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결혼과 가족의 의미

by 격암(강국진) 2023. 9. 13.

22.9.13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옛날 영화가 있다. 당대에는 아주 유명했던 영화지만 이제 나온지가 25년이 되고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보지 못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 옛날 사랑 영화를 보다 보니 요즘 사람들은 결혼과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 한가지 오해를 하는 일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요즘 젊은이들은 참 안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세상에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넘쳐나고 가족이 주는 억압이 지긋지긋하다는 말도 많다. 그런 주장이나 의견이 일 리가 없는 것은 아니며 각자의 삶은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30년이나 50년전쯤의 사람들은 그럼 사랑에 넘쳐서 결혼을 하고, 가족애가 넘쳐서 아이들을 키웠을까? 형편이 좋아서 결혼하고 애도 낳았을까? 이런 생각도 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과거 사람들은 애정도 가족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하지만 형편은 당연히 지금 이상으로 좋지 않았다. 요즘에 잘 언급되지 않고 요즘 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잊혀지고 있는 것은 오히려 과거 세대의 절망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혼자라면 너무 외롭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다면 그래도 두렵고 무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같다. 나이든 세대가 젊은이들만 보면 너도 짝을 찾아야 할텐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결혼하고 나서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그들의 삶이 편했기 때문은 아니다. 혼자가 된다는 시커먼 공포가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짝이 있으면, 그래도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가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있기에 어른들은 결혼하지 못한 청년들을 걱정하고는 했던 것이다. 결혼에 대한 과거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혼자서는 너무나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근거해 있다. 

 

그렇다면 결혼을 잘 하지 않는 요즘,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요즘은 어떨까? 인간은 혼자서는 불완전하기에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뤄야 한다는 주장은 요즘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요즘 사람들은 별로 혼자서도 불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을 안하는 것같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시장이 발달한 요즘은 예전에는 가정이 있어야만 누릴 수 있었던 것을 시장서비스로 누릴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사회공동체가 발달하니 가족공동체가 주는 잇점들이 꼭 절실하지 않아졌달까. 예를 들어 식사만해도 그렇다. 과거에는 혼자 사는 사람의 식사해결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외식산업이 별로 발전하질 않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런 걸까? 그래서 요즘은 인간은 혼자서도 완전한 걸까? 물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사정을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데도 나는 능력이 없기에 결혼을 하지 못하고, 심지어 연애도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뭔가를 착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능력이 있기에 결혼을 하는게 아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이다. 능력이 있어서 우리 함께 호화로운 삶을 누려보자고 결혼을 하는게 아니라 기댈 사람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두렵고 무서운 세상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보자는 것이 결혼이다. 아마 당장이라도 한반도에 전쟁이 나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다면 결혼이 급증할 것이다. 그러니 전세금이 없거나 결혼식 비용이 없어서 결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인 것이다. 눈을 낮춰서 누구하고라도 결혼하겠다는 태도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마탄 왕자나 공주를 기다리며 그런 사람이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과거 세대의 눈에는 꿈같은 직장이 아니면 아예 취업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과도 같은 것처럼 들린다. 그들에게 결혼은 사치나 소비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거세대와는 달리 요즘에는 결혼은 억압이고 족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듭 말하지만 그런 의견이 꼭 틀린 것이 아니고 과거 세대의 생각도 꼭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세대의 주장도 종종 한가지를 빼먹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결혼이 족쇄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뭔가 다른 곳에 의지할 데가 있으니까 그런 팔자좋은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아이처럼 기댈 수 있는 부모가 가장 흔한 예일 것이다. 옛날 세대의 어른들은 아이를 결혼시키는 시점을 아이에 대한 책임을 그만 지는 순간으로 삼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그들의 자식들을 빨리 결혼시키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제 늙어가는 자신들이 누굴 책임져 줄 수 없으니 너도 빨리 가정을 이뤄서 살라는 것이다. 나 아니라도 누군가가 너를 돌봐줄 사람이 있으니 이제는 좀 잊고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누군가가 정말로 고독하다면 그들은 연애나 결혼을 족쇄이고 억압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목말라 죽을 것같은 사람이 수돗물은 몸에 안좋으니 정수기를 찾겠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한가한 소리다. 

 

이 글을 결혼에 대한 찬양이나 비하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만 결혼의 의미와 인간의 완전성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서 지나치게 낭만적 사랑이야기가 많이 보여져서 요즘은 결혼이나 육아가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누려볼 수 있는 사치쯤으로만 여겨지는 일이 많은 것같다. 내가 말한 이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 지나치게 잊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는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비혼주의자들이나, 형편이 안되니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다는 사람들은 정말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들일까? 그렇다고 한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은 고독을 감내하고 살 수 있을만한 재정적, 정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착각하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거부하고 있다. 직장이 주는 가치와 의미만 보지 가족 관계가 주는 가치와 의미는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어린애로 계속 살겠다고 떼를 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40이 되어도 부모가 옷을 골라주고 반찬을 가져다주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좋은 직장에서 돈도 많이 벌고 그 돈을 쓰면서 세계여행도 다니고 좋은 집도 구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과는 다른 것도 있다. 그건 그들이 진짜 선택이란 걸 하고, 진짜 책임이란 걸 져봤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누군가의 등뒤에 숨어서 진짜 고독한 자기만의 판단을 해본 적이 없을 수 있다. 진짜 책임이란 걸 져 본 적도 없고, 져볼 생각도 없었을 수 있다. 

 

아버지가 이재용이나 일론 머스크처럼 재벌이어서 돈은 얼마든지 있으면 그래서 호화롭게 살 수 있으면 흰머리가 생기고 주름진 나이가 될때까지 누군가의 아이처럼 보호받으면서 살아도 정말 가치있고 좋은 삶일까? 단 한번도 진짜 선택과 진짜 책임이란 걸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은 계속 어린애로 산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사라지면 그들은 갑자기 큰 위험에 쳐하게 된다. 부모에게 매달리다가 그 부모가 죽고 40이나 50에 고아가 되면 그들은 겉으로만 근사할 뿐 속으로는 그저 어린애인 사람으로 남는다. 이들은 치명적 잘못을 저지르게 될 수 있다. 둘째는 객관적으로 그들이 뭘 누렸는가에 상관없이 그들은 진짜 인생을 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호화판 음식을 먹어도 그 메뉴를 내가 선택하지 못할 때 그것이 계속 즐거운 식사일까? 내 모든 성공이 남탓일 때 내가 나에 대한 자존감을 가질 수가 있을까? 내가 성취감을 누릴 수가 있을까? 고작해야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선민의식같은 걸 가지며 평생을 사는게 정말 즐겁고 가치있는 삶일까? 

 

결혼이 비참한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결혼에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너무 자신만만해 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혼자서는 불완전하다는 전래되는 교훈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 무엇일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은 시커먼 고독과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나 결혼이 무슨 사업파트너를 구하는 것같을 수는 없지만 사랑과 인생에 대한 고민이 전혀 별개인 것일 때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사랑과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사치가 아니다. 인생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가볍게 시작할 것도 아니지만 가볍게 포기할 것도 아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