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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스트레스와 한국의 선택

by 격암(강국진) 2020. 8. 31.

20.8.31

언젠가 내가 조카들과 이야기 해보며 느낀 것이지만 요즘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은 한가지 사실을 공감하는 것같다. 그건 아직 청소년이거나 겨우 대학에 들어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게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 대해서 그들이 무조건 감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도 힘들었다면서 불만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기가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자신의 부모보다 잘할 수 있을까? 부모에게 불만이 있건 없건 그들은 자기들은 부모보다도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물론 내 주변의 몇몇 청년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것이 한국의 출산률이 낮은 근본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결국 새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세대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나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인간과 생명의 문제이므로 그것에 대해 손익을 따지는 것은 금기시 되는 경향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서적으로건 삶의 질의 문제건 경제적으로건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일이 그다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아이는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실제로 어렵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실제 수준 이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가 하는 심리적인 측면이다. 한국은 지금 이 두 측면이 모두 심각하다. 그래서 출산률이 1 미만으로 떨어져 버렸다. 이는 단순히 출산률이나 한국의 인구문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를 생각해 보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까?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의 대부분은 교육이 차지하고 있고 요즘은 그렇게나 어렵다는 인서울 대학 입학이나 SKY 대학 입학을 해도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심지어 집이 큰 농사를 짓거나 건물주라고 해도 혹은 큰 장사를 한다고 해도 그 집의 아이들이 과연 그걸 물려받아서 잘 살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가 않다. 이러니 중장년 세대인 내가 봐도 아이를 하나 키웠는데 그 아이가 행복하게 자기길을 찾아서 순탄하게 살아가기는 참 힘들어 보인다. 세상은 정말 1등만 살아남는 것같다. 나도 이런데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미래는 더욱 암울할 것이다.  아이를 낳아서 그 아이가 순탄하게 자기 길 찾아갈 확률은 로또 맞는 것처럼 어려워 보일 것이다. 

 

게다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생활안정성이다. 예전에는 연애도 일찍하고 결혼도 일찍했다. 그것이 한가지 이유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예전에는 사람들의 삶이 훨씬 일찍 안정화되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한 정도면 이제는 은퇴하는 때까지 그 삶이 지속될거라는 기대를 하기가 쉬웠다. 대개 젊은 시절에 배운 지식이나 기술을 기반으로 경험을 좀 더하면 그걸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빚내서 수십년단위로 주택대출금을 갚고, 아이를 키운다는 식의 장기 계획을 세우기 쉬웠다는 뜻이다. 

 

평생직장같은 개념은 이미 사라진 요즘 대학을 졸업한 정도가 아니라 회사에 취직해도 생활은 안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그 회사에 얼마를 다닐 지를 모른다. 평균근속년수를 검색해 보면 당연히 업종마다 다르지만 10년이 안되고 5년이 안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리고 대학때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버틴다는 것은 요즘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계속 공부를 해야 세상의 변화를 쫒아갈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은 엄청난 속력으로 쓸모 없는 것이 되어간다.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출산률이 한국이 유달리 낮은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빨리 변하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상에서 반세기전에는 세계 최빈국이었는데 지금은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다. 이 말은 세상이 빨리 변한다는 요즘 세상에서도 지난 반세기동안의 사회적 변화의 속력이 한국에서 가장 빨랐다는 뜻이다. 이 변화가 한국인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나는 미국에도 일본에서도 살아본 적이 있는데 이 스트레스는 진짜다. 선진국중에도 일본같은 나라는 지난 몇십년간 변화가 별로 없었다. 이때문인지 한국보다 출산률이 훨씬 높다. 미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에 비하면 미래에도 세상이 그렇게 많이 변할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심지어 지금 자신이 사는 방식대로 아이들도 커서 살게 될거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 고향을 떠나지 않거나 고향에 돌아가서 사는 사람도 많다. 반면에 내가 종종하는 말이지만 한국은 그 변화로 인해 뜨내기들의 나라가 되었다. 변화가 사람들을 이리저리 흩어져서 살게 하고 재개발로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고향이 없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에서 어릴적에 자신이 가던 가게에 자식의 손을 잡고 방문한다는 식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에서는 아주 흔한 광경인데 말이다. 이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변화에 대한 강박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게 있어서 발전은 필요한 것이고 심지어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정보사회로의 변환이 늦어지면 한국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그것이 한국을 현상유지도 못하고 엄청나게 가난하던 옛날로 돌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 한국은 미국은 커녕 일본에 비해서도 작은 나라고 유럽처럼 비교적 평화로운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도 중국도 러시아도 심지어 북한이나 미국도 한국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을 기다려 그들의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가 이번에는 이겨냈지만 작년 일본의 수출규제같은 경제적 공격이 또다시 과거의 IMF같은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필요하다고 해서 사람이 시속 백킬로로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변화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의 누적을 마냥 무시한다면 한국은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이다. 낮은 출산률은 그런 징후의 하나고 이번에 표면화된 한국 개신교의 문제도 다른 징후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적 보수집단과 깊게 연관된 그들을 보면 그 전형적인 특징이 과거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빛나는 한국에서 원시인처럼 보이고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인다. 얼마전에는 코로나 감염의심이 드는 광화문집회 참석자를 찾아갔더니 이 여성이 벌거벗고 길에 누워서 저항하는 일도 있었다. 마치 저승사자가 찾아간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교회에서 뭐라고 교육을 받았길래 코로나 검사하자고 찾아가니까 그렇게 저항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무리가 한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를 하면 반드시 긴 줄이 생긴다. 그 맨앞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가장 능력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저 운이 좋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뭐건 모두가 미친듯이 오래 달리면 사람들간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반드시 경제력의 차이만도 아니다. 물려받은 땅이 크게 올라 졸부가 되어 돈으로 보면 상위 0.1%지만 문화적 정신적으로는 해방직후의 후진국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결국 한국의 빠른 변화속력은 한국 사회의 사회적 결속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한때 단일민족을 자랑했는데 실질적으로는 한쪽에는 21세기의 미래인이 사는데 다른 쪽에는 창들고 짐승을 쫒으며 사는 수렵채집인들이 사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요즘 신천지나 사랑제일교회로 인한 방역실패사례를 보면서 그런 부족사회의 사람들이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이래서 사회적 변화의 속력은 제한받을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지속가능한 삶을 설파하면서 비교적 보수적이고 변화가 작은 삶을 설파하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것이 지금의 한국에게는 적절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게 어느 정도 다른 선진국들의 해결책인데 그 결과 그들은 코로나 19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그들 나라의 사람들이 얼마나 원시 부족 사회의 시민들같은 가를 볼 때 그걸 해결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달라고 시위를 하고 코로나를 전염시키는 코로나 파티를 한다. 결국 낭만적인 유지가능한 사회라는 보수적인 꿈은 실은 유지가능한 꿈이 아닌 것같다. 그건 그냥 방향성없이 다원화를 추진하면서 천천히 추락하는 것이고 때로 코로나나 기후문제, 전쟁같은 국가적 단합이 요구되는 문제가 생기면 빠른 추락이 될 수도 있는 방법이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유럽나라들처럼 많은 유산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그들은 대개 제국시대를 거치면서 부유해졌고 그 시대의 유산을 가진 나라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혁신이 멈춘 한국따위는 바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한국은 일본이나 영국처럼 가진 걸로 버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적어도 아직은 그렇다. 

