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22 윤리나 법은 한 사회가 가지는 규칙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회를 효율적으로 돌아가게 해서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즉 모두가 윤리적일 때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것이다. 아무도 줄을 안서고, 누구나 도둑질을 하고, 누구나 공공장소에서 소음공해, 흡연공해로 주변 사람을 괴롭힌다면 그 사회가 지옥으로 변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있다. 노예에게도 윤리가 있을까? 노예제가 없는 요즘 내가 말하는 노예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특히 경제적인 사정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문제는 완벽하게 윤리적이고 법을 지키며 살 방법이 없다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도둑이 많은 동네에 산다고 해보자. 그런 곳에서 사람들이 자꾸 당신의 신발을 훔쳐간다. 이렇다고 해도 신발을 도둑맞지 않도록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상당히 형편이 좋은 사람의 답에 불과하다. 어떻게 해도 도둑질을 막기 어렵고, 도둑을 맞았을 때 조심하지 못한 자기만 원망하면 되는 사람은 도둑질이 드물고 주변 사람들이 도둑질에 대해 엄격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형편이 안좋은 곳은 어떤가? 물론 우선은 도둑질을 맞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도둑질 당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니 결국 나도 훔쳐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동네에서 가장 바보가 된다. 모두가 새치기를 하는 데 나만 새치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결국에는 문제가 생긴다. 이럴 때 '아 새치기 하는 사람이 문제야. 너는 아무 잘못도 없어.' 이렇게 사람들이 말할 것같은가? 적어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새치기가 흔한 곳에서는 이유가 뭐가되건 아무 일도 못하고 손해만 보는 당신이 바보취급을 받는다. 사람들은 새치기 하는 사람을 비난하지만 그렇게 끝까지 비난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들 자신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도 이따금은 도둑질을 하고 새치기를 한다. 그러니까 그런 일에 끝까지 화를 내거나 따지는 사람이 마음이 좁은 것이고, 그런 일을 늘상 당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문제인 것이다. 그는 세상 사는 법을 모르며 일머리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현실 사회는 완벽한 무질서와 질서의 중간 어디에 있고, 같은 사회라고 해도 장소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 문화는 다르다. 어디도 완벽은 없으며 대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법을 강조하고 질서를 지키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들은 오늘 빵을 도둑질 맞아도 먹을 빵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당장 도둑질로 자신의 손해를 메꿀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질서가 있는 쪽이 그들의 이익을 올리기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도 물론 도덕이나 준법정신따위 잊어버릴 수 있는 곳에 가면 그렇게 한다. 이들은 말하자면 큰 도둑이다. 그들이 질서를 좋아하는 것은 그래야 그들의 재산이나 특권을 지키기 좋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말하는 어려운 사람들 즉 노예들은 오늘 손해를 보면 이유가 뭐가 되든 당장 생존의 위기에 몰린다. 해고가 되거나 무리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아이가 굶거나 가족이 파괴될 수도 있다. 이런 구도때문에 종종 큰 도둑들은 작은 도둑들에게 너희들은 윤리의식도 준법의식도 없으니 짐승같다, 그래서 그렇게 사는 거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삶의 일반적 조건에 불과하다. 이런 말이 가난하면 도둑질을 해도 죄가 없는 것이고, 부자이면 다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 하나의 개인으로 가면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바보취급을 해도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사는 사람은 세상 어디나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사회는 하나로 뭉쳐져서 돌아가는 것이다. 법과 처벌이 있어서 세상이 돌아가고, 고매한 규칙을 열심히 외워서 실천하기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스스로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똑똑함이란 이 글에서 말하는 문맥에서 보면 허무한데가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똑똑하다. 예를 들어 감옥에서 살아남는 법을 잘 아는 사람은 분명 감옥안에서는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옥바깥의 세상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감옥바깥에서의 삶도 있을거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반드시 똑똑한 말이 아닐 수 있다. 똑똑한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준다. 그러나 그 조언은 알고 보면 노예의 조언이고 감옥에 갇힌 죄수의 조언일 수 있다. 고정된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우리는 열심히 살고 스스로와 주변 사람에게 적어도 이따금은 인심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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