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세상보기

스스로 자신이 노동자라고 주장하는 의사는 어리석다.

by 격암(강국진) 2020. 8. 30.

아흔아홉개를 가진 사람이 자신이 왜 아흔아홉개를 가졌는지를 모르고 하나를 더 욕심내면 하나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흔아홉개를 잃게 된다. 지금 파업을 하고 있는 의사들의 행태가 딱 그렇다. 한국에는 법이나 의술이 매우 신성한 것이라는 말이 아주 흔하다. 법조인을 기술자, 노동자로 여기고 의사를 기술노동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별로 없다. 이것이 한국이 유달리 법조인이나 의사가 대우 받는 나라가 되는 가장 기초적 원인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파업을 통해 자신들을 그저 보수받고 일하는 노동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의사의 미래는 매우 위태롭다. 

 

의사협회가 정부 특히 민주정부와 싸우는 것은 단기적으로 보면 어떨지 몰라도 길게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면 자유시장주의를 주장하는 보수정권밑에서 의사의 미래는 절대로 밝을 수가 없으며 특히 지금 의대생들처럼 어린 학생들은 그렇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민주적 절차를 강조하는 민주정부와 극한투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만만한 민주정부가 무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들이 미는 공공의료의 문제가 더 심해지면 어떤 세상에 당신들이 놓이게 된다고 생각하는가?

 

자본주의가 무한 승리하는 사회다. 예를 들어 지방의료가 완전히 망하면 일부의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리병원이 지방의료를 담당하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지 않겠는가. 공공의료는 기능이 마비되는데다가 적자가 너무 커지고 병원이 없어서 피해가 너무 커지면 영리병원이라도 허용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결국은 전국의 의료가 자본화되지 않을까?

 

민주정부는 되도록 모든 국민들이 안정된 의료혜택을 받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보수정권이 자꾸 의료를 자본화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알듯이 보수정권은 그 방향이 반대다. 그리고 지금 난동을 부리는 의사들이 사실 보수정권을 지지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런데 국민의료보험같은 것의 제약을 벗어나 자유롭게 비싸게 의료비를 책정할 수 있게 되면 의사들이 좋을까? 그게 사실이라면 미국보다 한국의사가 훨씬 불쌍하게 살고 있어야 한다. 미국이 그런 곳이다. 미국의사들이 정말 천국에서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의사들은 민주정부와는 극한대립을 펼칠 수 있지만 자본과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민주정부를 무력화시키고 나면 자본이라는 호랑이가 풀려난다. 그 피해는 물론 비싼 의료비로 국민들 모두에게도 펼쳐지겠지만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 비싼 의료비가 정말 의사들에게 갈거라고 생각하는가? 민주정부와 극한투쟁하는 의대생들은 지금 보수도 좋고 정년도 보장된 공무원들이 한사코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민영화하면 다 비싼 월급 받을 것같은가? 의대생들 앞에 멋진 미래가 펼쳐지는가? 

 

천만에. 자본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착취한다. 의술이 더 자본화될 때 이득을 보는 사람은 자본과 지금 의료계에서 이미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그리고 10년 20년이 지나면 모든 미래의 의사들은 다 지금보다 훨씬 안좋은 상황에 빠질 것이다. 일단 국가의료를 무력화시키고 나면 의사들의 처우도 나빠진다. 왜 아니겠는가. 

 

폭등하는 의료비때문에 자본은 돈을 벌지 몰라도 병원을 찾는 사람의 수와 빈도는 급락할 것이다. 미국이 이렇다. 아파도 알아서 약먹고 버티고 의료보험없으면 손가락이 잘려도 병원에 안가는 사람도 있단다. 의료비가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병원을 찾는 사람의 수와 빈도가 급락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의사가 지금보다 훨씬 필요없어진다. 그리고 의사들간의 경쟁은 훨씬 심화될 것이다.

 

내가 위에서 공무원의 예를 들었던 것은 괜한 말이 아니다. 지금은 말하자면 좋은 의사, 나쁜 의사 할 것없이 거의 평등하게 대우 받고 정년보장 받는 시대라면 자본이 의료를 지배하는 세상은 최고의 의사가 최고의 보수를 받는 세상이다. 분명 이런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돈을 벌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의사들은 삼류가 된다. 그렇게 되고 나면 그들은 박봉에 시달리며 의료를 펼치고 일부는 싫어도 오지에 가서나 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의사가 받는 보호도 훨씬 줄어든다. 의사들이 시술하다가 의료사고가 나도 한국에서는 사실 소비자가 고발하고 승리하는 일도 별로 없다. 이에는 한가지 이유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의료는 준공공 행위라는 존중심이 있는 것도 크다. 그러니까 의사를 고발하는 것은 마치 국가를 고발하는 것과 비슷한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사회적 존중이 의사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의사들도 하나로 뭉쳐 있다. 동지의식이 있다. 의료현장에서 같이 싸우는 군인같은 동지의식이 있는 것이다. 

 

과연 의술이 자본의 지배를 받게 되는 나라에서도, 의사가 자동차 수리공과 같은 기술자에 불과한 나라에서도 그럴 것같은가? 성실하게 근무하면 연공제로 지위와 소득을 보장받는 공무원같은 조직이 아니라 능력이 있고 경쟁에 이기면 단숨에 엄청난 출세를 하게 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잘나가는 의사가 망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세상에서 그게 될 것같은가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미국을 제발 봐라. 거기가 의사의 천국인지. 결국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스스로의 미래를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결국 돈을 벌게될 일부가 그저 수능공부밖에 하지 못해 어리석은 다수의 젊은 의사들을 조종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런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것은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욕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니 누굴 원망하겠는가. 하지만 직업윤리를 떠나서 이득으로 생각해도 좋은 대우받는 한국의사가 훨씬 열악하게 사는 미국의사가 되려고 하는 이 집단난동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만약 물리학자가 의사가 받는 정도의 대우와 존경을 받는다면 나는 학부생들이나 대학원생들에게 너희는 정말 천국같은 곳에서 사는 줄 알라고 할 것이다. 정부지원금 타려고 지원서 쓰고 보고서 쓰느라 매일이 바쁜 공학자들도 똑같은 말을 할 것이다. 물리학자는 방송에 나가면 물리가 왜 돈이 되는지, 물리가 왜 재미있는지를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쓰기 일수다. 나는 법이나 의술처럼 물리도 본래 신성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지금의 시스템이 깨지는 순간 지금 의사들이 협박하고 있는 국민들의 건강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머리에 나는 노동자라는 두건을 쓴 의사들은 자기 밥그릇을 지금 깨고 있다. 대부분의 의사를 잡아먹을 자본이라는 호랑이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아니 내가 보기엔 거의 미친 짓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