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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다.

by 격암(강국진) 2023. 1. 29.

23.1.29

세상에는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억울한 사연이 참 많다. 이를 잘 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는 아이들의 세계다. 철없는 아이들은 자기들의 말과 행동이 어느 정도의 일인지를 알만큼 세상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 자유라던가, 그냥 장난이라던가 그도 아니면 그저 원래 그건 당연한거 아니냐는 식으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 어리고 미숙한 그들은 인간의 유한함을 잘 들어낸다. 그걸 어느 정도 인지하는 어른들은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세계와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 많다. 아이들의 폭행은 그저 장난이고, 아이들의 추행도 장난이며, 아이들의 절도도 장난이고, 아이들의 폭언도 장난이다. 애들 장난가지고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라는 말은 세상에 참 많다. 만약에 똑같은 일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엄중한 처벌을 받을 것이 뻔한데 말이다. 예를 들어 가끔 교실에서 선생님에게 폭언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여선생의 치마속을 들여다보는 식의 일을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듣는다. 만약 그런 일을 대학 강의실에서 하면 어떨까? 그게 장난이라고 넘어갈 리가없다. 여교수의 치마속을 촬영하려고 하는 대학생이 퇴학당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당연히 사법처리 될 것이다. 그런데 불과 그것보다 몇년 어린 학생들이 그런 일을 하면 사회는 갑자기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고3의 세계와 대학교 1학년의 세계는 그래서 너무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기본적 이유는 인간의 유한함때문이다. 입장바꿔 생각할 줄도 모르고 자기 문제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다. 그런데 유독 그런 문제가 심한 사람들이 몇명만 있으면 그 집단 전체가 고생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운좋은게 물론 아니다. 사람은 많고 사연은 다양하며 더구나 성숙하게 자기 문제를 풀어갈 줄도 모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이거야 어느 정도 어쩔 수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사는데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이 아닌가. 인간이 무지하고 감정적이며 무책임한 거야 수천년전부터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격리때문에 한층 심각해 진다. 어른도 어른 나름이기는 하지만 어른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사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어른들의 상식을 흡수하기 마련이다. 물론 어른들의 영향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못난 짓, 추한 짓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보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이 얼마든지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상식들이 억압이고 악습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부정적으로만 말하자면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격리된 후 '자유롭게' 혼자 커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아이는 어른들을 보면서 상식 즉 세상 사는 법을 배운다. 뭐가 허용되고 뭐가 허용되지 않는지, 어느 정도가 지켜야 할 선인지를 배운다. 인사하는 예절이며 식사하는 예절, 옷을 입고 담배피고 자기 주변을 정돈하며 책임지는 예절을 배운다. 그 지식이야 말로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쳐서 만들어 낸 삶의 지혜이며 문화다. 게다가 아이들은 결국 자라서 그 어른들의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꾸 어른들의 세계에서 분리된다. 과거를 되돌아 보면 점점 더 그래왔다. 아이들이 입시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어른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어지는데 점점 더 빨리 입시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추세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유치원부터 입시교육에 들어가는 것같다. 영어유치원같은 말도 안되는 기관이 세상에 많다. 한국에서 살 아이들이 한국보다 미국에 더 익숙해질 판이다. 또한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지, 장례식이나 결혼식 같은델 돌아다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장례식이나 결혼식만큼 교육적인 곳도 없다. 장례식이 없이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 볼 것이며 결혼식은 성인으로서의 독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사다. 어른들끼리 가족모임을 하는데 아이들을 데려가는 일은 요즘 아주 드물다.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은 학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우리 가족이라는 세계 바깥을 보는 일이 더 드물어 졌다. 우리 가족에서는 당연한게 다른 가족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힘들다. 이웃과도 만나지 않는 것이 요즘 추세니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자기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날 시간이 없다. 그러니 노인이 된다는 것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다. 이것들은 전부 분리고 격리다. 

 

이렇게 분리되어 작은 세계에서 성장한 아이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내팽겨쳐 두는 것은 인종과 언어와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어느 날 갑자기 같이 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미국의 인디언과 유럽 사람들이 만나면 무슨 일을 했던가? 인종청소다. 어떤 신적인 존재가 그걸 '애들 장난'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다면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그리고 그게 어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학교의 선생님은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지식을 파는 소매상이다. 또 하나는 삶의 모델로서,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다. 과거에는 전통에 따라 선생님들이 스승처럼 행동하고 대접받는 일이 많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입버릇처럼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반드시 수업중에 선생님의 말을 잘 들으라는 뜻이 아니고 그게 뭐가 되건 선생님에게 잘 복종하라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삶의 태도 자체를 배운다고 여겨졌다. 학교와 교실은 선생님의 세계이며 학생들은 선생님의 질서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물론 그래서 나쁜 일도 많았다. 부모가 그러하듯이 변태같은 선생, 폭력적인 선생은 어디나 있었다. 

 

하지만 나쁜 질서보다 대개는 무질서가 더 나쁘다. 선생보다 더 무책임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학교선생이 그냥 지식 소매상, 샐러리맨 정도로 여겨지는 일이 많다. 동사무소 직원같달까. 오히려 입시를 강조하는 세상에서 학원선생이야 말로 롤모델인 것처럼 여겨진다. 학원선생님에게는 절대 복종해야 하지만 학교선생은 내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그런 존재가 된 것같다. 교권추락은 결국 아이들의 격리를 완벽한 것으로 만든다. 학교 바깥의 세계와 아이들이 분리될 뿐만 아니라 그 학교안의 세계조차 이제는 어른들과 연결될 고리가 약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직접적 접촉보다는 만화나 영화, 인터넷 컨텐츠같은 것으로 세상을 보고 삶을 배운다. 자기 동네도 벗어나 본 적없으면서 세계 여행 다 한 것같이 말하고 행동한다. 티비 연애 프로그램 같은 데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세상 상식인 줄 아는 것은 세상이 전부 나이트 클럽 같은 곳인 줄 아는 것과 다를게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무지에 확신을 더하니 이제 비극이 벌어질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이러니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일이 계속 벌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현실속에서 두 가지만 지적하고 이 글을 마칠까 싶다. 첫째는 그래서 우리는 뭘 해야 할까하는 것이다. 나의 결론은 아이들을 외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 학생들의 세계는 융합되어야 하며 요즘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갇혀서 환상의 세계만 보고 크다가 갑자기 진짜 세계로 내보내도 되는 때가 아니다. 교과서만 보고 나만 보고 살면 그게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찍 부터 세상에 나가서 일도하고, 어른들과 놀기도 해야 한다. 대인 접촉이 필요하다. 아이들을 아이들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들을 그냥 성인처럼 취급해야 한다. 이 말은 대접을 해주고 의무도 가지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할까봐 어른들이 계속 싸고돌고 감싸지 말아야 한다. 공부바보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공부만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아이들의 비율은 어차피 매우 한정적이다. 

 

또 하나의 측면은 오히려 이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제까지의 내용들을 보면서 성인들이라면 이것은 교육에 대한 것이고 아이들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소위 어른들의 세계를 한번 보라. 어른들의 세계는 잘 돌아가고 있고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경우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격리된 바보들의 왕국이 어른들의 세계에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어딘가에 격리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해자일 확률이 크다. 당신은 어른 세계의 학폭가해자같은 사람일 수 있다. 물론 그 폭력은 훨씬 더 미묘하고 은밀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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