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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결혼과 육아는 정말 미친 짓일까?

by 격암(강국진) 2023. 12. 21.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다. 그리고 그 두아이는 이미 20대의 어른으로 자라나서 더이상 내가 키운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내가 과거를 돌아보면 결혼과 육아만큼 내 인생에 힘든 일이 있었나 싶은 면이 있다. 제일 쉬운 것이 돈계산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돈만 생각하더라도 그걸 지금 내가 가지고 있으면 훨씬 경제적으로 쉽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런 돈계산은 정말 작은 어려움에 불과하다. 아이들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설사 내가 이재용이나 일론 머스크처럼 부자라고 하더라도 쉬울 수 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아이쪽에서는 충분하지 못하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나와 나의 아내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육아에 썼던가? 어찌보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몸을 잘라서 새로운 몸을 만드는 작업처럼 느껴진다. 즉 분명히 내 인생의 무시할 수 없을 만한 부분이 아이를 키우면서 잘라져 나가게 되었다. 

 

살기가 쉽지 않아서 육아와 결혼이 점점 드물어지는 오늘날 이런 이야기는 더욱 더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결혼과 육아는 미친 짓이라는 말이 세상에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굉장히 전문화되어져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매우 빨리 어떤 특이한 환경속에서만 이뤄지게 된다. 제일 쉽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전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공급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의식주는 백년이나 이백년전에 집에서 스스로 만들어 소비하던 시절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매우 매우 전문화된 일만을 반복하며 살게 되기 쉽다. 조선 시대에 스승이 된다는 것은 제자에게 모든 것에 대해서 가르치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선생이 된다는 것은 아주 전문화된 분야의 전문화된 지식을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의미한다. 회사에서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전문화가 덜 되었던 과거에는 삶이 온전한 하나였다면 오늘날에는 극도의 전문화속에서 삶이 쪼개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여가 시간을 잘쓰는 일이 아주 중요한 이유는 그런 자유시간이 없이는 인간이 살 수가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맛집에 가고 여행을 하고 티비를 보고 쇼핑을 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독서를 하는 등의 여러가지 여가 활동이 없이는 현대인의 삶은 마치 의자에 앉아 특정한 손가락만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것같은 단조로움에 빠지게 된다. 만나게 되는 사람도 지극히 편파적이다. 그만큼 모든 것이 전문화되었고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그런 환경에서 살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능좋은 부품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지나치게 연마되고 있다. 취업하기 전에 그리고 취업활동 시간까지 합치면 수십년간 공부만 한다. 이미 이것이 정상이 아니지만 취업해도 상황은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진다. 경쟁만하고, 성공하기 위해 자기를 깍아만 대는 사람은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 

 

돌아보면 이렇게 되기 쉬운 내 삶을 강제로 확장한 것이 바로 결혼과 육아였다. 결혼을 하면 부부싸움도 하게 되지만 어쨌건 나는 나라는 개인의 삶을 확장하게 된다. 처가도 생긴다. 게다가 부모가 되면 육아 과정을 통해서 사회와 만나게 된다. 아이는 사회 공동체를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다. 그리고 부모는, 적어도 어느 정도라도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는 부모는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 어릴 적에 고민했던 일들을 다시 꺼집어내서 인생을 복기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뭐가 아쉬웠었는지, 내가 가졌던 질문들이 뭐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결혼과 육아를 무조건 권하지는 않는다.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결혼하는 것은 특히 나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는 마치 건강관리를 위해 하는 운동과 비슷하다. 오늘 바쁘고 피곤한데 운동할 시간과 에너지가 어디있는가라고 말하지만 매일 매일을 편하게 지내다보면 나중에는 몸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오늘, 이번 달, 올해만 생각하면 결혼과 육아는 미친 짓이지만 장기적인 의미에서는 편한 것만 찾는 것이 미친 짓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반드시 결혼과 육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몇일 여행가는 것과 그곳에서 사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듯 남의 인생들을 간접경험으로 구경만 하는 것으로는 인생은 정말로 확장되지 않는다. 나는 앞에서 현대인에게 취미와 레져생활이 필수적이라고 말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대개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결혼이나 육아가 줄 수 있는 것같은 인생의 확장없이는 우리는 어쩌면 깨달을 수도 있었던 아주 소중한 인생의 진리를 구경도 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으면 인생을 헛살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결혼과 육아는 무조건 미친 짓은 아니다. 요즘은 하도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이런 이야기도 새삼 스럽지만 내 개인적 체험을 뒤돌아봐도 무조건 미친짓은 아니며 특히 현대인의 삶을 생각하면 더 그런 것같다. 가족은 가장 무거운 짐이고 때로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쳐지나가는 인연들은 그만큼 무의미하기도 하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실패는 확정적이 된다. 결혼과 육아도 비슷한데가 있다. 분명 실패도 할 것이고, 모든 시도가 성공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패하면 큰 일이다라는 생각으로 쉬운 길로만 다니면 거기에도 생기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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