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비를 보다가 영국의 성장과 몰락이라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세계 패권이라는 것에 대해서 손이 가는대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봅니다.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습니다. 유럽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영국은 세계에서 영국에게 침략당해 보지 않은 나라가 22개국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세계적인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하려고 할 때 뉴턴과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영국은 뉴턴의 등장으로 확고하게 세계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렇게 기술적으로 선도한 결과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일어난 나라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고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즉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로 변화한 것이 영국이었고 이렇게 되자 영국은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지만 아직 근대인이 되지 못하고 근대국가가 되지 못한 세계의 다른 나라들은 크게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마치 수렵채집인들이 부족을 이루고 있는데 국가규모의 문명을 가진 사람들이 정복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 상황이었던 것이죠. 이런게 아니면 아프리카나 인도 정복은 인구 숫자를 생각했을 때 설명이 안됩니다.
이것이 철학과 교육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증기기관 같은 기술 하나의 문제였다면 다른 나라도 순식간에 영국을 따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술은 그 기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있을 때에만 힘을 발휘합니다. 결국 철학적으로 교육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은 영국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가를 보면서도 그걸 쉽사리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지 그게 한없이 걸린다는 뜻은 아니지요. 영국과 가까이 있었던 프랑스같은 유럽국가들은 차차 근대화의 철학, 과학의 철학을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도 제국이 되기 위해서 세계를 누비고 다녔죠. 세계는 작디 작은 영국 혼자서 독식하기에는 너무 컷으니까요.
그런데 느리지만 강력한 강자가 유럽에서 나타납니다. 그건 먼저 프랑스였지만 나중에는 독일이었죠. 독일은 유럽의 가난한 시골같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칸트이후 세계 철학의 중심은 독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과 문화의 중심도 독일이 된다는 뜻이죠. 그런데 독일이 철학적으로 산업적으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세계는 온통 영국이나 프랑스같은 나라가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는 해였는데 기술과 철학의 신흥강자는 독일이었으니까 힘의 불균형이 생길 수 밖에 없었죠. 19세기의 독일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예술가나 과학자는 다수가 독일인이었습니다. 아인쉬타인도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은 아니지만 전쟁이후 미국으로 피신하기 전까지는 독일 베르린 대학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즉 세계 과학의 중심이 확고하게 독일이었던 셈이죠. 암모니아 대량생산이나 로켓의 개발도 독일이 원조입니다. 핵분열을 처음 발견한 것도 독일인 오토한이었죠.
이런 힘의 불균형은 두번이나 폭발했고 그게 세계 1,2차 전쟁이었습니다. 나치나 히틀러를 옹호하고자하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지도자가 싸우자고 말하고 잔혹한 명령을 내렸을 때 왜 독일인들이 열광했는가 하는 겁니다. 이건 마치 숲이 말라있으니까 방화범이 큰 불을 낼 수 있었다는 것과 같은 겁니다.
영국의 제국화이후 세계를 두고 유럽이 전쟁을 치룰 때까지 여전히 다른 세계는 깨어나고 있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근대화가 단순히 기술 하나 지식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계를 두고 유럽에서 세계 대전이 벌어지는 도중에도 조선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은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했고 이들은 일본같은 후발주자들에게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조선은 다시 해방되었지만 호주의 원주민이나 미국의 원주민, 남미의 원주민은 이름도 남기지 못하거나 지금도 존재감이 없습니다. 마치 애초에 그 땅은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오키나와는 독립하지 못했고 북해도는 지금 가보면 마치 일본이 차지하기 전에는 무인도였던 것처럼 아무 역사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북해도는 한반도와 비슷할 정도의 크기의 땅인데 말입니다. 근대화된 인간의 눈에는 전근대적인 인간들은 그냥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인간이란 이미 근대화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전쟁의 승자는 지금와 돌아보면 결국 미국이고 소련이었습니다. 유럽은 과거의 전통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영국이고 프랑스과 독일이고 다 자기들 나라가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니 힘이 생기면 전쟁이 날 수 밖에 없었달까요. 이런 과거의 전통과 결별한 두 개의 나라가 미국과 소련입니다. 말하자면 위대한 귀족의 역사따위는 없으며 과학적 근거없는 권위따위는 없어야 하고 오직 이성에 기반해서 새 나라를 만들어 내자는 운동의 결과였던 셈입니다.
소련은 자유시장을 거부한 결과 미국과의 경쟁에서 졌습니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외친 결과 유럽의 주요한 인적 자원들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지요. 미국은 이민자를 통해 성장하고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달성했습니다. 핵폭탄을 가장 먼저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본래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유럽의 문화를 수입하는 동시에 그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비권위주의적인 자유의 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죠. 이런 과정에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이 발달하여 더이상 유럽의 철학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 큰 힘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외국의 권위에서 벗어나 자기 나름대로의 나라를 세울 정신적 자신감이 생긴 거죠.
