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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영화 드라마 다큐

승리호를 보고

by 격암(강국진) 2021. 2. 7.

한국 최초의 SF영화라고들 말하는 승리호를 봤다. 아주 아주 재미있게 봤고 그래서 한번 본 후에 반나절이 지나고 한번 더 봤다. 그 점은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기에 좋은 점이었으나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걸 음향좋고 화면 큰 영화관에서 몰입해서 보면 정말 재미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거듭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재미있다고 말하면 이 승리호를 보는 사람들중에는 입이 간질간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비티나 마션같은 영화와 다를 뿐만 아니라 스타워즈나 가디언스오브갤럭시같은 영화와 비교해도 뭔가 지적할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을 찾아 보니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평가가 박한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꼭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같아 이렇게 영화 소감을 써보기로 했다. 하지만 기억하라. 내가 이 영화를 강력추천하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내가 어떤 비판을 하건 영화는 재미있다. 그건 내가 쓰려고 하는 내용과 별개의 이야기다. 영화가 재미있까 아닐까만 궁금한 사람은 아래의 내용을 읽을 필요가 없다. 

 

승리호는 한국 영화가 가지는 아주 큰 숙제를 분명하게 들어낸 영화였다. 승리호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렇다. 

 

한반도를 넘어서는 규모로 우리의 상상력을 발휘할 때 외국인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존재 해야 할까?

 

이 문제는 우리가 판타지를 만들어 내는데 제약을 준다. 이것은 도깨비나 신과함께 같은 영화와 승리호나 반도같은 영화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도깨비나 신과함께에서 우리는 미국이나 유럽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염라대왕이 한반도만 담당한다던가 도깨비가 서양인과 싸우면 진다던가 하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도깨비는 신이지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왜 신과함께에 나오는 저승의 대왕들이 전부 동양인이냐고 시비걸지 않는다. 오히려 백인 염라대왕이 나오면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고 사람들은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상상이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반도나 승리호같은 영화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 반도에서 주인공들을 구해주는 사람들은 백인 여성이었을까. 왜 승리호에서 악당두목은 백인 남자였을까. 마블코믹스 영화를 포함하는 미국 영화에서는 전세계와 전우주를 무대로 영화를 만들때도 동양인을 전혀 출연시키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지적을 좀 당할 수 있지만 그것때문에 영화의 질이 크게 망가졌다고 지적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배역들에는 백인과 흑인들만 있게 만들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이나 중국에서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그 영화는 미친 국뽕영화가 된다. 중국이 세계를 구한다? 한국이 세계를 구한다? 너무 유치하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미래에 대한 상상이라도 그렇다. 물론 미국이 세계를 대놓고 구하는 인디펜던스데이같은 영화도 있다. 그래서 그걸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 영화의 경우에는 그게 결정적 문제는 안된다. 하지만 한국이 영화를 그렇게 만들면 그건 영화를 완전히 좌초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시도가 된다. 나는 승리호를 미국 영화와 비교하면서 비판하는 사람은 한국 영화가 가진 이런 불리한 점을 기억해서 균형을 잡아줬으면 한다. 한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돈이외에도 이런 불리한 점을 안고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 문제점은 영화 전체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승리호의 최대문제는 외국인 배우들의 연기였다. 다른 사람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이걸 지적하고 있다. 이 부조화가 영화를 쪼개고 있는데 이 영화가 가진 다른 장점들이 겨우 겨우 그걸 붙들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악당두목역을 맡고 있는 리처드 아미티지의 연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마블코믹스 영화에 출연한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좋은 연기라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SF 영화가 가지는 문제는 다른 문제도 만들어 냈다. 이 문제는 아미티지의 연기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건 악당과 영웅사이의 끈끈함이, 감정교환이 없어 보이는 문제다. 리처드 아미티지와 한국 배우들은 너무 이질적으로 보인다. 사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깊게 연관이 있다는 설정인데도 그렇다. 김태리와 송중기를 발굴하고 키운 것이 리처드 아미티지라고 나오는데 그들은 솔직히 말하면 서로 같이 밥한번 먹었던 적이 없었던 사람같이 이질적이다. 김태리와 송중기는 리처드 아미티지와 애증의 관계여야 하지 않을까? 죽일 때 아무 미련도 없는 것이 정상일까? 만약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가 루크의 아버지가 아니었고 다스베이더가 오비완 케노비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스타워즈에서의 싸움은 덜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상황인데도 감정이 없다. 이 점이 승리호를 보다 평면적인 스토리를 가지게 만들지 않았을까? 리처드 아미티지가 사실은 김태리와 송중기를 너무 사랑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이게 꼭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감정의 교환이 악과 선사이에 없다는 점이 나는 아쉬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만약 악당두목이 한국배우였다면 자연스럽게 등장했을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김태리와 송중기를 어느 정도 백인처럼 보이게 만들고 리처드 아미티지를 반대로 동양인스럽게 만들어서 한발씩 다가가게 만들었다면 어쩌면 뭔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김태리에게 컬러렌즈를 끼우고 리처드 아미티지를 흑발로 만들었다면 뭔가 달랐을까? 이런 걸로는 도움이 안될지도 모르지만 먼 미래라고 하는데 솔직히 헤어스타일이나 화장법이나 옷이 지금 시대와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같고 미국 사람은 미국 사람같다. 이건 문제이지 않을까?

 

최민식이나 송강호가 악당두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스토리도 좀 바뀌겠지만 그들이 가진 카리스마는 악의 세력을 훨씬 더 그럴듯하고 진지하게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며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영화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왠지 영웅들과 악당의 싸움이 훨씬 더 피튀기게 진지하게 보였을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의 주요인물을 모두 한국인으로 했을 때 국뽕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미래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한국이란 설정을 비웃는 사람들이 있고 이 영화를 가차없이 비판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악당은 외국인으로 변했다. 그런데 악당이 외국인으로 변하는 순간 작가의 상상력도 달라진다. 악당이 한국인이었다면 자연스럽게 나올 악당과 영웅의 감정적 부딪힘이 없어진다. 결국 승리호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다. 마치 인디언과 백인침략자가 부딪히듯이 양쪽은 그저 서로에게 타인일 뿐이다. 

 

이 문제는 분명 한국이 지금 선진국이 되었기에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그래서 그나마 승리호가 나온 것이다. 승리호는 단순히 제작비가 수백억이 있고 CG 기술이 좋아졌기에 나온 영화가 아니다. 30년전에 이와 똑같은 영화가 나왔다면 국뽕논란으로 영화는 우뢰매라고 평가절하당했을 것이다. 사실 지금 승리호를 지나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그런 영향이 있는 것같다. 미국영화에는 관대하면서 한국영화에 유독 가혹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 문제를 미국이나 중국처럼 제국주의적으로 해결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이 더 강해지고 부자가 되어 결국 모든 중요배역을 다 한국인으로 채워도 어색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보다 자연스럽게 한국인과 외국인이 뒤섞이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스토리가 되면 좋겠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 한국 영화는 다시 한번 비약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한국 영화는 당분간 신화적인 환상스토리로 흐르게 될지 모른다. 이런 문제가 그쪽으로는 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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