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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인간관계의 모순

by 격암(강국진) 2021. 4. 19.

21.4.19

인간관계란 오묘하고 모순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제까지 잘 대해준 사람에게는 계속 더 잘해주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상대방이 나의 호의를 갚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마치 큰 빚을 진 채무자에게 오히려 채권자가 쩔쩔 매는 상황과 같다. 채권자는 이제까지 상대방에게 해준 것이 아깝고 그것이 떼어먹힐 것이 두려워서 오히려 상대방에게 계속 더 잘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옆에서 보면 마치 한쪽이 한쪽에게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처럼 일방적으로 퍼주는 관계인데 세상에 이런 일이 드물 것 같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은 아주 흔하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유명세를 가지거나, 지위를 가지거나 한 사람에게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러가지 편의를 봐주고 쓸데없이 굽신거리면서 온갖 친절을 베풀지만 딱히 뭘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은 아마도 이런 것일 것이다.

 

이런 능력있는 사람에게 뭔가를 줘서 빚을 지게 만들면 언젠가 나는 그 댓가로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윤리적인가하는 것은 둘째치고 실은 대부분의 경우 그런 친절은 보답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걸 아까운 투자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기합리화를 통해서 나는 그저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식의 말을 하고는 한다. 자기는 애초에 댓가를 바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너무 어린 사람이 아니라면 인기있는 친구나 예쁜 여성이나 어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호의의 폭격을 맞는 경우를 분명히 여러번 봤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누군가가 대단해 보이면 댓가없이 친절을 베풀고 심지어 그 친절에 대해 보답을 돌려 받지 못해도 섭섭해하지도 않는다. 마치 자신이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너그러운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런 거짓말을 자주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누구에게도 사실이 아니다. 이러니 사람들이 자신을 한껏 대단한 사람으로 치장하려는 것이다. 대단한 사람인 척하면 댓가없는 호의가 쏟아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비슷한 일은 반대로도 일어난다. 이는 인기가 없거나 돈이 없거나 유명세가 없는 사람들이 무시를 당하거나 악의적인 편견에 시달린다는 정도가 아니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실수를 하면 즉 이유없이 나쁜 일을 하면 그 사람에게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할까?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일이 자주 벌어진다. 채무자에게 매달리는 채권자의 행동의 정반대로 이번에는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적반하장으로 협박을 하는 꼴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싫어한다. 적어도 이게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가 나쁜 일을 했을 때 이 상식은 이상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경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리고 그 실수가 사소하면 실제로 그렇게 자주하지만 그 실수가 어느 정도 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일이 거꾸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배신자는 사과를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철저히 배신하거나 모든 관계를 끊어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말하자면 내가 상대방에게 잘못했으니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할 것이고 따라서 더이상 이사람에게 잘해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먼저 때린 쪽은 난데 이미 때렸으면 이 사람은 나의 적이니 더 때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다. 어의가 없지만 이런 일도 세상에 흔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누군가에게 미안해서 그 사람을 피하고 그 사람과 멀어져 본 경험이 없는가? 그게 그런 행동이다. 

 

우리는 책이나 학교에서 통상 공평한 인간관계의 환상을 배운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해주면 그 사람도 나에게 잘해주고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하면 그가 나에게 잘못한다는 생각이 이것인데 이것은 마치 호의나 친절의 시장거래와도 같다. 공정거래라면 내가 호의를 주면 호의를 돌려받고 내가 악의를 주면 악의를 돌려받아야 한다. 

 

이것이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친절의 공정거래는 우리편이냐 적이냐 하는 판단과 이 사람이 미래에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하는 판단때문에 완전히 뒤죽박죽이 되고 마는 일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의를 악의로 갚고 원수같이 대해야 할 뻔뻔한 사람에게 계속 매달리면서 호의를 베푼다. 그나마 자기 성찰이 좀 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런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만만한 진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지 못하고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굽신거리며 살아야 하는 자신에 대해 한심하다는 자책을 때로 하기도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에는 이 정도의 자기성찰을 하는 사람도 드물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를 엄청나게 한다. 그래서 자기에게 매정하게 구는 사람에게 언제나 후하게 굴고 친절을 베풀면서 자신은 이용당하거나 착취를 당한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은 그저 친절한 사람이며 누구에게나 이정도의 친절을 베푼다고 주장한다. 이런 예는 아주 많은데 대표적인 비극중 하나가 못난 자식에게 쩔쩔 매는 부모다. 인간이 못된 큰 아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면서 엄마가 되서 혹은 사람이 되서 젊은 사람에게 이정도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에 참많다. 그런데 그 엄마가 다른 자식들이나 남의 자식들에게는 전혀 행동이 달라질 때도 많은데 그러면 그들은 종종 죄없는 그들을 비판하고 깍아내리는 것이다.

 

엄마와 자식간의 사랑이든 친구간의 사랑이든 어떤 선배에 대한 사랑이든 사랑 이야기에는 내가 말한 일들이 아주 자주 일어난다. 우리는 종종 우리에게 잘해주는 사람의 호의는 폄하하고 우리의 호의를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의 가벼운 인사나 선물 따위는 한없이 의미있는 것으로 평가하고는 한다. 

 

나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어떤 쉬운 해결책이 있어서 세상이 더 공평하고 아름답게 굴러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심과 기대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어리석지 않고 욕심도 없는 공평한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누구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인가?

 

나는 이 글을 주로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상처받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쓴다. 나는 어린 시절에 친절의 공정거래같은 것을 문자 그대로 믿었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호의를 베풀면 호의가 돌아오고 그렇게하지 않으면 공짜로 얻는 것은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못되게 군다면 우리는 먼저 내가 뭘 잘못했나를 반성해 봐야 하고 내가 성의를 다한 친구는 나를 배신하지 않고 나의 호의를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다.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 상처받은 일이 있었고 어리둥절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도의 문제고 시기의 문제일 누구나 이렇게 어리석다. 나를 포함해서 그렇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상처를 줬을까? 나도 결국 입장에서 세상을 보기때문에 그걸 제대로 방법은 없지만 내가 크고 작은 상처를 줬을 것은 분명하다. 세상의 어리석음은 우리가 치워야 쓰레기 같은 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않을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같은 것이기도 하다. 돌을 던지면 땅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그걸 떨어지냐고 욕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어리석고 탐욕스럽다. 우리는 그걸 개선해야 하겠지만 그것에 화내고 상처입는 것은 그만둬야 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당신은 어리석고 탐욕스럽냐고 너무 따지지는 말아야 한다. 일까? 우리는 그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건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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