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7
어제는 카우스피래시 : 유지가능성의 비밀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이 영화의 제목은 음모론(conspiracy)의 철자를 변형시킨 것으로 그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 고기소비는 지속가능한 삶의 일부가 아니며 잔인한 것이기도 하므로 우리는 채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에 나와서 상을 받았던 다큐를 다시 확장한 이 다큐는 몇가지 단순한 메세지들을 그 핵심적 내용으로 가지고 있다. 첫째는 지구온난화 물질의 절반은 사실 가축에서 나온다는 것이며 둘째는 과학자와 환경단체는 돈과 축산업계의 협박때문에 이것을 비밀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마지막은 결국 다른 어떤 선택도 옳지 않고 우리는 채식을 하지 않고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굉장히 도발적인 내용이라 다큐를 보고 좀 더 검색을 해봤는데 우선 지구 온난화 물질의 절반이 가축에서 나온다는 말은 통계에 따라 약간 과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은 온난화 물질의 발생의 2-30%를 담당하는 교통관련 요인보다 더 커서 이에 따르면 이를 무시하고 차를 전기차로 바꾼다거나 태양광발전을 화력발전의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세계의 모든 환경단체와 과학자는 겁에 질려서 혹은 돈을 받아서 이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물론 옳지 않다. 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채식을 하자는 주장도 가장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이다. 이건 단순히 과학적 논리적 결론이 아니다. 그걸 기억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 다큐가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지구의 문제는 사실 육식의 문제 이전에 지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 80억의 인간이 지구를 뒤덮고 있으며 그들이 먹고 쓰는 것을 위해서는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때문에 지구의 현재모습은 기괴하다. 이 다큐에서 말하듯이 무게로 보았을 때 현재 지구상 동물의 98%가 가축이라고 한다. 지구상의 야생 동물들은 무서운 속도로 멸종하고 있다. 이미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농장처럼 되어서 자연속의 동물이라고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가축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란과 우유와 고기를 위해 엄청난 곡식을 소비하고 물을 소비하며 엄청난 환경오염을 만들고 있다. 물론 플라스틱 오염이며 자동차 매연같은 다른 문제들과 함께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시작이다.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이 다큐의 저자는 채식이 답이라고 말한다. 이 다큐의 저자는 고기를 꼭 먹어야 하겠냐면서 그런 것따위는 간단히 집어치우고 지구를 살리자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물론 그다지 신통한 답이 아니다. 첫째로 육류소비는 세상이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이 만들어 낸 결과다. 둘째로 채식이라는 답은 인간이나 지구같은 거대한 단어만을 써서 만들어 낸 결론이다.
인간의 욕망과 문화적 관성을 가볍게 말하는 사람은 흔히 그 자신의 결론이 과학적 결론인 척 하지만 인류의 장래에 대한 일은 언제나 가치와 정치의 문제이며 따라서 사실명제만으로 논리적으로 결정되는게 아닌다. 정치라는게 부패한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그 본질은 다양한 사람의 힘을 모으는 행위다. 우리는 그걸 위해 공감능력에 기반한 사려깊음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구에는 브라질의 열대우림이 필요하니까 브라질 사람들은 숲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숲을 개발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다면 이런 사람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우리가 왜 소수자 문제로 골치를 썩겠나. 그냥 다 죽여버리거나 무시하지. 다시 말해 지구니 국가니 하는 큰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우리는 개개인을 잊어버리기 쉽고 그냥 100명을 죽게 하는 것보다는 저 한명을 죽여야 하지 않냐고 단언하기 쉽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원칙이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런 식으로 하자면 계속 다수가 소수를 죽여서 결국 사회가 붕괴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이기는 것 이전에 모두가 서로의 문제에 귀기울이는 것에 그 핵심이 있다.
축산업자들의 정치적 압력은 당연히 항상 정의롭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반발이나 압력을 모두 간단히 악으로 처리하는 것은 대단히 오만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육식의 역사는 매우 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육식에 관련된 일로 먹고 살며, 육식이 얼마나 많은 문화의 핵심인가를 생각해 보라. 채식주의를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육식을 하지 말자는 말을 쉽게 하겠지만 이런 말들이 그렇게 쉽다면 세계평화는 얼마나 쉽겠나? 그냥 국적이라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일부터 지구인을 합시다! 라고 외치면 세계평화가 오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이렇게 간단히 답을 말하는 것이야 말로 바로 전체주의적 사고이며 순수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게 아니라 가장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그런 주장은 세상을 전혀 바꾸지 못하거나 공산혁명 이론처럼 세상에 오히려 해가 되는 분란만 만들 뿐이다.
