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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국가란 무엇인가

민주정권이 보수정권을 이기기 어려운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2. 9. 7.

22.9.7

나 자신은 민주정권을 지지하지만 민주정권은 보수정권을 이기기 어렵다. 왜 그럴까? 우리는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거나 사람들이 어리석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걸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도 있다. 바람직한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어떤 테두리를 긋고 그 범주와 그 범주에서 적용되는 정의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당연한 것같은 전제도 사실은 종종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하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민소득이 증가하면 좋은 것인가? 그것은 행복과 같은 것인가? 더 나아가 발전이나 진보란 정말 행복과 같은 것인가? 애초에 우리가 원하는게 뭔가? 행복인가 발전인가? 뭔가 1등하면 그건 무조건 좋은 것인가? 

 

자신의 일상으로 가면 사람은 대개 아주 보수적이다.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아직도 우리는 아파트는 평수로 재고 고기는 근으로 말한다. 이건 불합리한 일이지만 이미 거기에 익숙하니까 그걸 바꾸려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바꾸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이것뿐이 아니고 우리의 생활과 문화는 바꾸기 참 어렵다. 사람들은 단지 남에게 혁신하라고 말하기 좋아할 뿐 그것이 자신이 일이라면 정말 자기 생활을 바꾸기 싫어하고 어려워한다. 이래서 여러가지 정의가 생겨난다. 나의 정의, 나의 가문의 정의, 내 지역의 정의, 내 직장의 정의, 내 국가의 정의, 인류의 정의같은 것은 서로 다른 테두리에서 논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같지 않다. 동네에서 돈을 뜯는 조폭도 나름 이건 내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지켜지는 것이 그들에게는 정의다.  조폭만 그런게 아니다. 청년에서 노인까지 정말 자기것 안 빼앗기려고 싸울 때 사람은 대부분 참 치사하고 집요해 진다. 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자리에서 이익은 자기가 챙기고 위험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고 한다. 

 

이런걸 생각하면 그런데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 그런데도 민주정권은 몇번이나 정권을 잡았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 환경 특히 인구구조다. 사람은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안에서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보수적이지만 그래도 환경이 변하면 어쩔 수 없이 그 환경에 떠밀려 변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국제환경도 있을 것이고, 문화적 환경도 있을 것이며, 경제적 수준도 있을 것이고 군사적 대치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이후에는 큰 환경적 변화가 있었다. 국토가 다 파괴되었고 사람은 많이 죽어서 아이를 많이 낳았다. 소위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난 것이다. 한국은 급속도로 경제발전을 했고 해방무렵에는 학부졸업생도 얼마없던 한국이 베이붐 세대가 청년이 되는 80년대를 지나자 박사도 흔한 나라가 되었다. 21세기에는 한때 고졸자중 80%의 인구가 대학에 진학할 정도였다. 나 자신이 이 베이비붐 세대의 일원인데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보다 훨씬 문화적으로 많은 것을 향유할 수 있는 세대였다. 

 

이런 사회적 변화는 애초에 한국인의 문화속에 인문학적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어떻게해서든 자식을 교육시키려고 하지 않으며 지식과 학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한국이 본래 고려며 조선시대에 이미 배우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해방되고 자유를 얻자 모두 자식을 가르치려고 한 것이다. 즉 이것은 어떤 의미로 한국의 회복이라고 봐야 하며 따라서 한국이 지금처럼 부유해 진것도 실은 회복이라고 봐야 옳다. 우리는 본래 높은 수준의 문화대국이었기에 독립하자 회복한 것이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기준이 이미 높게 높게 우리의 문화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0년대의 기성세대가 제아무리 보수적이라도 한국은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통 문화가 회복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인구구조로 보면 다수를 차지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기성세대의 질서에 항의하면서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이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주장하는 것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라는 다수의 인간이 가지는 문화적 공감대가 거기에 구체성을 담았다. 결국 1987년의 6월항쟁은 대통령직선제를 관철했고 민주정권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기틀이 생겼다. 

 

문제는 이런 걸 생각하면서 지금의 한국을 생각할 때 과연 진보와 혁신을 강조하는 정권이 이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미 1980년대와도 다르다. 과연 전통문화가 요구하는 회복의 힘과 신세대가 요구하는 혁신의 힘이 한국 사회를 계속 해서 바꿔갈 수 있을만큼 강한가? 이제 그런 요소들은 힘을 잃었다. 학벌 무용론이 나오고, 인구구조는 뒤집어 졌다. 다시 말해 기성세대의 수가 신세대의 수보다 훨씬 더 많다.

