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욕망

22.12.31

우리는 진짜로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는 거론하기 싫어하고 피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재산의 총액이나 투자상황 혹은 통장의 비밀번호를 사방에 떠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성에 대한 것도 그렇다. 당신의 섹스 판타지라던가 당신의 성경험이라던가 하는 것을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껄끄러운 것이다. 

돈이나 성은 자주 이야기 되지 않기에 오히려 잘 보이지도 않게 되는 욕망의 대표같은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것을 넘어서 이런 욕망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당신이 부자에게 굽신대고 가난뱅이에게 거만하게 구는 것이 모두 돈때문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당신이 어떤 아가씨나 총각에게 친절했던 것이 사실 그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돈과 성이 보이지 않는 욕망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아주 긴 목록의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는 분명 아주 다양한 동기와 욕망의 지배를 받는다. 냄새가 좋다던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싶다던가, 폭력을 쓰고 싶다던가, 나쁜 사람이 되고 싶다던가, 유명해지고 싶고 잘난 척하고 싶다던가, 자신의 부끄러운 짧은 다리를 숨기고 싶다던가, 자기에 대한 자존감이 없는 것을 숨기고 싶다던가하는 무수히 많은 동기와 욕망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 중의 아주 일부만을 인정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이지 않는 욕망과 동기는 그것을 억눌렀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변하고 만다. 미모가 뛰어난 남자나 여자 앞에 가면 유달리 떠는 사람의 진짜 동기는 경우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동기는 성욕일 가능성이 높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판타지 속에서 강한 성욕을 느끼지만 그걸 매우 억누른 나머지 자신이 왜 떠는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일찌기 프로이드는 우리에게는 인식되는 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식되지 않는 잠재의식이 있고 그 잠재의식도 우리를 강력히 지배한다고 지적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다만 지금 돌아보면 프로이드는 성적인 잠재의식을 강조했지만 우리의 잠재의식은 아주 다양할 수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돈에 대한 잠재의식도 있을 것이고, 식욕에 대한 잠재의식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니 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건 우리가 뭔가를 당연한 것으로 아주 굳게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는 자존감이 없어서 화장을 짙게하고 옷을 비싼 걸 입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자존감이 없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깔끔할 뿐이며, 취향이 그러할 뿐인 것이다. 우리는 대개 자식에게 버림받고 외로운 노인이 되는 것이 매우 두렵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대신 우리는 온갖 방법으로 자식을 얽어매서 그가 우리를 떠날 수 없도록 묶어둘 뿐이다. 왜 그렇게 하냐고 말하면 전통이 그렇다던가, 본래 사는데에는 따라야 예절이란게 있다던가, 자식이 모자라니 내가 간섭을 안할 수 없다던가 하고 말할 뿐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우리는 그걸 그냥 상식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들을 아는 사람들은 거꾸로 뭔가를 폭로하기 위해서 껄끄러운 것을 고의로 노출시킨다. 이러한 행위는 그래서 좋은 의도를 가진 것이며 또 때로 좋은 결과를 가져 온다. 고해를 한다던가, 고백을 한다던가, 스스로 자신의 숨은 동기를 인정하는 말을 한다던가 하는 것이 우리를 해방시키며 우리 안에 있는 정신적 긴장을 해소시킨다. 하지만 뭐든지 하기 나름이다. 하루 종일 나는 돈이 좋다며, 돈을 가지고 싶다라고 말하면 확실히 돈에 관한한 우리는 숨은 욕망의 문제를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섹스에 대해 떠들어 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동안 우리의 다른 욕망들은 훨씬 더 잘 숨어들게 된다. 촉각이 둔하다고 촉각에만 신경쓰면 다른 감각이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입만 열면 섹스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이 반드시 숨겨진 욕망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하기 쉽다. 우리의 숨겨진 욕망들은 고요한 마음 앞에서만 잘 들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면 우리는 사실 우리 자신의 대부분을 보지 못하고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것, 기억해내기 싫은 것, 인정하기 싫은 것은 대개 보이지 않는 욕망이 되고 만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게 너무 많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스스로가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 가를 통해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첫째로 타인도 그리 정확한 거울은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어떤 면을 보여줄 수 있지만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가진 욕망때문에 나의 모습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를 구분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어쩌면 뛰어난 인물 혹은 나를 사심없이 응원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가장 큰 보람은 이 거울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왜곡하는 거울이라고 해도 어떤 인물들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사소한 욕망에는 잘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좋은 거울 역할을 한다. 우리는 종종 그런 사람을 스승이나 멘토라고 말한다. 그들이 뭐하나 가르쳐 주지 않아도 좋은 스승은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사람이다. 대화내용은 아무 것도 아니라도 된다. 그저 날씨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스승은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이 누군지를 알게 해주는 면이 있다. 

타인이 나의 보이지 않는 욕망을 폭로하는 좋은 수단이 아닌 또 한가지 이유는 욕망들은 종종 집단적으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타인과의 소통이 우리를 더 눈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마치 몸무게가 1톤은 나가는 사람에서 20kg정도 밖에 안나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데도 모두가 몸무게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계속 모여있으면 분명 언행이 일치가 안되는데도 다들 모여서는 몸무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합창을 하는 것이다. 종종 사회적 압력은 두눈을 뜨고 있는 사람의 한쪽 눈을 감기려고 들기도 한다. 그래서 타인을 통해 나를 아는 것은 대개 도움이 안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던가, 주체적인 인간이 되자던가 하는 말을 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깊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그걸 하기가 쉽지 않다. 부모님께 반항하는 것과 부모님과는 독립된 인간으로 사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그걸 표면적으로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님같은 누군가가 너자신보다 내가 너를 더 잘알고 있다고 말할 때 그들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자기 스스로의 숨겨진 욕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