이런 혹평이 지나친 것같다면 채식이라는 결론보다 훨씬 더 논리적인 답을 한번 소개해 보자. 이 다큐에서 말하는 숫자들이 100% 옳다고 해도 사실 진짜 논리적인 답은 채식이 아니다. 그것은 인구 감소다. 인구를 줄이면 환경문제는 개선된다. 사실 모든 인간들이 채식을 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해도 이대로 인구가 늘어난다면 그런 효과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인구는 대충 반세기면 두배로 늘어왔다. 그것보다 더 빠를 때도 있었다. 1950년에 세계인구는 25억이었는데 1990년에 세계인구는 이미 53억이었다. 얼마되지 않아 세계인구는 100억을 돌파할 것이다. 이 숫자앞에서 '단지' 식사조절을 하는 것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고기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농업도 많은 환경오염을 만든다. 우리는 그냥 애낳는 것을 포기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안락사시켜야 하지 않을까?
이 인구조절 주장은 더 살고 싶다거나 자식을 낳고 기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간단히 부정하고 있다. 아마도 이 다큐의 감독은 그건 간단히 포기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훨씬 논리적인 이 답을 외면하고 채식이 유일한 답처럼 말하고 있다. 사실 인구조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른 어떤 해결책도 소용없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이것은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망은 별거 아니지만 더 살고 싶고 자식을 낳고 기르고 싶다는 욕망은 기본적 인권이라는 가치판단의 결과다. 나는 이 판단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이것이 가치판단의 결과라는 것이다.
채식이 결론이라는 말은 이것이 정치적 문제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으면 하나 마나한 이야기다. 이미 인구가 많은 중국은 유럽과 미국의 고기소비의 총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고기를 소비하고 있다. 이 다큐를 보고 중국인들이 채식주의로 돌아설까? 인구조절이든 채식주의든 그게 답이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설득을 어떻게 하나? 이 글을 읽는 한국인들은 한국의 출산률이 엄청 낮아서 지금 한국은 엄청난 돈을 아이를 많이 만들기 위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지구의 적인가? 지금도 세계적으로 해마다 많은 아이들이 오염된 물때문에 죽고 영아사망률이 낮아서 죽고 배가 고파서 죽는다. 그렇다면 의료혜택을 넓히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며 배고픈 아이에게 음식을 주는 것은 지구를 배신하는 일인가? 지금도 사람을 살리고 있는 의사들이야 말로 가장 큰 지구의 적인가?
정치와 인간의 욕망을 사소한 것으로 말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전체주의자다. 그들은 자신이 전체주의자라는 것도 모르는 채 몇개의 숫자와 인간이나 지구, 민족같은 거대한 단어 몇개로 척척 획기적인 법이나 정책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걸 온 세상에 강제하면 천국이 온다고 믿는다. 히틀러만 이러는게 아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작은 전체주의자들은 정말 많다. 도로교통법만 이렇게 만들면 천국이 올텐데, 부동산 세법 하나만 만들면 천국이 올텐데, 환경관련 법하나만 만들면 천국이 올텐데 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법이 만들어 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악마거나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계산은 언제나 틀린다. 30년전만 해도 석유가 고갈될거라는 예측이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21세기에 우리는 지금 석유고갈은 언제 올지 모르겠고 석유그만 쓰자는 말로 토론을 하고 있다.
위험한 전체주의자라고까지 불렀지만 내가 이 다큐를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소개의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를 보기를 바란다. 다만 예방주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는 어디가 진짜 싸움의 장소이고 혁명의 장소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세상은 단숨에 바뀌지 않으며 진짜 싸움의 장소는 우리의 일상에 있고 대안의 문화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부정하고 참자고 말하는 대신에 오히려 여기 더 멋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좋다고 해야 한다.
구체적 예를 위해서 비빔밥이라는 한국 음식을 한번 생각해 보자. 비빔밥은 거의 채식이다. 그리고 약간만 손을 보면 100% 채식으로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맛있다.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햄버거나 스테이크 대신에 비빔밥도 아주 맛있다는것을 알아서 비빔밥을 더 많이 먹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육류소비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우리 채식을 해야 하니까 참고 고기를 먹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몸에도 좋고 맛도 있는 새로운 식문화를 즐기자는 것에 있다. 이렇게 싸움과 혁명의 장소는 대안이 되는 식문화를 소개하고 개발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 부분은 슬쩍 건너뛰고 그건 생각하면 어떻게 될테니 '채식을 하자'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세상은 안바뀐다.
이 차이는 작은 것같지만 그렇지 않다. 정치의 핵심은 결국 여러가지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안을 제시해야 할 대화의 장소에 대안은 없지만 나는 결론은 안다, 그러니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라, 이것에 반대하는 자는 악마거나 바보다라고 말해서 세상은 안바뀐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역풍이 불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지구를 살리는 지는 모르겠지만 채식주의자가 윤리와 금욕을 말하며 육식주의자를 비판해서 세상은 안바뀐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가 육식을 하는 사람을 모두 죽일수도 없고 말이다. 우리는 지구도 구하고 매력도 있는 문화를 제안하고 같이 거기에 빠져들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위대한 문화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서 지구는 구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문제가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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