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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인공지능에 대한 글

chatGPT는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22. 12. 26.

22.12.26

오픈AI가 발표한 생성 인공지능 chatgpt가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AI는 프로그램을 해주고, 상당히 다양한 질문들에 합리적인 답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사나 시를 써줄 수도 있는 능력을 보이기 때문에 지금 이 상태로도 서비스가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 수준인데 지금 AI의 발달을 보면 이대로 몇년만 지나면 너무나 훌룡한 인공지능이 출현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때문에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구글이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 회사로 오랜 동안 이 분야를 독점해 왔는데 chatGPT가 검색을 한단계 위로 향상 시킬 가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구글은 지금 비상신호를 울리면서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하니 구글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시작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chatgpt가 인간을 대체하는 분야가 많고 업무효율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chatgpt는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간단한 소개 자료를 작성해 달라고 하면 즉석에서 그걸 잘 제공해줄 수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한한 지식을 가진 전문가를 비서로 두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이는 다시 말해서 방대한 자료를 단순히 요약하는 일을 하는 거라면 이것은 앞으로 크게 자동화될 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구글도 하지 못한 일인데 구글은 자료들을 찾아주기는 하지만 그것들을 지나치게 난잡하게 주기 때문에 이를 정리하는 일을 사람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트랙터같은 농기계가 발달하면 농사를 하는데 있어서 소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라던가 쟁기질을 잘하는 사람의 능력은 별로 의미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는 더 생산성이 좋은 작물을 키우는 선택을 한다던가, 그렇게 기른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파는 일에 있어서 수완이 있는 사람의 역할을 돋보이게 만든다. chatgpt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단순히 인간을 대체한다고는 할 수 없고 어떤 사람의 일을 빼앗지만 어떤 사람들의 능력은 더 돋보이게 만들 것이며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크게 바뀌게 할 것이다. 자동차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장거리를 걷는 일이 없어지듯이 말이다.

그럼 chatgpt는 어떤 일을 못할까? chatgpt는 데이터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다. 따라서 데이터가 많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좋은 대답을 내놓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분야에서는 형편없는 결과를 내놓게 된다. 예를 들어 chatgpt는 아마도 연애를 하는 법에 대해서 책도 쓸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연애의 일반론이며 특정한 여성이나 남성과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를 조언할 때에도 그런 일반론밖에는 내놓지 못할 것이다. 역사상 한번도 비슷한 일이 행해진 적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chatgpt가 좋은 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것은 인문학 분야에서는 chatgpt가 강하지만 이공계 분야에서는 약할 거라는 예측을 낳는다. 위에서 보였듯이 기사를 작성하거나 시를 쓰는 일을 chatgpt는 이미 잘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드는 일도 인공지능은 요즘 잘하고 있다. 왜냐면 인류에게는 그런 분야에 대한 데이터가 상당히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인류 최고의 작품이 될 수는 없어도 보통의 사람들이 만드는 작품의 수준은 이미 넘어서는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대회에서 상을 타고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이 인간이 만든 음악보다 인기가 좋은 세상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재다. 

하지만 chatgpt에게 핵융합에 대한 새로운 과학기술 논문을 연구를 해서 쓰라고 한다고 해도 그것이 가능할까? 첨단 연구는 과거 연구의 요약이 아니다. 따라서 이건 불가능하거나 훨씬 어려울 것이다. 인기가 좋을 것같은 새로운 자동차의 디자인을 부탁하면 chatgpt는 어느 정도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지만 주행거리가 20% 더 많은 전기차를 만들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면 못하거나 뻔한 답을 할 것이다.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아마도 그것이 머지 않은 장래에 인류의 상식을 상징하고 인간사회의 기본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인공지능은 학자나 학계가 이제까지 해온 지식의 저장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말을 우리는 일상에서 쓰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 대부분은 민주주의에 대해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으며 헌법을 전부 읽어본 적도 없지만 그렇게 성문화 되어 있는 법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며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들을 토론하고 정리하며 기억하는 대학이나 연구소 같은 기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말의 뜻이 마음대로 왜곡되어 쓰이다가 변하고 그러다가 사라지는 일이 방지된다.

