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23.11.12

인간의 행복은 오로지 내면에만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극한의 가난이나 고문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나는 그만큼이나 극한의 상황이 아니면 허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목숨을 잃는 희생을 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그런 고통과 희생이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 내면의 행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독재타도를 외치다가 희생한 사람도 아닌데 그럼 그럴 때 내면의 행복은 무엇인가? 그럴 때도 내면의 행복은 중요한가? 물론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내면의 행복을 찾는 것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인생의 가장 큰 보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수 많은 사람들이 이 내면의 행복을 찾지 못해서 자꾸 뭔가를 하려고 하고 그러다가 없는 문제를 만들어 내고 지옥처럼 사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여기는 문제가 생기고는 한다. 그들은 왠지 자신이 뭔가를 결핍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혹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갈망하지만 그런 탐욕이 결코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도박장안에서 도박을 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믿지만 진짜 인생은 도박장을 벗어난 그 바깥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겉으로 들어난 모습이 아니라 내부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겉의 모습만 보고 정반대의 판단을 한다. 겉으로 보기에 혹은 객관적 조건이 화려하면 그 사람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고 혹은 누군가의 삶을 그냥 외부적인 것만 따라해 보았더니 그거야 말로 지옥처럼 괴롭고 외로운 삶이었다면서 그런 삶에 행복은 없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꼭 종교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수도하는 스님이 내면의 행복을 얻어 조용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똑같이 밥먹고 일하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내본 비종교인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뭘 느끼겠는가? 아 정말 심심하다, 지옥같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내면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그건 분명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모두가 다 똑같은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내면의 행복은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는데 있고, 그렇게 되는 데에는 어떤 보편적인 질서와 연결된 자신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종교인이 아니지만 종교인이 내면의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은 바로 신이라고 불리는 보편 질서와 연결된 자신을 느끼면서 자신은 그 연결만 있으면 다른 어떤 것이 없이도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종교인으로서 내면의 행복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것도 물론 다 똑같은지는 모르겠고 이런 내면의 행복이란게 흑백으로 있다와 없다로 분명히 나눠지는 것도 아닌 것같다. 다만 나는 내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이런게 내면의 행복이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내가 청소년이거나 대학생이었던 시절에는 나는 항상 불안했다. 그 시절에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살곤 했었던 것만 봐도 이걸 알수 있다. 나는 스스로 아직 어떤 지위도 성취도 이룬 것이 없다고 느꼈고 그만큼 스스로가 무가치하게 느꼈다. 명예욕이라던가 연애를 잘하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식의 욕망도 넘쳐났지만 뭐하나 이룬 것이 없었다. 더 결정적으로는 나에게 이 사회와 이 세상은 너무나도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나는 마치 언제 깡패가 나타나서 나를 공격할 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며 길을 걷듯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내면의 행복에 가까운 것이 나타난 때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란 책을 여러번 읽다가 생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종종 추천해 왔지만 반드시 그것이 그 책만의 문제는 아닌 것같다. 나는 글을 쓰고 사색을 하면서 내가 뭘 불안해하고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지를 고민해 왔는데 그 책을 읽다가 나는 나의 생각이란 것을 보다 일목요연하게 알게 된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건 그 책에서 진리를 찾았다는 식의 느낌보다는 어느 순간 아 저자인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는 군요, 나는 이런 입장입니다라는 식으로 나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독서와 사색 그리고 글쓰기는 내면의 행복을 찾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도구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생각과 내 삶을 관조하는 시각에 도달하는 것같다.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불행한가? 왜 세상은 그렇게나 나에게 알 수 없는 곳이었으며 나는 왜 이제까지 이렇게 살았는가에 대해서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 이전과 이후의 세상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책을 읽을 때 그 사람의 의견을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입장과 비교를 하면서 이 사람은 이렇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그럼 많은 것이 보다 분명해 지고 이해가 더 쉬워진다. 나는 최근에 쓴 책의 서두에서 비교없이는 우리가 뭔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자를 남자와 비교해서 알게 되고, 일본을 한국과 비교해서 알게 되는 식이다. 이런 변화를 생각해 보면 결국 마음의 평화를 느끼게 되고, 세상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이유는 세상을 보면서 그걸 어디에 비교해야 하는가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건 물론 나 자신이다. 한국 사회는 왜 이럴까? 칸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직장에서 만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할까? 이런 질문들에 부딪힐 때 아무 근거없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고 보면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 나도 이런 고민이 있었지, 나의 입장은 이랬지라는 생각과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아니까 세상도 보이는 거랄까.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된다고 해서 정말 세상 모든 일을 다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전과 그 이후의 차이는 크다. 내 아내는 그래서 우리 남편이 어느 순간 변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독서를 아주 엄청나게 빠르게 하더란다. 그래서 전에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었는데 짧은 기간이 지나고 나자 자신은 읽지 못했던 고전을 읽은 사람이 되었더라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그 차이를 보자면 전에도 관심은 있었으나 고전을 읽어도 뭔가 머리만 복잡할 뿐 느끼는 것이 적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책이 이해가 잘 되는 것을 느꼈기에 읽게 된 것이다. 이때 다시 읽었던 책들 중에는 내가 유튜브로 설명을 올린 책들도 있다. 블랙스완이나 부분과 전체, 파인만의 물리학강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같은 책들이 그런 책들이다. 

 

그렇지만 내면의 행복이 반드시 어떤 지식에 대한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책에 빠져드는 일은 그냥 과거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확인을 하는 작업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외부와 어느 정도 동떨어진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직 못읽은 책이 엄청나지만 조급해지지 않는다. 나도 맛있는게 먹고 싶고, 좋은 옷이 좋고,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좋다. 하지만 그것에 코가 꿰여서 내면의 자유를 희생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루 하루를 대개 자신을 친구로 해서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아 이번에는 네가 그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사는 것이 행복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행복의 근원은 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외부의 조건은 그렇게 까지 중요하지는 않아서 관리만 어느 정도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한국은 좋은 곳이라 강도도 없고, 갑작스런 전쟁도 없으며, 은행이 갑자기 파산하는 일도 별로 없으니 행복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은 그럭저럭 지킬 수 있다. 아내와 데이트도 하고, 단풍구경이나 바다구경도 하고 이따금 책도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행복을 바깥에서 찾는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여행지를 가도 사람이 다르면 행복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 행복해 보이는 사람의 외부를 복제하려고 하는 것같다. 행복한 커플이 살았던 곳에 가서 나도 내 연인과 사진을 찍으면 나도 행복해 진다는 식이다. 행복한 가족이 살 것같은 집을 사면 행복한 가족이 될 것같고, 행복한 사람이 사는 스타일대로 직장을 구하고 차를 몰고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면 나도 행복할 것같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사실 다 비싸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대개 아주 뼈빠지게 일한다. 게다가 감당못할 약속도 자꾸 덜컥 덜컥 해버려서 그걸 지키느라 죽을 맛이다. 요즘에는 집투자가 자기를 행복하게 해줄거라고 영끌해서 집을 사서는 빚을 갚느라 매일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이것도 다 내면의 행복을 발견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내면의 행복을 발견하기 위한 첫걸음은 자기와 대화를 하는 것이다. 불교의 참선이나 기독교의 기도도 자기와의 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를 대화하면 재미있는 상대로 발견한 사람은 그만큼의 자유를 얻는다. 행복해 지기 위해 바깥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