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31.
오랜만에 영화관에 가서 듄을 보고 왔습니다. 요즘 오징어게임이 전세계에서 인기인데 그와 관련해서 여러모로 생각이 많이 나는 영화관람이었기에 몇자 적습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거의 없지만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 영화에 대한 제 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쯤 됩니다. 잘 만들었다. 볼거리도 있다. 그러나 열광할 정도는 아니다. 이게 제 짧은 소감입니다.
듄은 본래 1965년에 출간한 프랭크 허버트의 인기 SF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며 1984년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영화화한적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만들어 진 영화입니다. 듄은 기본기가 훌룡한 영화입니다. 한스 짐머의 음악도 좋았고 영상도 유치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굉장한 스케일이어서 컴퓨터 그래픽같다기 보다는 마치 화성에 가서 찍은 듯한 생생함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2시간 35분이라는 긴 시간을 보면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지루하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룡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훌룡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론은 여기서 나오죠. 문제는 그 대단하다는 베스트셀러가 가진 이야기 자체였습니다. 1965년의 시점에서는 이런 우주 제국 영화가 흥분되고 즐거운 것일 수 있을지 모르나 반세기 이상의 세월 동안 무수히 많은 이야기에 폭격당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더이상 통하지 않을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는 여러모로 미래를 그리고 있다기 보다는 서구의 중세나 고대를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예수와 성모를 연상시키는 종교이야기때문에 저는 계속 언제 부활 이야기가 나오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중세나 고대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왕이나 황제의 핏줄을 따지는 분위기도 그러하며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표정한 군인들이라는 점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싸우는 방식이 어찌나 300에 나오는 스파르타 군인들을 연상시키는지 대단한 전투씬에서도 저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문득 문득 이게 미래 군인들이라면 저기에 수류탄 몇개 던지거나 기관총 한대로 난사하면 다 죽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고, 21세기인 지금도 드론이 날아다니는데 이게 정말 미래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평에 대해 그건 장르의 특징이라던가, 어차피 판타지가 그렇지 그런 건 크게 문제가 안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 저도 왕좌의 게임이나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같은 영화에서 왕이나 마법사가 나오는 것을 문제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선 듄은 SF지 판타지가 아니며 그 이전에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왜 그토록이나 서구는 봉건적 질서에 대해 집착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송중기가 나오는 SF 승리호에서 알고 보면 송중기는 왕의 자식이었다고 나오고 싸움을 하는데 다들 칼질을 한다면 한국 사람들은 정말 쓰레기라고 난리가 났을 겁니다. 엄청난 투자를 해서 잘만든 서구 영화이기는 하지만 저는 비슷한 비평을 듄같은 서구 영화에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서사, 이야기 자체가 너무 고루하고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죠. 어차피 세상은 귀족이 다스리는 세상인데 불행하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대중을 위해 어떤 고귀한 핏줄을 가진, 운명의 아이인 영웅이 일어선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식민지의 군중이 해방된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제국의 귀족이 영웅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거의 인종차별로 느껴집니다. 지금이 제국주의 시대도 아니고 봉건시대도 아닌데 언제까지 귀족, 기사, 왕, 메시아같은 이야기에 매몰되어야 할까요? 뭐 그런 이야기도 나쁠 건 없겠죠. 하지만 그걸 반복하는 정도가 너무 심하고,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철지난 제국주의 논리의 반복이니까요.
이걸 가장 잘 느끼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의 서사구조는 서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한국에서는 영웅의 의미가 종종 크게 다릅니다. 훨씬 보통사람이죠. 그리고 그때 마침 거기에 있어서 영웅적 행위를 할 뿐입니다. 설국열차나 승리호, 기생충이나 킹덤, 오징어 게임같은 작품들을 보면 우리는 거기에서도 주인공들의 영웅적 행위를 보게 될 때가 있지만 결코 그것이 그들이 혈통이 달라서가 아닙니다. 왕자가 주인공인 킹덤에서 조차 주인공은 대중과 함께 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고 왕을 혈통이 섞이지 않은 아이에게 물려주면서 중요한 것은 결코 피가 아니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가진 자들인 귀족이나 왕은 극중에서 악의 원인으로 나옵니다. 즉 세상을 구할 영웅은 커녕 세상을 이모양으로 만든 사람들, 무능력하면서도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인간들, 세상의 진보를 막는 장애물로 등장합니다. 서구와 한국의 이야기는 극단적으로 단순화시키고 서로 대비시키면 서구는 훌룡한 왕을 찾는 이야기고, 한국은 왕을 죽이고 세계에 진보를 가져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전세계가 오징어 게임에 열광합니다. 그 열광의 정도가 제작비를 열배 스무배를 쓰는 왕좌의 게임과 스타워즈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서양은 마음대로 돈을 쓰던 마블 영화들을 만들다 만들다 시들해져가는 것같습니다. 왜 이럴까요? 한국의 서사가 미국의 서사보다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더이상 어디선가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이 나타나 세상을 구한다는이야기를 지겨워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하니 듄을 본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정말 왠만큼 좋은 영화가 있다면 듄2가 나와도 그걸 보지 듄2를 볼 것같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이며 결국 이야기가 매력적이지 않으면 어떤 다른 요소들이 매력적이어도 한계가 분명하다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저는 듄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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