 

따라서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히려 반대로 수술의 속력을 높이는 것뿐일 것이다. 복지수준은 높이고 미래를 향한 개혁의 속력은 더 빨리해서 한국이 확실하게 1등국가에 안착하는 것이다. 보수와 타협해서 미래로 갈 방법은 없다. 그들은 미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으로 실질적으로 한국문화경제권을 한반도 전체를 넘어 그 주변까지 넓히고 한국을 정보화 사회의 모범국가로 만들어 세계 표준이 되게 해야 한다. 구글과 테슬라 그리고 애플과 아마존이 전부 한국 회사이며 세계의 할리우드가 한국이라고 생각해 보라. 핀테크로 한국이 세계의 금융중심이 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건 너무 황당한 꿈이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삼성이 소니를 이기기 전에도 그런 소리가 있었고 방탄이 빌보드에서 1등을 하고 넷플릭스의 한국드라마가 세계적 히트를 치기전에도 그런 말이 있었다. 일단 확고한 1등국가가 되면 그 이후에는 변화의 방향이 불가역적일 것이다. 한국은 적어도 상당히 오랜동안 그 수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는 출산율도 올라가고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선진국 문턱에서 머뭇거리다가 추락하기 시작하면 그 추락이 또한 무서울 것이다. 한국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은 바로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진취적인 국가라는 것이다. 세계최초로 피씨를 대중화하고 인터넷을 발명하며 스마트폰을 대중화한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다. 그런데 미국같은 나라는 한국보다 진취성이 크게 떨어져서 오히려 한국이 IT강국이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더 높다. 미래 기술이 있다고 해도 그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나라는 한국이다. 중국은 후진국티를 못벗은 사회를 가지고 있고 선진국들은 보수적이라 변화가 늦다. 그래서 한국은 신기술을 테스트하기 좋은 나라다. 

 

진취적인 한국인은 할 수 있다. 정치만 방해하지 않으면 된다. 세계가 아이폰을 쓸 때 우리만 못썼지만 뒤늦게 따라잡기 시작하니 스마트폰을 미국인들보다 한국인이 더 잘쓴다.  전기차혁명도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하고자 하면 한국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온국민이 얼리어답터인 나라니까. 온라인 상거래도 그렇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새로운 의료시스템도 그렇다. 

 

미래에 1등으로 도착한 댓가는 크다. 그리고 한국은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이며 유럽이며 일본의 일처리를 보고 그걸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 스트레스는 오히려 우리가 확고하게 1등으로 미래에 도달할 때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는 열심히 안뛰어도 한국이 앞서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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