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주변에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일단 젊다는 것은 무지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생활이 뭔가로 저절로 가득 차는 시기다. 부모의 간섭만 해도 귀찮기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년을 넘어서면 내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되고 부모님 세대는 이제 돌아가시거나 매우 노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정도 나이가 되면 삶이란 저절로 굴러가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루 하루 버텨내는 것같을 때가 많다.
물론 개인차는 크다. 예를 들어 요즘의 나를 보면 상대적이지만 나는 그래도 상당히 낙천적이고 독립적이며 과거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내가 보는 가깝고 먼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다. 친구가 없으면 외로워 하고 친구가 있으면 괴로워 하며 자기만의 시간을 쓸 목적이 없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스스로 어떤 흥미를 찾아 나서는 동력이 떨어진 것같은 사람들이 많다. 책도 영화도 관심이 없고 그렇다고 요리나 여행도 이제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러니 쓸쓸해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라 답답하게 느끼게 되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나이들어 혼자 살고 있는 어머니 이시다. 그분은 84세의 나이에 비하면 누구보다 더 건강하고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사시는 분이다. 학구열도 있고, 나이들어 배운 민요로 나중에는 강사도 하시고 공연도 하셨다. 요즘에는 재봉일에 취미를 붙이고 계신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늘상 보면 쓸쓸해 보인다. 그 나이에 도달한 주변 분들이 더욱 쓸쓸하게 살기에 산다는 게 본래 그렇다는 말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다. 고독하지 않다는 것은 그냥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만약 인간이 그런 존재였다면 어린 아이같은 상태에서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저런 직업과 취미를 가지고 가정도 가지면서 삶을 살아가지만 그리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어주는 것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며 서로가 서로를 걱정해 주기는 하지만 타인의 고독을 누군가가 대신해서 없애준다는 것은 그저 잠깐의 일이다. 각자는 각자의 인생이 있고, 나의 문제는 남이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 나의 흥미, 나의 의미는 스스로 찾고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평생 한번 먹어보는 것이 꿈인 포도주를 마신다고 하더라도 나에게는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이러저러하게 하면 흥분되고 의미있는 시간으로 인생을 채울 수 있다는 메뉴얼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때로 아내의 고독을 느끼고 부모의 고독을 느끼고 자식의 고독을 느껴도 이런 저런 부질없이 반복되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 사람들 중에는 타인을 나의 로또로 삼아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남편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던가 자식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인데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그런 사고 방식은 애초부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건 마치 성공이라는 술을 먹고 취해서 평생 살아보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점점 더 많은 양의 술이 있어야 취기가 유지되는 것일 뿐더러 그렇게 인생을 온통 낭비하고 나면 술에 깨는 것이 더 두려워진다. 방학이 끝나가는데 숙제를 하나도 안한 초등학생의 심정같아진다. 체면이나 관행 따위에 휘둘리고 그저 몰려다니는 물고기떼처럼 우우하고 남들 따라 다니기만 하면서 이런 저런 일들에 코가 꿰인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들면 평생 뭐하나 내 생각으로 한 것이 없고 그저 쓸쓸한 것을 피해서 도망치고 휘둘리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게 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평생 직장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야근에 야근으로 지내다가 돈을 모아 은퇴후 여기저기에서 소비를 하면서 남들이 보기에 복받은 인생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 내실을 보면 그게 복받은 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20억짜리 아파트에 산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시골에 귀농해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삶이 너무 부러우면서도 그 아파트를 감옥처럼 벗어나지 못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
누구나 쓸쓸하다. 그걸 전제하고 말하자면 쓸쓸함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는 흥미를 가지고 할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냥 바쁜 것으로는 안된다. 의무로 하는 것도 부족하다. 의미와 흥미를 느끼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일은 때로 친구도 만들어 준다. 직장에 나가면 직장동료가 생기는 것처럼 뭔가를 하면 그것에 연관된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은 지극히 당연하고 간단한 것같지만 실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이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싶을 정도다.
우선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을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흥미 따위는 마음에서 솟아나지 않는다. 게다가 흥미로 시작한 일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의무가 생기게 되고 너무 바빠지기 쉽다. 그래서 절제와 성찰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걸 코가 꿰인다고 하는데 살면서 이리저리 일을 벌여서 코가 너무 많이 꿰이면 빚쟁이처럼 살게 된다. 이러면 흥미고 뭐고 생기기가 어렵다.
그리고 커다란 불운도 피해야 한다. 살다보면 큰 불행도 한두번은 혹은 그 이상은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꼭 그럴 때마다 그걸 피할 수 있다는 보장은 누구도 못한다. 아플수도 있고, 파산할 수도 있고, 가정이 깨질 수도 있다. 그러면 나의 호흡으로 산다는 일이 불가능하게 보일만큼 어려워진다.
다행히 어떤 사람들은 그런 걸 넘어서 꽤 오랜간 자신의 흥미에 따라서 뭔가를 추구하고 한두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여유가 있다. 더 살면 더 좋은 일이 있겠지만 그래도 인생이 전부 낭비된 것은 아니고 과거의 선택들에 대해 후회하는 일이 없어진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과거에 대해 후회만 가득하고, 내 인생이 전부 낭비된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일들은 흑백으로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한다고 구분할 일도 아니고, 각자가 각자의 인생을 짊어지고 전진할 뿐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그들을 응원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고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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