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달간은 요즘 유행하는 내란 우울증에 걸렸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정상은 아닙니다. 모르지는 않았지만 내란과 내란 이후 들어나는 내란 옹호자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다보면 우울해 집니다. 그리고 아직도 윤석렬의 지지율이 15니 30이니 하는 숫자가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해묵은 질문이 돌아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저들은 언제 변할까하는 질문입니다. 20세기의 군사독재를 겪고도 김대중 노무현이 부족하다며 이명박을 뽑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을 겪고도 박근혜를 뽑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박근혜를 겪고도 윤석렬을 뽑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죠. 대선에서 이길 정도로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 윤석렬 내란을 보고 얼마나 반성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쉽게 반성하고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될거라면 이미 이명박을 찍지 않았어야 하고 박근혜를 찍지 않았어야 합니다.
물론 사람의 생각들이 모두 같아지는 때는 오지 말아야 하고 오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같은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같은 상식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압도적 다수의 사람들이 그래야 겠지요. 모든 축구선수가 서로 다르지만 그래도 축구를 한다는 의식을 공유해야 축구라는 게임이 성립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의 한국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가지일것이고 단 하나의 표현이 그걸 전부 말해줄 수도 없지만 저는 지금의 한국안에 있는 분열을 전근대와 근대의 분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근대인이 되지 못한 전근대인들이 혹은 왕당파가 근대인 혹은 민주주의자와 싸우는 것이 지금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법치입니다. 지금의 윤석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법치가 뭔지 전혀 모르거나 그걸 무시하고 있습니다. 법치국가란 지켜야 할 뭔가라기 보다는 그저 이용하고 왜곡해서 내 이익을 챙길 시스템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한없이 잔혹하죠. 법치를 무너뜨리고 헌법도 무시합니다. 법시스템이 한계가 있어도 그걸 이용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법의 약점을 그 한계까지 공격해서 결국은 법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은 결국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질서를 당연하게 여기며 법치주의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거나 그걸 이해하는데 실패합니다.
이런 상황이 바뀔 수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어려운 문제입니다. 체제의 변화는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수렵채집을 하면서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합시다. 그 마을을 도시로 바꾸고 문명화된 곳으로 바꾸면 그 마을 전체로 보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냥꾼은 자기가 쓸모없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동네 깡패는 치안이 좋아지면 자기가 있을 곳이 없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전근대의 주민은 근대화가 진행되면 자신들은 힘이 빠진다는 걸 느낍니다. 지금 윤석렬을 지지하는 집단은 대대로 호의호식해서 부모덕에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교육 수준이 낮은 노인층 그것도 아니면 인생은 실력순이 아니라 줄서기 순이라면서 누구 빽으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들은 바로 전근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투명해지고 평등해지고 안전해지면 자신이 살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것을 그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느낍니다.
그들은 꼭 그들에게 더 잘해주는 집단에게 투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은 복지증대를 주장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노인들이 오히려 복지에 반대하는 보수를 지지하는 것을 기이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노인 계층의 교육수준이 낮은 탓에 오해가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전혀 아닙니다. 노인들은 자신이 익숙하던 세상을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들이 싫은 겁니다. 노인들은 그런 세상이 뭐가 문제냐고 주장하고 싶은 겁니다. 그들이 익숙한 세상이란 바로 1970년대쯤이나 그 이전의 후진국이니 그게 바람직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은 싫은 겁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겪고도 아직도 보수 정권을 찍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이 나와도 민주당을 찍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군사 구데타를 일으킨 윤석렬을 여전히 지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회적 분열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사회가 부유해질 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듭니다. 그 비용이 너무 커서 나라가 망할 지경입니다. 이명박 박근혜등 지난 4반세기의 보수 대통령들은 형편없는 경제 사회 외교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저 왕당파이자 전근대인들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윤석렬 정권이 3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뭘 했나를 생각해 보면 이제는 나라가 망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방, 경제, 교육, 과학, 의료, 외교등 망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 내전상태를 유지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결국 핵심은 계몽에 있고, 사람이 사람을 바꾸는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죠.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보여주는 진실이 그들을 저절로 변하게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석렬 정권을 겪으면 앞으로는 보수 정권 지지 하지 않겠지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 그 정도로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화를 좀 해서 설득을 하면 그들이 계몽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쓸모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들은 서로 서로 대화도 합니다. 그리고 온갖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서 서로를 세뇌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훌룡한 책도 있겠지만 정말 쓰레기 같은 거짓으로 만들어진 책도 있는데 책을 많이 보지 않는 그들은 주로 그런 책을 봅니다.
