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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오지 않은 봄.

by 격암(강국진) 2022. 1. 24.

법은 전문가의 것인가 아니면 대중의 것인가. 이 간극은 이번 대선을 지배하는 문제중의 하나다. 사법개혁이냐 아니면 그것의 부정이냐가 현정부와 윤석렬 후보를 나누는 큰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는 넓게 보면 법조공무원을 넘어 행정은 전문가 즉 관료나 공무원의 일인가 아니면 대중의 일인가 하는 문제가 된다. 

방송을 통해 보는 법조인들의 언행을 보면 그들은 대개 법은 전문가의 것이며 어떤 고정된 시스템에 대한 것이라고 가정하는듯하다. 이런 일이 자연스러운 한 가지 이유는 선거와 같은 대중의 선택이 아니라 사법고시와 같은 시험의 통과가 법조인이 되는 기본 자격증이기 때문이다. 장관이나 국회의원도 고시로 뽑으면 그들은 행정이나 입법이란 지식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고생해서 공부한 것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법조인들은 따라서 전문가인 그들만이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법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법조인과 일반인의 차이라고 생각하며 방송에 나와서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태도를 보인다. 마치 방송에 출연한 과학자나 공학자가 일반인이 알기어려운 이론이나 기계의 원리를 설명해 주려고 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대중은 사법이 전문적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고 곧잘 파악한다. 만약 법이 그런 것과 무관한 임의의 약속에 대한 것이며 법의 적용이 상식과 정의에 대한 인간적 판단없이 기계적인 규칙의 적용이라면 뭐하러 법조인이 필요하겠는가. AI가 더 빠르고 정확히 일을 할 것이다. 앞에서 법조인들이 스스로를 과학자나 공학자인 것처럼 말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이공계의 일은 기계에 의해 상당부분 자동화되어있다. 인간적인 손길이 필요하다고 장인들이 수제로 모든 걸 만들었다면 우리는 몇백년내지 몇천년뒤로 문명을 돌려야 할 것이다. 

해방이후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해방이 되었지만 친일청산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군사독재 시절에 그것에 부역했던 법조인이며 공무원이며 경제인들은 어떤가. 군사독재가 사라진 오늘의 한국은 이제 새로운 독재가 날뛰는 곳이 되었다. 관행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많은 분야에서 인적 교체는 느리기 때문이다. 그때 만들어진 관행은 어떤가. 1980년은 고작 40년전이다. 지금의 고위 공무원들은 스스로가 군사독재시절의 부역자였거나 그들에 의해 선발되고 길러진 후배들이다. 그들은 누구의 철학과 관행을 물려받았는가?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승진을 결정했는가?

오늘날에도 권력피라미드의 맨 위에서 사람들을 맘대로 조종하던 군사독재권력자만 사라졌을 뿐 과거의 독재자들이 만들었던 권력의 도구, 권력의 관행은 그대로 남았다. 그걸 담당하던 작은 권력자들은 설사 당시에 독재에 반대했다고 해도 그들이 가졌던 권력과 이권에 대해서는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그걸 유지하려고 한다. 독재권력이 독재를 위해 만들었던 세상을 그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결국 군사독재가 사라진 한국에서 그들은 마치 자신이 선출되지 않은 한국의 주인인 것처럼 살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는 사람 중 이에서 100% 무관한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의반 타의반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에서 말한 관점에 지극히 부합하는 것은 판검사들이다. 이들은 그 수를 적게 유지하면서 법을 그들만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법은 위험한 무기이기 때문에 전문가인 그들만 다룰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마치 핵무기 기술자처럼 파악한다. 법의 적용현실에 대한 정보는 국가기밀내지 군사기밀이기때문에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검사는 기소권만 독점하는게 아니다. 검사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는 비밀이다. 재판의 결과인 판례를 디지털화하여 쉽게 뒤질 수 있게 하는 것도 안된다. 스스로 숫자를 늘리기를 거부해서 판검사가 해야하는 일은 엄청나게 많은 것도 따지고 보면 조직의 비대화로 그 단결력이 줄어들 것을 걱정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만약 판검사들이 자신의 재산 내역을 매년 투명하게 공개하라면 어떨까? 그들은 국회의원 이상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들은 계속 어둠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자신들의 주관적 판단을 휘두르면서 자신들은 기계처럼 객관적으로만 일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기업문화건 언론 권력이건 사법권력이건 그들의 낡은 권위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 할수록 문제가 된다. 행정과 법이 진화해온 일반 대중의 상식과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법과 관행이란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지만 결국 인간에 의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사라지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어간다.

법은 법이다라는 말 아래 우리는 지극히 경미한 위법에 대해서는 철퇴를 내리는 것을 자주 본다. 심지어 의혹만으로도 사법기관은 시민들을 극단적으로 괴롭히고 유죄를 선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무서운 법체계가 정작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배려 깊은 것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3천원을 훔치면 감옥에 가지만 3천억을 훔치면 잘먹고 잘사는 세상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은 범죄자를 너무 잘보호해준다. 그래서 강간사고가 일어나도 그 사건을 피해자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많을 뿐 아니라 피해자의 신원은 잘 돌아다니는데 가해자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의 예외가 되는 것이 바로 수사상황을 언론에 흘리는 검찰의 행위다. 결국 한국의 법체계는 엄벌주의, 비밀주의를 유지하면서 자의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법대로 하자면 다 걸린다면서 너도 털면 다 먼지가 나온다고 자신만만하다. 이런 권력 누가 왜 그들에게 주나. 특히 그들을 대표하는 윤석렬을 보면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그런 권력을 휘두르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내 눈에는 그가 둔감하고 무식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이 유지되어야 할까? 이런 세상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검사가 대통령이 되어야 할까? 친일청산이 되지 못한 것을 우리는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이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 안의 독재가 청산되지 못한 것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봄이 되었지만 봄은 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과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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