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에 대해 생각하면서 노인교육 나아가 공부의 목적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저는 도달했었습니다. 그것이 내란 우울증에 대한 생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내가 쓴 것이었죠. 오늘은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AI 대중화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인물은 세종대왕입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어떤 업적보다도 한글창제라는 업적때문에 빛납니다. 모두들 알듯이 훈민정음해례는 나랏말쌈이 중국과 달라라는 말로 시작하는데 이는 한글 창제의 목적이 명백히 대중 계몽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외에도 농사직설이나 향약집성방같은 농업책, 의학책을 만들고 측우기를 만들어 농사일에 참고하게 했습니다. 즉 다양하게 대중 계몽에 힘쓴 것입니다. 이같은 건 누구나 알지만 그가 1397년에 태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은 종종 망각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함께 생각하면 세종의 이야기는 정말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유럽처럼 르네상스 이후 계속 발전되지 못했을 뿐이지 세종시대에는 조선이 유럽을 앞서고 있는 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기는 세계의 어느 누구도 대중계몽을 위해 쉬운 글자를 만들자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때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사실상 지구상에서 인위적으로 문자를 만들어 쓰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죠. 구텐베르크는 세종 치세 끝무렵인 1440년에야 금속활자 인쇄술을 개발합니다. 측우기처럼 강수량을 측정하겠다는 생각은 세종보다 200년이나 유럽에서 늦습니다. 유럽에서 계몽주의시대라고 불리는 시대 자체가 세종보다 거의 300년 뒤의 시대입니다. 별거 아닌것 같아도 정확한 측정이라는 발상은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세종을 생각하면 우리는 한가지에 주목하게 되는데 그는 계몽을 위해 대중에게 더 많이 공부하라고 하는 대신에 쉬운 글자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공부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재능이건 환경이건 모두가 공부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분야에서 평생 공부에 매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노력의 결과 어떤 성취를 이뤘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중 교육과 과학기술적 성과사이에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분야는 대중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대중이 전부 양자컴퓨터를 만드는 법이나 AI를 만드는 법을 이해할 수는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자 렌지를 쓰는 사람이 전자 렌지의 원리를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사용법을 알면 됩니다. 하지만 대중 계몽을 위한 공부라던가 철학이라던가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인문학도 과학처럼 중간은 몰라도 되고 결론만 알면 될까요? 그런게 인문학공부고 철학공부일 수 가 있을 까요? 그런게 대중 계몽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세종의 고민과 비슷한 것에 빠지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만으로 대중은 계몽될 수 없습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는 하겠지만 모두가 그럴 환경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AI 대중화는 한글 보급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AI가 뭐든지 정답을 말하는 만능의 기계가 아니라고 해도 그것의 박식함은 인간을 이미 능가합니다. 그리고 물론 참을성도 그렇습니다. AI는 개인의 질문에 대해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AI가 좀 더 발전하고 AI가 좀 더 신뢰를 얻으면 AI는 대중에게 이전에는 제공할 수 없었던 교육 서비스,정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AI 대중화가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네비를 생각해 봅시다. 요즘 인기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대중화된 AI는 네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비가 한국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면 2000년쯤에는 고가의 장비로 소개되었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는 2007년경부터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때에 아이나비나 파인드라이브 같은 전문 네비 기업도 나타났습니다. 2010년 이후에는 네비의 대중화가 본격적이 되었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네비없이 운전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인식이 퍼졌으며 택시 운전사들도 네비를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네비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비를 불신했고 특히 택시기사들은 자신의 길찾기 능력을 네비보다 우수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실시간 교통정보를 반영한 길찾기가 등장하고 우회로를 찾아주는 기능이 등장하자 이제는 네비 없는 택시가 없게 되었고 손님도 네비를 사용해서 목적지에 가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0년이상의 시간이 걸려서 네비는 대중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딘가에서 만나자고 할 때 길을 설명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다 네비를 찍고 올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AI 대중화는 이것보다는 더 빠를것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오늘날 네비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그냥 길을 잘 못찾는 사람인 정도지만 10년후에는 AI를 못쓰는 사람은 훨씬 더 광범위한 분야에서 무능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은행앱은 은행지점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못쓰는 노인들은 더더욱 곤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AI 에이전트가 많은 일을 편리하고 빠르게 처리해 주는 시대에도 여전히 AI를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문맹이나 마찬가지랄까.
그러므로 우리는 AI 대중화를 한글보급이나 의무교육 보급과 같은 수준에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는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풍요로운 정신세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더 많은 지식과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AI 대중화같은 경제적 사회적 환경의 변화가 없이 이제까지 하던 것처럼 해서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그런 식으로 대중 계몽을 적어도 백년정도는 해왔기 때문입니다. AI 대중화가 없이는 우리는 그냥 여전히 봉건시대나 종교시대의 정신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발목잡히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겁니다. AI는 새로운 미디어 입니다. AI 대중화는 TV의 대중화나 인터넷의 보급이상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세종대왕께서 가르쳐주시듯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자고 말하는 대신에 쉽게 공부할 수단을 보급해야 합니다. 그게 AI 입니다.
'주제별 글모음 > 생활에 대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란 우울증에 대한 생각 (0) | 2025.01.12 |
---|---|
지키고 사는 일의 어려움 2 (4) | 2024.12.02 |
지키면서 산다는 일의 어려움 (0) | 2024.11.28 |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대로 살게 된다. (1) | 2024.09.03 |
공간에 대한 존중 (0) | 2024.08.0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