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는 민주화 혹은 근대화 진영의 반성도 필요합니다. 즉 근대화 세력도 -보수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근대화세력이라고 부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어쨌건 이 글에서 말하는 근대화세력은 민주화세력을 말합니다.- 자신들의 미래 비전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근대화 세력이라고 내가 부르는 집단은 당연히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몸통을 이루는 사람들은 결국 직장인들 혹은 노동자들입니다. 1960년대 이후 태어나서 교육을 많이 받고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하거나 이제 은퇴를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가 우리나라 민주화 세력의 몸통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시스템을 개선하고, 시스템 내의 규칙을 지키고 하는 일에서 뛰어나서 실로 근대인다운 특징을 지녔지만 모두가 그 시스템 안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시스템이라는게 크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같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직장다니고 적금도 붓고 연금도 붓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두 열심히 살고 반칙 안하면 좋은 세상 와야 한다고 여기지만 세상이 그렇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모두가 취직을 잘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더이상 대기업이 사람을 많이 뽑지도 않고 앞으로는 더 그럴테니까요. 세상은 이미 20세기 때와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 운동이 정말 이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왜냐면 후진국때는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의 노동자가 있었지만 이제 사회는 훨씬 더 복잡해졌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차 노조의 이익 주장이 소비자로서 전체 한국인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도 있고, 주주로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전태일은 위대한 분이지만 전태일 정신이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더이상 노동집약적인 신발공장같은 걸로 돈을 버는 나라가 아니니까요. 청년들이 그런 걸 하고 싶어하는 나라도 아니고 말입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같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하고 사람들이 다양하니 그건 찾기가 엄청나게 어렵다는 겁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아예 그런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망각되는 일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현미경같은 좁은 시야로 자기 주변만 보면서 내 권리, 내 이익만 생각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나는 시험봐서 합격했으니 잘먹고 잘사는 것은 내 권리고 떨어진 사람은 내 알바 아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계속 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책없는 상황에 빠집니다. 그리고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떨어진 사람들에게도 할 말은 있으니까요. 또 어쨌건 누구나 살아갈 권리는 있으니까요. 내가 못난 걸 인정해도 죽으라고 하면 누가 순순히 죽겠습니까? 합격과 불합격, 1등과 10등의 차이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적당한 걸까요?
개혁은 아주 어렵습니다. 옳은 방향이 뭔지를 알기도 어렵고, 그걸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하는 건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방향도 알겠고 납득도 했다고 해도 그걸 시행하는 건 더 어렵죠. 예를 들어 한국의 고질병중 하나가 수도권집중인데 노무현 정부때 행정수도를 세종시에 건설하려고 하니까 헌법재판관들이 그걸 위헌이라고 말합니다. 관습헌법 운운하면서 말입니다. 21세기에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윤석렬만큼은 아니지만 이 헌재의 판결은 참으로 큰 충격을 주더군요. 이 사회가 얼마나 개혁하기 어려운가를 실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아마 단일 재판으로 이정도로 한국에 피해를 준 재판도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윤석렬 탄핵을 심판하는 지금의 헌재도 100% 못믿습니다.
저는 여전히 낡은 방식의 계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하고, 책을 출판하고, 문화컨텐츠를 통해 새시대를 알리는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대중이 확고하게 민주화, 근대화의 시대에 적응하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것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노인들을 위한 학교를 만들어 교육을 복지정책으로 실시한다던가 하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한 것같습니다. 이젠 어린이를 위한 의무교육이 아니라 노인을 위한 의무교육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왜냐면 세상이 워낙 빠르게 바뀌니까요. 학습은 평생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는데 저교육층이 많은 노인들을 그저 노인정같은 곳에서 한가하게 시간만 쓰게 해서는 시대에 자꾸 뒤쳐지기만 하니까요. 그들의 인생이 견딜만하게 만들자면 그들도 더 문화교육이 필요하고, 스마트폰이나 PC의 사용법도 익혀야 합니다. 그들도 재산관리하는 법도 알아야 합니다. 자식에게만 의지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사는게 사는 것같아질 것이고 그들도 민주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뭔지를 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같은 일은 이미 추진되고 있지만 좀 더 시간과 노력과 투자가 필요한 것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야기해 보자면 더 기본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노인뿐만 아니라 사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거나 의지가 없습니다. 기초적인 태도부터가 문제입니다. 사람은 왜 공부할까요? 이렇게 질문하면 요즘 사람들은 돈벌려고 공부한다고 생각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돈만 많으면 공부따위 안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태도는 공부의 목적이 수도를 하는 것이라던가 인생의 의미를 알기 위한 것 혹은 제대로 된 인간이 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과는 극히 다른 것입니다. 배가 부르면 돼지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애초에 공부라는 것의 의미를 부정합니다.
공부란 곧 돈벌려는 거라면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한 사람들은 정말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기 쉽겠죠. 이런다고 내가 새로 취직할 것도 아니고 공부는 뭐하려고 하냐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책을 읽고 같은 드라마를 봐도 아는 것이 다르면 느끼는 것이 다릅니다. 창의적인 사람과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은 같은 환경에서도 삶이 전혀 다릅니다. 그러니까 시한부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공부는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면 깨달으면 남은 시간의 의미도 다르니까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은 이유는 이래서 그렇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짐승같이 살면서 길게 살기만 해서는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괴롭기만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공부는 이만하면 되었고 문제는 내가 돈이 없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취업도 돈을 벌기 위한 거니까 결국 문제는 돈이라고 생각하죠. 이것이 결국 노인들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유불도의 정신에 따라서 공부를 도를 구하는 일로 생각하는 전통을 가졌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공부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비도 좋고 돈도 좋지만 내적인 빈곤은 그걸 다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요즘은 80, 100까지 사는 사람이 많은데 돈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에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다니고 비싼 아파트에 비싼 음식을 즐기며 살아도 내적인 빈곤속에서는 그게 얼마 못갑니다. 사는게 지옥같아집니다. 가진 돈이 싸움의 원인이 되고 감옥이 됩니다. 그러다가 그냥 죽어버리는 사람도 많지만 다행히 조금 깨우치면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충격받기 좋습니다.
지금의 한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되자면 우리는 물질주의에서 한발 물러서는게 필요합니다. 공부란 인간이 되기 위한 수단을 얻는 것이기도 합니다. 태어나면 그냥 인간이 되는게 아닙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걸 잊고 이젠 이런 생각도 안하는 것같습니다. 결국 이 내란 사태의 배후에는 이런 저질의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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