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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불매와 정용진의 잘못

by 격암(강국진) 2022. 1. 12.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멸공 사건으로 후폭풍이 크다. 이마트와 신세계를 불매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고 SNS에는 그의 병역문제나 회사경영에 대한 비판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런데 멸공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그는 도대체 뭘 잘못한 것일까?

 

엄밀하게 말해 멸공이라는 말 자체는 잘못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반론할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은 자유국가인데 누군가가 멸공이라고 주장하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대중적 분노와 불매운동을 불러일으킬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발언의 자유에도 조건이 붙는다. 그것은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사람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멸공을 밤새도록 외치면서 술을 마셨다고 해도 대중의 분노는 일지 않을 것이다. 

 

우선 장소가 틀렸다. 정용진은 아마도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곳을 친구들과의 술자리쯤으로 생각했던 것같다. 이게 내 생각인데 왜 내 맘대로 말을 못해라는 식으로 행동한 것이다. 하지만 SNS는 분명 개인적 술자리같은게 아니다. 그것은 미디어다. 뉴스나 공중파방송과는 또 다른 미디어지만 한 줄의 글이 전체 사회로 퍼져나갈 수 있는 미디어이므로 언행에 있어서 훨씬 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집에서 기타들고 노래를 한 곡부르는 것과 엄청난 스피커를 준비해서 동네 전체가 들리도록 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사이에도 에티켓은 차이가 있는데 SNS를 친구와 잡담장소정도로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시간도 틀렸다. 지금은 대선기간으로 사람들이 정치적 메세지에 민감하다. 그는 멸공이라는 말을 올리면서도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걸 믿어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보수정치권과 그 지지자들은 그에 관련된 이벤트까지 할 정도로 멸공메세지를 반겼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은 분노하거나 얼굴을 찡그렸다. 멸공은 친북이나 빨갱이같은 말처럼 사상 검렬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며 시대착오적인 말이다. 

 

실제로 멸공소동은 중국을 포함하는 해외에서도 보도가 나갔다.  공산당이 집권하는 중국과 싸우겠다는 것이냐는 말에 정용진은 급히 중국의 정치에는 관심이 없으며 이건 북쪽사람들에 관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이런 변명과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멸공이라는 말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증거다. 멸공은 공산당을 멸망시키자는 것인데 이 말은 마치 지금 한국에 공산주의 추종자들이 다수 있어서 그들이 한국의 정치체제를 공산주의로 바꾸려고 한다는 느낌을 준다. 북한의 추종자들이 남한을 북한에 바치기라고 한다는 느낌을 준다. 도둑이야라고 외쳤는데 도둑이 없다는 말은 이상하지 않은가? 멸공이라니 누구를 멸하자는 것인가? 북진해서 전쟁하자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에 침투한 북한 세력을 잡자는 것인가?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 경제력이 북한을 수십배 능가하는 현실에서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잡자라고 소동을 피우는 것이 시대착오적이 아닌가? 누가 북한을 추종한다는 것인가? 설령 몇몇이 그런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이 사회적 위협이 되는가? 

 

보수정권이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고 간첩으로 몰아서 정치적인 이득을 본 사건들이 역사에는 잔뜩 기록되어 있다. 멸공따위를 외치는 사람들 덕에 광주민주화운동도 간첩들의 선동에 넘어간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어떤 보수지지자들은 세월호 피해자 부모들에게도 빨갱이라는 말을 던진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경제교역 1등 국가가 바로 그 공산국가인 중국이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으로 오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바로 그 공산국가인 중국에 간다. 이런 민감한 말을, 이런 시대착오적인 말을 대선이 코앞인 이때에 SNS에 올리면서 나는 정치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장소와 시간뿐만 아니라 사람도 틀렸다. 정용진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신세계 부회장이고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재벌3세다. 그가 지금의 부와 명예를 누린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삼성가의 일원인 어머니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의심쩍은 이유로 군대도 안간 그가 멸공운운할 수 있는 것도 다 그 혈연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더욱 봉사하듯이 겸손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는 그의 노력과 능력 이상의 것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정용진이 누린 것같은 기회를 누린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커녕 그 자신은 자각할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에게 불공정한 한국의 관행을 통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용진은 성공한 사업가지만 결코 자기 노력만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특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SNS에서 누군가를 때려잡자고 선동을 할 자격이 있을까? 만약 연평해전의 피해자 가족이 SNS에서 멸공이라고 외쳤다면 사회적 분노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용진이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정용진은 자기가 누군지를 모르는 것이다. 

 

부적절한 장소에서 부적절한 때에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말을 하니 대중이 분노를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비판을 하면 사과를 하고 물러서면 될텐데 이해를 못하고 대중에게 항의하는 반박성 게시물을 자꾸 올린다. 그러니 대중은 그에 대해 더욱 확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대중적 시각에서 정용진은 총을 든 어린아이다. 그는 분명 사회적 영향력이라는 돈이라는 총을 들고 있는데 하는 짓이 어린애같다. 그러니까 그 총을 빼앗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정용진은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중적 이미지가 괜찮았다. 백종원과 더불어 농산물이나 해산물같은 걸 팔아주는 일로 칭찬도 받았다. 부자지만 소탈한 사람이고 솔직하게 대중과 소통한다는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재벌3세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사실 본인도 그 재산을 다 버리고 홀가분해질 생각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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