다. 제 소득이라봐야 의사하고는 비교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불만은 없습니다. 물리학 박사를 딴 사람은 의사만큼 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이런 저런 시각이 있으니 뭔가를 당연하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정부도 의사단체도 합리적으로 모두를 위해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말싸움을 하게 되면 자기 입장만 생각하게 되고 숫자에만 빠지게 되기 쉽습니다. 망치든 사람은 세상이 전부 못처럼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공계 전공자로서 생각나는 것을 옆에서 본 시각으로서 몇자 적었습니다. 모순은 세상에 분명 있습니다. 그게 너무 누적되면 한꺼번에 터질 겁니다. 세상에는 정부만 있는 것도 의사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 많은 그 이외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있습니다. 하필 코로나상황이 나빠지는 이 순간에 파업을 강행한다고 하는 의사들에 대한 분노도 있습니다.

 

이전에 의약분업문제로 극한투쟁이 있을때 그렇게 하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게 문화개방할때도 반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옛말이고 한미 FTA도 목숨걸고 반대한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뭐든 찬성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개혁은 그자체보다 대개 누가 주도하고 어떻게 하는가하는 세부사항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의사분들이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사회적 존경도 받는 지금의 상황이 유지되기 바랍니다. 요즘 한국방역때문에 한국의료수준을 칭찬하는 일이 생기면 기분도 좋습니다. 이런 세월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부사항이야 협상당사자들이 대화해야하겠죠. 다만 보고 있는 모두를 위해서라도 조금씩 더 사려깊어졌으면 합니다.  덜 힘든 분들이 더 힘든 분들 도와서 일이 되도록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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