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지 않던 넷플릭스의 스위트홈을 보고 있다. 나는 아쉬움을 많이 느꼈는데 그 아쉬움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한국은 SF와 판타지의 차이를 그리 크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작가와 감독들은 뭔가가 결핍되어 있어 보인다. 스위트홈의 원작 웹튠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거나 그 사람이 감독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왜 그게 말이 안되고 불가능할까? 그게 안되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판타지물의 정확한 정의는 없을 것이다. 사실이 아닌 것이 판타지라면 모든 픽션은 다 판타지일테니까 그렇다. 그래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그리고 한국의 드라마 도깨비같이 인기있었던 환타지물들을 보면 어느 정도 공통점이 들어나는 데 그것은 판타지물이 일종의 역사에 근거를 둔 신화물이라는 것이다. 판타지는 분명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 세상을 그린다. 하지만 그것이 대중과 아무런 접점이 없다면 그걸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고 게다가 재미도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서구 중세를 변형시키고 신화를 포함시키거나 한국의 신화같은 것을 빌려와서 사람들로 하여금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판타지다. 즉 판타지는 문화적 역사적 특징이 강하며 따라서 보수적 윤리나 감성을 자극하는 면이 강하다.
그런데 공상과학 즉 SF는 이와 다르다. 그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픽션이지만 SF물은 과학적 발전이 만들어 내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된다. 즉 지금 존재하는 기술들이 이대로 발전하면 혹은 어떤 기술적 위험성이 미래에는 현실이 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하는 것이 SF물의 기본적 흥미요소다. 그래서 SF는 극단적으로 이런 면을 강조할 때 거의 소설이라기 보다는 미래 예측에 가깝다. 모든 기술은 이미 있는 것이거나 금방 나올 예정인 것이고 SF는 그것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충격들을 예측하는 글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전제조건은 사실성이다. SF는 픽션이지만 미래에도 절대 깨질 것같지 않은 과학 법칙을 깨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과학적 예측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판타지물에서 질량보존의 법칙이나 물체의 속력이 빛의 속력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이 깨지는 것은 상관없다. 왜냐면 사실 판타지물의 세계는 사실상 정신의 세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유와 비유의 세계이다. 누군가의 등에서 날개가 생겨나서 하늘을 빛보다 빨리 날았다는 것은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리는 문학적인 표현일 수 있다. 달까지 날아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SF물에서는 별다른 설명없이 과학적 법칙이 한번이라도 무너지면 전체적인 이야기의 설득력이 확 떨어진다. 총알이 무한대로 나가는 권총같은 것이 SF에 나와서는 안되는 이유다. 그런 권총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어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요소의 존재가 허용되면 더이상 SF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누군가의 등에서 날개가 솟아나는 것이 과학적으로 절대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날개짓으로 인간의 무게를 들어올려서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한가라던가 진공 속을 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과학적 질문이 된다. 그런 걸 무시하면 SF적 측면이 무너지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판타지의 설득력은 인간의 정신과 이어져있고 SF의 설득력은 과학법칙이나 기술같은 현실적 요소에서 나온다. 판타지는 인간적 감정에 호소하고 SF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게임에 가깝다. 물론 둘은 서로 서로 이 두가지 요소를 공유하는 면이 있지만 인문학과 과학의 분열처럼 이 두 가지 요소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면 서로가 서로를 억누르게 된다. 판타지가 너무 과학적이 되면 판타지의 매력이 줄어들고 SF에 판타지 요소가 들어가면 SF의 매력이 사라진다. 로봇물과 판타지 혹은 무협의 세계와 서양 판타지물을 뒤섞는 이세계물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판타지와 SF의 정확한 의미를 따지고 어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가 엄밀하게 말해서 어느 쪽에 꼭 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재미이고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차이를 기억할 이유가 있는 것은 된장찌게에 마요네즈를 넣고 그라탕에 고추장을 넣는 식의 행위는 테러이기 때문이다. 즉 무조건 양쪽의 것을 마음대로 섞으면 효과가 서로 감쇄되어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된다. 장르가 생겨난 것은 어떤 장치가 독자의 몰입을 돕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과거지향적이고 신화적인 판타지와 미래지향적이고 과학적인 SF를 뒤섞는 것에 무신경하면 문제가 생긴다. 하려면 아주 잘해야 한다.
