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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와 사기가 아닌 것의 차이

by 격암(강국진) 2022. 1. 18.

2022.1.18

누군가가 갑자기 만원짜리를 이만원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다면 그것은 사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법은 실상 오늘날 아주 흔하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내가 쓰는 의자를 중요한 골동품으로 여기면서 그걸 천만원으로 거래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천만원을 허공에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천만원을 받았고, 내 의자는 시중에서 마치 천만원짜리 수표처럼 돌아다닐 것이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 여기저기서 발행하는 포인트같은 것도 수표같은 것이지만 대표적으로 주식발행이 그렇다. 

 

주식을 발행하든 안하든 이 세상에는 물리적인 변화가 없다. 그런데 회사의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하면 갑자가 거대한 돈벼락이 떨어진다. BTS의 회사인 하이브가 이런 식으로 11조가 넘는 주가총액을 가진 회사가 되었다. 더 신기한 마법도 있다. 배터리를 주력으로 가진 엘지화학이 배터리를 떼어내서 엘지에너지 솔루션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의 주식을 판다. 만약 엘지화학의 주가가 그걸 결정한 사람들 말처럼 유지될 수 있다면 갑자기 한개의 회사가 두개의 회사분량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비슷한 일이 카카오 그룹에서도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사기일까 아닐까? 뭐가 그걸 결정할까? 궁극적으로 이 것이 사기일까 아닐까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신뢰다. 오늘날 신용이 곧 돈이라는 말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신뢰가 이런 행위를 통해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건 사기가 아니다. 서울의 아파트 한채가 정말 50억이라고 누구나 믿는다면 그건 50억짜리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없어지면 그걸 50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다. 

 

그럼 언제 신뢰는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 생겨난 돈을 어떻게 분배하고 쓰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특정 개인이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서 이득을 자기만 독점하면 사람들은 그걸 대부분 사기라고 말한다. 백화점이나 카드사 포인트같은 것도 결국 누군가가 돈을 지불하지 않고 포인트라는 어음을 발행한 것이기 때문에 그 시차로 인한 금융이익이 발생한다. 그 이익을 대중과 나누지 않고 혼자서 독점한다면 즉 대중이 편리하게 얻는 이익은 없고 혼자서만 그 이익을 가지려고 한다면 그걸 사기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카드사는 할인혜택같은 걸 주는 것이다. 나도 좋지만 모두가 좋으니 쓰자는 것이다.

 

엘지 에너지 솔루션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말이 많았다. 엘지화학 주식을 산 사람은 배터리 사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한 것인데 그 엘지화학에서 배터리를 떼어내 다른 회사를 세운다면 거기에 투자한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카카오 뱅크나 카카오 페이도 마찬가지다. 카카오라는 회사가 가진 알짜 사업을 분리해 내면서 돈을 만들고 그 돈을 회사 임직원들이 스스로를 벼락부자 만드는 일에만 쓴다면 사람들은 그걸 사기로 본다. 회사들은 물론 그렇게 해야 회사의 발전을 위한 자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중이 보기에 그렇게 하기 위한 계획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면 결국 사기를 친 것밖에 안된다. 

 

한국은 오랜간 재벌의 입김이 워낙 쎄게 살아서 인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둔감하다. 그러니까 사기를 치도록 방관하는 것이다. 이런건 외국에서도 한다던가, 이런걸 사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경제를 모르는 것이라던가 변명을 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야 말로 사기와 사기가 아닌 것의 차이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신용이 추락하는 것이 시장의 복수다. 그들은 사기를 치면서도 시장의 복수를 당해 본 적이 없기에 그걸 사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당했다고 생각하는 개미들은 방법만 있다면 복수를 하고 싶다고 벼르는 것이다. 여기서 본질이 법이나 관행이 아니라는 걸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세상이 전과 같을까 다를까? 아직 세상은 여전히 전과 같을지도 모른다. 사실 대한항공만 해도 그 난리가 났었는데 결국 물컵갑질을 한 조현민이 사장이 되었다. 아직도 대중의 분노는 재벌에게 닿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바뀌었을 수도 있고 얼마지나지 않아 바뀔 수도 있다. 그 말은 대중의 분노가 철퇴가 되는 날이 이미 왔거나 얼마지나지 않아 올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때가 와서 법이 어떠니, 절차가 어떠니 하고 떠들어 봐야 소용없고, 이건 사기가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없다. 신뢰를 잃었으니 바로 사기인 것이다. 남을 무시하면 자기도 무시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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