 

이제는 민주당의 지지자라고 해서 꼭 진보주의자라고 할 수도 없다. 그들중 상당수는 이미 한세대전의 정의와 지향점을 바라보며 사는 보수라고도 할 수 있다. 낡은 진보다. 지금의 노인세대와 중장년세대의 관계는 지금의 중장년세대와 청년세대와의 관계와도 달랐다. 386세대는 혁신이 젊은이가 살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기 쉬웠다. 당대의 낡은 문화는 결국 봉건적이고 후진국적인 문화였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젊은이들은 기회만 있다면 선진국 젊은이들처럼 나도 살 수 있다고 믿었기에 억압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들에게는 가야할 길이 뻔히 보였다. 유럽이나 미국같은 선진국들이 책을 통해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원했고 시스템의 개선을 원햇다. 당시만 해도 단순했던 시스템은 이해하기 어렵지도 않았다. 

 

반면에 지금의 한국 젊은이들은 외국이나 선진국에 대한 동경이 훨씬 작다. 어디로 가야 더 좋아진다는 건지도 훨씬 말하기 어렵다. 한국이 이미 상당부분 선진국이 되었고 외국도 엉망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유치원때부터 경쟁하고 혁신하는 것만이 살길이라면서 뛰어온 세대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더 열심히 더 뜨겁게 살라고 하는 말이나 아프니까 청춘 운운하는 말일 것이다. 뭘 더 열심히하고 뭘 더 경쟁하라는 말인가. 지금도 죽을 것같은데. 유치원때부터 시작된 경쟁이 10년이 넘어가고 과외하고 학원다니며 별보고 다닌 게 10년이 넘는데 뭘 더 참으라는 말인가. 아니 요즘은 사실 대학도 학원같다. 그래서 취업을 데드라인으로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20년을 참고 입시생처럼 산다. 취업을 하면 인간적으로 살 수 있을거라는 기성세대의 가르침이 옳기바라면서 말이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더 혁신적인 나라를 만들고 세상을 바꾸자고 하면 모두 뜨겁게 좋아할까? 누가 시험합격 하나만 보고 10년 20년 공부했는데 입시요강이 바뀐다고 하면 좋아할까? 기성세대가 이런게 세상이 필요한 인재라고 해서 그 스펙을 만드느라고 죽도록 오래 그 길을 달렸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이젠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다고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하면 젊은이들이 386세대때의 젊은이들처럼 찬성할까? 이제는 취직을 해도 자유계약직으로 헤매면서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기를 바라며 30년을 뛰는 시대가 와야 하는가? 

 

요즘 젊은이들이 보수적이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너무 오래 입시와 취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억압당했다. 시스템에 투자한 인간은 보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바람직한 세상이란 아무래도 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한 곳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 진보와 개혁이 다수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어떤 진보여야 할 것인가? 

 

그 진보는 따뜻하고 포용력있으며 결백증에 걸리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진보여야 할것이다. 말싸움으로 이겨서 혹은 어떤 법을 만들어서 남에게 자신의 뜻을 강제하려고 하는 진보는 설혹 그것에 성공하더라도 결국은 역풍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진정한 공감과 설득은 그런 걸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건 명심해야 하는 일이고 필요한 일이라서 포기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날마다 얼굴보고 사는 부부가 수십년을 같이 살아도 사람이 바뀌는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결혼한 사람은 느낄 것이다. 한국이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고, 멈춰서려고 하는 것은 개혁의 길에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선진국은 대부분 이를 잘보여주고 있다. 일본이건 서구국가던 모든 선진국들은 굉장히 보수적이며 지나간 황금기에 대한 추억에 빠져서 산다. 그들은 한국에 비하면 사회적 혁신이 없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일본이 극단적이다. 잃어버린 30년 운운하면서 10년안에 선진국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도 나라에 변화가 없다. 절망한 일본의 젊은이들은 안벌고 안쓰고 결혼안하고 애도 낳지 않는 은퇴생활을 20대부터 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세상에 나가보지도 않고 은퇴하는 것이다. 선거는 하나마나가 되었고 언론은 보수정권 찬양에만 빠져서는 나라를 갈라파고스로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바로 변하지 않는게 뭐가 나쁘냐고 하면서 말이다. 아직도 플로피 디스켓쓰고 팩스쓰면서 재판이즈넘버원을 외치며 사는 것이다. 