스위트홈은 SF물의 정체성이 강하다. 인간의 변이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과학적 요소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다. 즉 왜 인간이 이렇게 변하는가하는데 있어서 그냥 각각의 사람들의 영혼속에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신화적 존재들이 있어서 그것이 어떤 계기로 깨어나게 되었다는 식의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 않다. 그래서 스위트홈에는 과학자가 등장하고, 실험이 등장하고, 백신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병이 옮을까봐 걱정한다. 그리고 1부는 공간을 건물 내부로 한정했고 각각의 괴물을 잘 묘사한다. 이 공간안에서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괴물들을 공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1부의 핵심적 스토리 설계다. 사람들은 기관총도 미사일도 탱크도 없지만 괴물들도 대개 이성이 없거나 약점이 있다.
그런데 스위트홈의 원작은 웹튠이고 이것은 스위트홈의 1부만 그렇다. 2,3부는 창작이라고 들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아쉽다. 2,3부는 1부의 장점을 여지없이 망가뜨리고 있다. 감독도 작가도 SF를 우습게 안다는 느낌조차 든다. 많은 사람들이 1부는 재미있지만 2,3부는 그만 못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2,3부에서는 게임의 법칙이 거의 없다. 쓸데없어 보일적으로 자세한 사실적 묘사라고 하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SF는 설득력을 가진다. 괴물을 죽일 때 그냥 죽이는게 아니라 화학의 법칙에 따라 물리의 법칙에 따라 죽일 필요가 있다. 그런 걸 무시하고 그냥 거대한 전투씬만 집어넣으면 스위트홈같은 이야기는 엉망이 된다.
그런데 1부가 끝나고 나면 이제 게임의 공간이 무제한으로 펼쳐진다. 인간의 무기는 군대수준이 되었지만 1부와는 다르게 각각의 괴물의 묘사가 너무 대충이다. 그냥 기괴하게 생기면 괴물인가? X맨도 각자의 능력을 분명히 말하고 그것에 제한을 둔다. 1부에서는 하나 하나의 괴물들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다. 강점이 뭔지 약점이 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공략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상상가능하다. 그런데 스위트홈 2,3부에서는 괴물들이 그냥 대충이다. 무섭게만 생겼고 능력이 뭔지 모르겠다. 1부가 SF적인 측면이 강한 이유는 게임의 법칙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괴물들이 넘쳐나지만 뒤집어 말하면 괴물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냥 전염병같은 존재일 뿐이다.
이러니까 2,3부에서는 게임의 법칙이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작가는 자꾸 신파를 넣는다. 엄마와 아이 괴물 에피소드 같은 것이나 인간의 정신을 회복하는 괴물같은 것이 그렇다. 결국 작가는 SF를 무너뜨리고 판타지로 가고 있다. 이쯤되면 이제 이야기는 SF가 아니라 전설의 고향이 된다. 무섭게 생긴 괴물들은 그냥 귀신들일 뿐이다. 그리고 괴물들은 정체성이 없기에 스토리도 맘대로다. 즉 총한방에 죽을 수도 있고 대포를 맞아도 죽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니 괴물들의 싸움에 몰입이 될 리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윤리적 정신적 각성이다. 그런데 SF로 출발한 드라마를 이렇게 바꾸면 안된다. 도깨비가 스파이더맨이 되는게 아니다.
신화와 과학이 아름답게 만나는 드라마도 가능할까? 그건 나는 모른다. 하지만 스위트홈이 그런 드라마는 아니다. 잘쌓아올린 1부의 SF적 요소를 무원칙하게 깨뜨리는 2,3부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캐릭터를 좀 더 잘 연구하고 시나리오를 썼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게임의 법칙이 좀 더 분명해 지도록 괴물 캐릭터의 숫자를 줄이고 공간을 제한하는 1부의 원칙을 반복하는게 더 좋았을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비판이 있었겠지만 지금의 시나리오는 좋지 않다. 아이디어가 없을 때 자꾸 외부인물을 집어넣어 분량만 늘린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임의 법칙은 분명해야 한다. 그것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드라마나 소설의 설정자체가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이래서는 SF적 요소가 들어간 드라마는 잘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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