문자는 지식의 DNA같은 역할을 하면서 정보가 변하는 것을 막는다. 대학은 사상의 DNA같은 역할을 하면서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들과 사상들이 마구 돌연변이를 일으키다가 사라지는 것을 막는다. 그것은 국가와 문명의 DNA같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역사는 매번 한 개인이 다시 쓸 수 없고 쓰지 않는다. 그것은 그 나라의 역사학계 전체가 조금씩 고쳐쓰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 나라의 정체성을 지켜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그 나라가 안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자동차는 일반론적으로 말해 결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가 아니지만 달린다는 점에서는 인간보다 비교할 수 없게 뛰어나다. chatgpt도 그렇다. 이것이 인간보다 일반론적으로 더 뛰어난 기계는 아니지만 어떤 점에서는 인간보다 이미 비교할 수 없게 뛰어나다.  인류가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데이터를 다 보고 읽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걸 할 수 있다. 박사학위자가 초등학교때부터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20년을 공부했다고 하자. 이 사람이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자료의 양과 chatgpt같은 기계가 그럴 수 있는 자료의 양은 비교가 안된다. 어떤 학자도 구글 검색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나마 구글검색은 그 지식을 훨씬 정리되지 못한 채로 제공했는데 chatgpt같은 인공지능은 마치 학자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몇년전에 알파고가 프로 바둑 챔피언인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몇년 지나지 않아서 지식의 권위에 있어서 chatgpt같은 기계가 전문 학자를 이기는 일을 보게 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순신을 연구하는 어떤 학자보다 chatgpt같은 기계가 더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시대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그럴리가 있냐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이게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다. 미술대회에서 이미 인간이 컴퓨터가 그린 그림에게 지는 것을 보면서도 니체를 설명하는 한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써보라고 한 뒤에 전문가를 포함한 어떤 인간보다 인공지능의 보고서가 더 뛰어난 시대가 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방대한 데이터가 문제인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고 인간은 그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chatgpt같은 기계가 이미 출현했다면 그런 시대는 코앞에 와 있다고 봐야 한다. 어쩌면 미래에는 대입수능을 인공지능이 출제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말이다. 이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그런게 아니다. 단지 통계적 결과에 의해서 일들을 처리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 시대가 무르익으면 (아마도 10년은 걸리겠지만 30년씩 걸릴 것같지는 않다.) 우리는 chatgpt같은 기계를 도로위의 자동차나 법을 적은 법전을 보듯이 하게 될 것이다. 자동차는 기계지만 빨간불이면 인간은 건널목에서 기계에게 길을 양보한다. 법전에 적힌 법은 문자이지만 그 법을 어겨서 처벌받는다고 인간이 자존심 상해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chatgpt같은 기계에 대한 신뢰도가 사회적으로 자리잡으면 많은 상식을 다루는 분야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권위에 순응할 것이다. 네비를 켜면 운전자는 기계가 돌라고 하는 곳에서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에게 뭔가를 하는 방법을 물어보면 그 이후에는 기계가 명령하는대로 할 것이다. 기계에게 물어봐서 내가 옳은가 저 동료가 옳은가에 대해 판정이 나오면 그 판정을 인정할 것이다. 월드컵에서 공의 위치에 대해 기계가 판정하는 것을 믿듯이 말이다. 

우리는 규칙이나 계약을 만들어 내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미 전화기를 개통할 때 통신회사에서 내미는 계약서를 다 읽어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chatgpt가 그 계약서를 다 읽어보고 이러저러한 점이 취약하다고 지적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게 아니면 회사가 방대한 양의 계약서를 작성할 때 chatgpt에게 부탁하면 어떨까? 즉 인간과 인간이 계약을 하고 인간과 회사가 계약을 할 때 그 계약의 세부사항을 작성하는 것도 인공지능이고 그 계약을 읽고 문제없다고 판정하는 것도 인공지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은 대강의 사항만 요구하고 자세한 규칙이나 계약조건은 인공지능이 알아서 처리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마치 왕과 왕이 만나서 합의를 할 때 그 밑의 신하들이 세부사항에 대해 신경쓰고 처리하듯이 말이다. 

이런 일은 물론 반대도 있고 찬성도 있을 것이지만 이에 반대하는 나라는 발전의 속력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끝없는 가짜 뉴스와 미신때문에 분열되고 사회적 힘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물론 법이나 학계의 권위를 둘러싸고 싸움이 벌어지듯이 인공지능의 권위와 편향성에 대한 싸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부패하고 혼란된 인간들보다 인공지능이 더 공평하다고 여겨지는 시기는 오고야 말 것이다. 

이런 때가 오면 이는 단순히 편리한 인공지능을 사람들이 쓰는 시대라고 할 수 없다. 이 시기는 인공지능이 인간 정신의 중요한 한 부분을 담당하는 시대다. 그리고 여기에 적응하면 인간이 문자없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듯이 인공지능없는 세상으로 후퇴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인공지능이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시대다. 그 시대에도 인간은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것이지만 정부가 하는 일의 상당부분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인간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규칙에 대해서는 인간들이 논쟁을 벌이겠지만 인공지능이 데이터로부터 이끌어낸 결론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건 마치 백만자리 수 곱하기 백만 자리 수의 답을 검산을 안해보고 그냥 믿는 것과 같다. 인간은 그걸 검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인간도 지금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하는 일에 몰두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서 데이터가 많은 일은 인공지능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모든 인간들이 그 사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인공지능을 더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공급하려고 노력하는 것같은 사회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시행착오와 연구조차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보기엔 너무 먼 미래고 올지 안올지 모르는 미래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온다면 그 이후의 미래는 상상불가능하다. 그건 인간의 존재의미가 뭘 지 알 수 없는 미래이고 인간이라는 하드웨어로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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