 

한국은 소위 말하는 중진국의 함정을 탈출하고 선진국이 된 드문 사례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의 함정을 세계 최초로 돌파해야 할 과제도 가지고 있다. 제국의 후예로 막대한 자본을 쌓아올린 기존 선진국들과는 달리 한국은 보수화하고 개혁의 동력을 잃는 순간 선진국 지위가 금새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꽤 부유한 나라가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패권국가였던 미국이나 영국은 물론 일본의 전성기때와 비교해도 비할 수 없이 약하고 가난한 나라다. 일본은 인구도 3배가까이 많은데다가 당시의 일본은 세계 10대기업중의 절반이 일본기업이라는 식이었으니까 말이다. 구글이나 테슬라가 일본회사였던 시대인 셈이다. 그런데 겨우 이정도에 도달한 한국이 보수화하고 혁신을 포기해도 될까? 국가부도따위가 몰려오면서 순식간에 몰락해 버리지 않을까? 브라질이나 필리핀같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안그래도 검찰이 정치를 장악해서 나라가 몰락한 브라질과 한국이 비슷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정권이 이기는 미래, 개혁이 계속되는 미래가 있다면 한국인들이 이런 한국의 상황을 망각하지 않을 때 뿐일 것이다. 우리는 개혁하고 인류의 미래를 열어나가야 살아남는 나라고 이정도면 되었다고 주저앉는 순간 급격히 망할 나라다. 우리를 대체하고 싶은 나라는 많다. 세계 전체에 얼마나 많은 대학들이 세워지고 졸업생들이 쏟아지고 있는가.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적 환경과 인류 자체를 둘러싼 기술적 문화적 환경이 변화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런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망할 나라다. 그것만이 우리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큰 땅이 있는가, 인구가 있는가, 자원이 있는가, 자본이 있는가. 한국이 개혁을 포기하고 한국의 인재들이 한국을 포기하면 한국은 일본처럼 변할 수 없는 보수적인 나라가 될 것이고 그 추락은 일본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사실 이명박을 뽑고 박근혜를 뽑았을 때 이미 한국은 망할 뻔 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다. 유례없는 촛불시위가 박근혜의 탄핵과 민주정권의 복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기간 한국은 선진국으로 도약했고 수없는 찬사를 들었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주식시장도 크게 성장했다. 한국이 세계 외교의 현장에서 힘을 쓰는 나라가 되었다. 

 

일본과 달리 나라를 쇄국하고 세계 스탠다드는 무시하는 갈라파고스가 되어서는 한국은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데 이게 바로 눈 먼 보수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은 낡은 봉건시대의 가치나 다름없는 이승만, 박정희의 향수에 젖어서 살고,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는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 재벌세습따위를 계속 합리화 해주면서 살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는 그들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사회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라고 믿지만 실은 세계적 가치 기준에는 떨어져서 경멸당하고 비웃음 당하는 존재라는 것을 절대 모른다. 세계가 인정하는 것은 민주정권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이 극명한 예지만 노무현이든 문재인이든 민주정권의 대통령은 외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 외국의 눈으로 보면 이명박, 박근혜, 윤석렬은 존중할 가치가 없는 후진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외국의 눈으로 보면 한국의 보수정권은 부패하고 무능하다. 보수와 언론, 재벌등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런 사실을 가리기 위해 한국을 갈라파고스로 만들고 있다. 오죽하면 문재인 정권때도 한국의 민족 언론은 BBC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OECD 1등을 해도, 한국의 방역이 세계 1등을 해도 한국은 망한 나라라고 떠들던 한국 언론들 때문이다. 

