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또 일어났는가?** 보수 정치권에서 두 명의 대통령이 연이어 탄핵당하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이 현상은 **한국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일부는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자질, 혹은 그를 선택한 유권자의 판단을 문제 삼는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표면적이다. 대선에서 승리할 만큼의 대중적 지지를 얻은 정치인이 왜 헌법과 충돌하며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는가? 이는 단순한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의 깊은 균열**을 보여주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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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 vs 전근대: 정치 갈등의 숨은 구조
오늘날의 정치적 대립은 흔히 ‘진보 대 보수’로 요약되지만, 보다 정확히 보자면 **‘근대화 세력’과 ‘전근대 세력’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근대화 세력은 민주주의, 법치, 평등 같은 보편적 원칙에 기반해 사회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들은 인간의 이성과 규칙의 정당성을 믿으며, 공화국이라는 체제를 지탱하는 원리를 따르고자 한다.
반면 전근대 세력은 학연, 혈연, 인맥 등의 비공식적 질서에 익숙하며, 특정 종교 세력이나 가부장적 권위에 기반한 도덕 체계와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근대화된 시스템이 자신들의 경험과 가치, 지위를 위협한다고 느낀다.
윤석열 정부의 실패는 단순한 통치 실패가 아니라, **전근대적 정치 문화가 헌법 질서와 충돌한 결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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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전근대적 메시지가 다시 힘을 얻는가?
21세기에, 그것도 정보화 사회에서 전근대적 감성과 질서가 대중적 호응을 얻는 현실은 기이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한국이 겪은 비정상적으로 빠른 근대화의 부작용**이다.
식민지, 전쟁, 산업화, 민주화까지 한 세기 안에 압축된 한국의 현대사는 많은 이들에게 **‘변화를 수용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빠른 개혁은 기존 질서에서 권위를 누리던 이들에게 손실을 강요했고, 이는 심리적·문화적 저항으로 되돌아왔다.
개인의 경험 속에서 억울함은 비합리적이라 해도 강력하다. 예컨대, 군대에서 관행적으로 누리던 권위가 개혁으로 무력화되었을 때, 당사자는 정의보다 박탈감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은 전근대적 질서를 향한 향수와 결합해 정치적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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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의 이면: 정당하지만 피로한 시스템
근대화는 전근대를 극복하는 진보적 방향이지만, 그 자체로도 **새로운 문제와 피로를 축적**한다.
법과 제도는 점점 복잡해지고, 시민은 규칙을 따라야 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압도당한다. 입시, 부동산, 복지, 노동 같은 분야에서 규칙은 세분화되었지만, 그만큼 **불공정에 대한 인식과 불신도 깊어졌다.**
이 복잡성은 **젊은 세대와 노년층을 소외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시스템에 적응할 여력이 부족한 이들은, 오히려 단순하고 선명한 메시지에 끌린다.
“북한이 문제다”, “외세가 위협이다” 같은 전근대적 메시지는 이들에게 더 **직관적이고 안전한 설명**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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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려진 성장, 무거워진 시스템, 붕괴되는 소통
이 모든 문제의 저변에는 **느려진 성장과 복잡해진 시스템**, 그리고 **공통 언어의 상실**이 있다.
예전처럼 성장의 과실로 개혁에 대한 보상을 줄 수 없는 시대에, 제도 변화는 갈등만을 남긴다. 이해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사회 구성원들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공공의 대화는 무너지고, **공동체는 자기 신체 내부조차 소통하지 못하는 존재처럼** 변해간다. 정치적 분열, 세대 갈등, 문화 전쟁은 이 모든 것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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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화 이후를 묻기 위한 질문
윤석열의 파면은 반가운 진전이지만, 이 사건을 낳은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죄가 아니라 질문이다.**
> ▪ 왜 전근대적 메시지가 여전히 공감받는가?
> ▪ 근대화된 사회는 왜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는가?
> ▪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자유와 보편 규칙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진지하게 다가설 수 있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설득력 있는 정치와 더 포용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기술로서의 AI**는 우리가 놓쳐선 안 될 희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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