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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젊고 지친 사람들에게

내 미래가 결정되었다고 느낄 때

by 격암(강국진) 2023. 4. 23.

23.4.23

뉴튼의 고전역학은 널리 퍼진 결정론에 대해 책임이 좀 있다. 그것이 미래가 이미 현재에 의해서 결정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의지란 없으며 미래란 이미 현재에 의해 결정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란 역시 결정되어져 있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카오스 이론이라던가 양자역학이라던가 3체문제같은 것을 인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온 세계를 한꺼 번에 본다라는 말의 함정이다.

 

온 우주를 한꺼 번에 본다라는 것은 그저 상상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뉴튼은 홀로 진공속을 나르는 단 한개의 질점에서 고전역학을 시작했고 거기서 그리 멀리 가지도 못했다. 다시 말해 온 우주는 커녕 아주 작은 세계를 연구한 셈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뉴튼의 고전역학 시스템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뉴튼의 고전역학은 학문의 모범이 되어 많은 다른 학문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리학과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을 혼동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사람들이 진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미래나 자기 회사, 자기 나라의 미래이고 그런 시스템에서 미래가 결정되어져 있냐는 질문을 던질 때 이 온 우주를 한꺼번에 다 본다라는 말의 함정에 종종 빠진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고려하고 있는 것은 어떤 근사적인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은 그 시스템의 바깥쪽의 영향이 없다는 고립계의 가정을 가진다. 그리고 나서 법칙과 현재 상황으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하는 것이 고전역학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인들의 연구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경제학이 있을 것이다. 경제학을 하면서 화성이나 안드로메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지구의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구의 일이라고 해도 사실 많은 것들이 경제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무시된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고전역학처럼 미분방정식을 등장시키고  경제의 법칙과 현재 상황으로 미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경제학이 아니라고 해도, 미분 방정식이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때마다 고전역학적 사고를 호출한다. 이런 저런 동역학과 법칙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문화이든 개인의 미래이든 직장내의 정치든 마찬가지다. 

 

이 상황을 바둑으로 이야기해 보자. 바둑에는 바둑의 규칙이 있고 현재 상황이 있다. 만약 바둑판위에 검정돌이 가득한데 흰돌이 얼마 없다면 그런 바둑을 이기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결정되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노력하면 그런 바둑도 이길 수 있을 지 모른다. 여기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바둑의 규칙이고 현재의 상황은 바둑판위의 상황이며 완전한 결정론을 부정하는 자유도는 바둑을 두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으로 게임에 들어 온다. 하지만 그건 사실 작은 자유다. 

 

이같은 상황에서 결정론이란 이미 다 진 바둑 노력해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의미한다. 당신이 지독히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면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 직원으로 취직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할 때 거의 같은 의미를 우리는 가지고 있다. 즉 사회게임이 패색이 짙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론에 있어서 결정적인 구멍은 바로 바둑판이 온세상이라고 믿는 것이다. 당신은 어쩌면 너무나 현재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이 바둑을 이길 가능성이 없을 수 있다. 누군가가 와서 미래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니 열심히 노력하라라고 한다면 그 말도 옳겠지만 사실 그건 기적을 바라는 일에 가까운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바둑을 지면 어떤가? 그 바둑이 진짜 온세상이 아닌 것이다. 바둑판에서 시선을 떼고 일어나 보면 그 바둑은 겨우 바둑 한판에 지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지금 취미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며 직장에서는 총망받는 직원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직장게임에서는 당신은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며 바둑 한판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우리가 특정 게임을 온 세상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없는 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야 하지만 때로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온 세계가 아니라 그저 작은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도 있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 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가족이란 작은 세계다. 그 작은 세계는 직장일 수도, 지역 사회일 수도, 한국일 수도, 어떤 학문의 세계이거나 특정 직업의 세계일 수도 있다.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중첩된 세계가 있고 각자의 세계는 각자의 법칙과 상황이 있다. 그렇다고 할 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게임을 해야 한다. 남이 선택한 게임속에서 이미 진 게임을 이기려고 하면서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당신의 현재상태가 좋지 않다면 우리는 그걸 좋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다. 사실 언제나 원하면 게임을 그만 두거나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기회를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게임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면 우리는 전혀 다른 게임을 하게 될 수도 있으며 우리가 지금 온 세상이라고 여기는 것이 진짜 온 세상이 아니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면 우린 우울한 결정론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할 수 없는 당신의 상황이란 정말 변할 수 없을 수 있지만 게임이 바뀌면 그 의미는 크게 바뀌게 된다.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마라토너의 세계는 절망적이다. 그건 절대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바뀌면 그것의 의미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진짜 온 세상을 보는 사람은 없다. 인간의 유한함이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고민하고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럭저럭 참을 수 있는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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