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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지지자와 박근혜 사면

by 격암(강국진) 2022. 1. 2.

2021.12.24

나는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박근혜가 사면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를 감옥에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썼는가를 생각할 때 섭섭할 수 밖에 없는 뉴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 싸우고 있고 신문기자들도 아는 것도 없이 이런 저런 추측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발생하자 최근 20년정도 동안 가장 많이 세상에서 돌아다니는 말, 내로남불이 생각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 말은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판할 때 쓰는 말이고 판단과 주장에는 객관성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윤석렬이 조국일가를 수사할 때의 태도와 그의 부인과 장모를 말할 때의 입장이 너무 다르다고 느낄 때도 사람들은 내로남불이냐고 말한다. 사실 그의 부인도 그렇고 장모도 그렇고 법이란게 엄격하기만 하다가 윤석렬의 처가로 가면 참 다정하고 이해심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위조문서로 수십억을 벌어도 판결이 나오기를 1년으로 나오고 그것도 억울하다고 한다니까 말이다.

 

박근혜 사면에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만약 지금 이명박같은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박근혜 사면에 대해서 무슨 말을 했을까가 뻔하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문재인의 지지자들은 이것은 추악한 부패와 법치의 왜곡이라면서 분노했을 것이다. 이명박이 이명박다운 짓을 했으며 왜 법이 박근혜같은 사람에게만 다정하냐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은 뭘까? 이명박이 그렇게 하면 썩을 행동이라고 했을 테니까 문재인이 그렇게 해도 썩을 행동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광신도라던가 내로남불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워낙 객관성이라는 것이 강조되다 보니 이런 주장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해도 이명박이 해도 FTA를 하자고 하면 다 똑같다는 것이다. 얼핏보면 그럴듯한 이런 말은 상식을 초월해 있다. 여러분은 정말 유명한 강간범인 조두순같은 사람이 당신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BTS의 멤버중의 하나가 당신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나 같은 거라고 생각하나? 전과 12범인 사기꾼이 하는 말이나 오랜 친구가 하는 말이나 같은 의미를 가진거라고 생각하나? 믿음직한 군인이 전투에서 패배한 것이나 사기꾼 같은 군인이 그렇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나?

 

물론 그렇지 않다. 우리의 믿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믿음직한 군인이 전투에서 패배하면 열심히 노력했지만 저렇게 되었다고 안타까워 할 것이고 사기꾼 같은 군인의 경우에는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을 와서 패배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내가 조국을 믿고 윤석렬을 안믿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조국일가는 정말 많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발표하는 비리를 보면 무슨 자원봉사 표창장위조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윤석렬과 그 처가는 그런거 하나 없어도 나오는 것들이 그와 비할 수도 없이 더럽다. 그런데 어떻게 조국일가와 윤석렬일가를 똑같다고 믿을 수가 있는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문재인 지지자가 아니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박사모는 그래서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무죄이며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재인을 모른다. 내가 설사 그와 같은 사무실을 쓰면서 일했다고 하더라도 문재인에 대해 다 알지 못한다고 할터인데 일면식도 없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내가 알면 얼마나 알 것인가. 그래도 나는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서 그를 믿는다. 그가 최선을 다했을 것을 믿는다.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은 FTA 추진과 이라크 파병으로 비판을 많이 당했다. 나는 그런 비판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실망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만 그렇다고 이명박을 지지하게 된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고 이명박과 노무현이 다른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에 찬동하지 못할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박근혜의 사면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싸웠을 것을 믿는다. 그가 사심없이 국가를 위해 일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은 한미 FTA는 하는가 안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에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굴욕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에는 언제나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믿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그 사람이 살아온 모습을 보면서 믿는 것이다.

 

박근혜의 사면은 실망스럽지만 나는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을 믿는다. 내로남불 운운하면서 잘못은 잘못이 아니냐는 말로 몰아가고 싶지는 않다. 사실 믿음은 위험한 것이지만 믿음이 없이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 모든 일을 다 알고 결정할 것같으면 세상에 분업따위가 있을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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