이렇게 역사를 돌아보면 결국 세계 패권의 핵심은 기술과 철학과 문화이며 이들은 서로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철학을 만들고 철학이 기술을 만듭니다. 세계 패권국가가 몰락했던 이유는 성공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성공하면 그 나라들은 보수적이 됩니다. 기존의 제도나 관습이 영원히 옳은 답인 것처럼 개혁은 줄어들고 사람들은 더이상 학습에 열중하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 그들은 스스로의 기술과 철학을 배신하게 됩니다. 근대화나 과학혁명은 근거없는 전통을 근거없어 보이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국을 세우고, 복잡한 관료제를 만들고, 법을 실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천천히 변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가 새로운 국가가 드디어 문화적으로 철학적으로 기술적으로 비밀을 깨닫게 되면 위기가 오는 겁니다. 독일은 세계 패권국가가 되는데 실패했고 소련은 세계를 반쪽 이상차지한 적도 있었지만 몰락했으며 미국은 지금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어있지요.
미국의 패권도 안전하기만 했고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한 때는 미제가 세계를 뒤덮었지만 얼마후 일제가 세계를 뒤덮었고 지금은 중국제가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일본이 다음번 세계 패권국가가 될 것같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문화고 철학입니다. 일본은 정신적으로는 봉건국가가 권력 집중형 제국으로 바뀐 메이지 유신이후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세계 대전에 패배한 이후 민주공화국이 되었지만 그건 자의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의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혈연으로 대를 잇는 판입니다. 이런 나라가 제품 생산으로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을 수는 있지만 세계 패권을 쥘 수 있을리가 없지요.
지금의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아름답기만 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이나 미국이나 다 마찬가지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중국은 세계를 문화적으로 선도한 경우가 한번도 없습니다. 중국제가 싸서 쓰고 있을 뿐이지 사람들이 나도 중국인이 되야겠다도 믿게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일본보다도 영향력이 없습니다. 미국이 세계를 문화적으로 지배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르죠. 패권은 기술과 군사력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문화적 설득력이 없어서는 말이 안되는 겁니다. 중국이 유일한 세계 패권국가가 되는 세상에 사는게 미국 패권의 시대와 같은 거라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가 문화적 소수자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철학이나 문화의 의미가 하나 둘은 아니겠지만 그것들은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줍니다. 그러니까 너도 나도 그것에 참여하는 것이죠. 따라서 일본이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는게 혹은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게 미래 비전의 전부라면 그걸 세계인이 공감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보같은 일입니다. 소위 아메리칸 드림은 끝없는 발전으로 풍요한 세계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미국은 개방성을 강조하죠. 한국의 홍익인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국적에 상관없이 널리 이로운 일을 하자는 겁니다. 적어도 이정도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보편성, 일반성이 있어야지요.
그렇다면 남은 질문은 미국은 보수화되었고 미국은 이제 시대를 쫒아가지 못하는가 하는 것일 겁니다. 답은 그렇다입니다. 제가 보기엔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로 성장했지만 결코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장이 느려지면 나라가 분열할 것입니다. 미국의 주류문화는 백인문화였지만 그 백인의 숫자도 줄고 있습니다. 치안은 나빠지고 히스패닉과 아시아인의 숫자가 늘어납니다.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들어왔던 고급 인재의 영향력이 한계에 달했습니다. 저는 히스패닉이나 아시아인은 세계 패권을 잡을 수 없다는 인종차별적 시각을 가진게 아닙니다. 다만 세계를 이끌 문화적 철학적 힘이 지금의 미국에게 있는가 하는 겁니다.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이 지금 그걸 만들어 내고 있는가 하는 겁니다.
중국은 가망성이 없고 미국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국이 성장해서 세계 패권을 잡을거다같은 소리를 하고 싶지만 이런 말은 그 문장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한국이 세계 패권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세계인들이 모두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문화나 철학을 제안할 수는 있겠죠. 그렇게 되면 그때의 세계는 한국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그냥 세계인들의 세계일 겁니다. 그리고 권력이란 책임도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한국이 더 발전하자면 더 개방해야 하는데 개방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죠. 개방했는데도 자신을 지킬 수 있을만한 철학적 문화적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손님들이 들어와서 자기들끼리 싸우면서 한반도를 쓰레기통으로 만들겠지요.
다만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근대화가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으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가지게 했듯이 인공지능 시대의 비밀을 제대로 먼저 깨달은 나라가 나타난다면 비슷한 일이 또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들에게 지금의 우리는 수렵채집을 하는 원주민 따위로 보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세계를 뒤흔들 집단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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