 

이러니까 보수정권에서는 다른 것도 있지만 외교와 국방이 실종된다. 보수의 눈은 언제나 안으로만 향해 있다. 그들은 그저 지금 있는 것을 지키겠다는 사실 밖에는 없기 때문에 그것이 극명하게 자신의 손해가 되는 때에도 바깥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영부인의 사기행각만 해도 그렇다. 이런건 선진국에서는 유죄 무죄를 따지고 있을 일도 아니다. 제목에 YUJI라고 쓴 논문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누가 따진다는 말인가. 한국의 대학이 스스로 나서서 이런 건 관행이라고 말하는 일이 21세기에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이건 스스로 한국의 학문적 기준이 여전히 후진국이라고 말하는 큰 자해행위다. 고등학생이 논문쓰는 것을 부모 빽으로 도와서 스펙만들고 그걸로 미국유학을 보내고 하는 일은 후진국이나 하는 것인데 그걸 정당화하려고 하면 결국 한국의 유학생들은 그런 기준으로 대우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이 계속 혁신을 계속 할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하고 한국은 여기까지가 아닐까, 한국이 곧 망한다는데 배팅하고 그걸 현실화하기 위해 힘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언론들이 열심히 정당화하고 보호해주려고 하지만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 도요타나 구글이나 테슬라가 아버지가 CEO라고 해서 자식이 그걸 물려받는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가? 현대사회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가를 생각하면 이런 봉건질서는 터무니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서울대교수라고 해서 자식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은 터무니 없는데 CEO는 왜 그게 가능한가? 경영자는 하는게 없어서? 오히려 경영자의 비전이 회사를 순식간에 망하게 하는 것이 오늘날 아닌가? 땅콩회항같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경영을 해도 되는게 경영자의 자리인가? 단순히 회장 한명만 그런게 아니다. 한국에는 재벌 3세가 아니라 4세 5세까지 있으니 재벌가문에 한자리 걸친 사람만 해도 이미 한국에 수도 없다. 게다가 이런 봉건적 관행이 어디까지 퍼져서 한국을 얼마나 좀먹고 있겠는가. 중소기업하는 작은 부자들은 투명하고 깨끗하게 하고 있겠는가? 안그래도 물려받은 돈으로 잘먹고 잘살수 있는 인간들을 책임과 능력이 필요한 그럴싸한 자리에 집어넣으려고 얼마나 많은 몰상식을 저지르고 있겠는가. 이명박 같은 사람이 자기 식구 회사에 집어넣고 그 명의로 회사돈 빼돌리는 일을 하는게 이명박 회사에서만 있는 일일까? 회사 법인 카드로 자기 집 인테리어하고 고급 외제차 뽑고 생활비 쓰고 하는 일이 최고 재벌들 회사에서만 있는 일인가? 이러면서 한국이 혁신을 계속하고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계속 줄 수 있을까? 그게 안된다는 걸 제일 잘 보여주는게 터무니 없게 낮은 출산률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은 어렵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대부분의 우리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보수적으로 산다. 많은 것에 손을 뻣고 어느 것하나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혁신해야 살 수 있는 젊은이들도 제발 혁신 그만하자고 한다. 젊은 사람 피빠는 것이 혁신이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정부쪽에 있는 사람이 모두 진짜 혁신가도 아니고 혁신을 외치는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고 넓은 시야를 가진 진보도 아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보면 한국은 망할 길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이 그랬던 것은 이미 해방직후부터 그랬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걸 극복한 한국이 특이한 것이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기저기에는 이 나라를 지탱하고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의병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나서서 떠드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하는 것같지만 사실 그 사람들은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별로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일본이며 미국이며 영국같은 나라에서 살 때 늘상했던 생각이 한국은 교수건 기업가건 정치가건 자칭 사회적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경쟁력이 제일 떨어지고 일반 시민들의 힘이 훨씬 뛰어나다는 거였다. 그 의병들이 나라가 망하려고 할 때마다 나라를 앞으로 전진시켜왔다. 제일 가까운 예는 촛불시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병은 결국 조선이 망하는 것을 지키지 못했으니 무작정 안심만 할 수는 없다.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이 혁신이다. 관행에 따라 살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는 것이 혁신이다. 그런데 학생이건 직장인이건 바로 그 시스템에 너무나 오랜동안 시달렸고, 거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투자한 것이 오늘날의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진 현실이기도 하다. 학원을 포기하고,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포기하고, 승진을 포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386세대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다시한번 이 껍질을 깨고 도약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진국의 함정, 보수화의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그러기 바라지만 쉽지 않다. 이것이 민주정권이 보수정권을 이기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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