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10
불법도박장이나 조폭같은 단체를 생각해 보자. 그런 단체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에 해로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런 단체의 내부에서 그 시스템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것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산다고 생각할 것이고, 세상은 본래 그런 것이지 자신이 어떤 악을 행한다는 생각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삶의 터전을 뒤흔드는 위협이 있다고 느낄 때에는 그들은 그것의 방어에 적극 나설 것이다. 나라가 나에게 뭘 해줬고, 인류가 나에게 뭘 해줬다는 것인가 나는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해도, 인류가 멸망한다고 해도 이 도박장을 지킨다고 하거나 이 조폭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나올지 모른다. 그들은 그 조직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그 조직의 바깥은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보편성이다. 더 크고 보편적인 조직이나 공동체나 질서를 지칭하는 개념들을 그 작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보편성이 그들의 작은 세계를 뒤흔든다고만 생각해서 그들은 그 보편성이 지칭하는 세계를 적으로 악으로 받아들인다. 제 아무리 많은 보살핌과 혜택을 받아도 그들은 그것이 달콤한 속임수라고만 생각하며 반대로 지독히 착취당하고 멸시당해도 그들이 지금 소속감을 느끼는 그 집단에 대한 집착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에 대한 또다른 좋은 예는 남녀관계일 것이다. 어떤 커플에서는 남자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만 어떤 남녀관계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착취한다. 누구나 그 커플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로도 명백한 경우는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그럴까. 우리는 왜 그 작은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작게 만드는가?
무엇보다 먼저 거론해야 할 것은 인간의 유한함일 것이다. 인간은 본래 아무 것도 모르고 세상에 태어난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작았으니 마음이 작은 것은 정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가 지나치면 우리는 살수가 없다. 하늘로 뛰어 오를 용기가 없는 새는 죽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손실에 대해 무감각한 인간, 자기가 누구에게 의지해서 살고 있는지를 모르는 인간은 타인들에 의해 제거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보편성 더 큰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존을 위해서다. 너는 죽고 나만 살아야 겠다는 식이라면 결국은 모두가 죽고 죽이는 소모적인 다툼이 계속 될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그 유한성은 언제나 어떤 악과 고통을 낳는다. 그래서 인간은 그걸 초월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렇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작은 마음과 싸워서 그것을 더 크게 만들려고 했던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침팬지의 삶을 떠나 문명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것이 아닌가.
우리의 마음이 작은 두번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읽지 않고 쓰지 않으며 보지 않기 때문이다. 좁쌀처럼 작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걸 키우려고 하지 않으니 작은게 당연하다. 게으름 때문에 혹은 일상의 바쁨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날마다 같은 일을 하다보면 우리의 마음은 더 커질 수 없다. 커지기는 커녕 오히려 작아진다. 겨우 얻었던 몇몇 귀중한 경험들도 잊혀진다. 하던대로 사는 것이 삶의 전부라면 우리는 아직도 초원에서 수렵채집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하고 생각하려고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읽고 쓰며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그런 직간접적인 체험이 있어야 우리는 일상을 초월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을 때 우리는 그저 돈쓰는 기계나 똥을 만드는 기계가 되고 만다. 우리가 보편적인 관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걸 체험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람직한 국가나 사회란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은 있는 사람이나 누리는 사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의무다. 왜냐면 그것이 없이는 국가 공동체라는 것도 점점 분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학생들과 노인들의 문화적 소외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시간도 돈도 없는 젊은이들이 공부에 바뻐서 열정도 감동도 없는 문제풀이 기계가 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매국노나 범죄자를 키우는 일이 된다. 노인들이 문화적으로 소외되게 되면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쫒아갈 수 없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반드시 세상을 자신들이 아는 세상으로 되돌리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사실상 몰락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이 누구에게 고통을 주는가 하는 것같은 것은 이미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은 왜 사는가?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나의 꿈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애써 일상속에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 해도 질문하기 조차 멈추면 우리는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10년이나 20년쯤 뒤의 어느날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을 때 깜짝 놀라게 될 수 있다. 너무도 작고 둔감해진 나머지 그 세월이 그냥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속의 돼지마냥 먹고 자는 세월만 보냈을 뿐 내가 뭘 한게 있던가 생각해 보면 그저 세상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밀려 다녔을 뿐이다. 세상을 이길 수는 없었다고 해도 삶을 향한 내 취향이나 의지가 작동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인간의 삶이란 쾌락을 위한 게 아니다. 쾌락 자체가 비윤리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쾌락은 효과가 줄어들고 장기적으로는 별 득이 없다. 더 좋은 걸 먹고, 더 좋은 옷을 입는 것은 익숙해지면 아무 것도 아니며 점점 더 사치의 정도를 늘리지 않으면 별로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고 확실한 일상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배움과 수도를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즉 자신을 키우는, 마음을 키우는 과정을 계속해야 행복을 지킬 수 있다. 그 과정의 기본은 결국 더 많이 보고 느끼고 고민하는 것이다. 귀찮다고 그걸 포기하면 어느새 늘어난 일상의 쓰레기더미가 언젠가는 우리를 덮칠 것이다. 작은 마음의 세계에 갇혀서 헤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짐승이 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고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건 속으로는 행복할 수가 없다. 인간의 유한성은 악과 고통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작은 마지막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성장은 용기를 요구한다. 배우고자 하는 생각이 있어도 두려움은 자꾸 우리를 우리가 익숙한 세상으로 되돌려 보낸다. 배움은 힘들고 느리다. 세상이 무서워서 굴이나 어미의 품속으로 숨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보이는 행동이다. 세상은 무한하고 인간은 유한하다. 겁이 나는 것이 정상이고 겁을 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행동은 그 두려움을 더욱 더 증폭시킨다. 그건 바로 서두르는 것이다. 멈춰서서 자신을 살피고 생각에 잠기고 삶을 단순하게 하면서 한발 한발 걸어가는게 아니라 점점 더 빨리 뭔가를 하려고 한다. 하나 하기도 어려운데 열가지를 한꺼번에 하려고 하고, 나중에 뒤죽박죽이 되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점점 더 빨리 일을 하려고 한다. 마치 방청소를 하고 있는데 청소를 하면 할 수록 방이 더 어질러지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남이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 것이 두려워서 계속 우리는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멋진 아이디어를 내면 낼 수록 우리의 삶은 늪에 빠진 것처럼 된다. 우리는 지름길을 찾으려고 한다. 천천히 하나씩 해서는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을 것같다.
마음을 키우는 일은 대개 혁명같은 특징을 지닌다. 즉 준비는 날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마음이 달라진다. 혁명을 하자면 용기와 집중이 필요하다. 그냥 이것저것 아무 거나 조금씩 건드리면서 결정적 비약을 하지 않아서는 마음은 언제나 제자리가 된다. 넓게 배우는 일도 필요하지만 좁게 어떤 질문에 집중하는 일도 필요하다. 왜 나는 이러저러한 문제를 가지는가 하는 특정한 질문에 집중할 때 우리는 어느 순간 돌파구를 찾고 그렇게 돌파구를 찾고 보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용기를 내지 않을 때 마음은 언제나 작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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