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 답은 여러가지지만 그 중의 하나는 작가다. 앞으로 더 책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다 보니 나는 이제까지 3권의 책을 출판했으니 이젠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작가인가 작가가 아닌가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며 작가라고 해서 특정한 주제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쓴 3권의 책을 보다 보니 나의 경우에는 나는 계속 같은 주제로 글을 쓰게 된다고 느낀다. 표면적으로 그것이 소설인지, AI에 대한 책인지, 청소년용 책인지 성인용 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나의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아닐까? 이렇다고 할 때 그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란 부분은 중요하게 느껴진다.
책들을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내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지능이나 합리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결국 지능이나 판단은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 이 모든 이야기들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지나치게 윤리적인 분야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야 하는 살아있는 사람이니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답이 뭐건 어떤 도덕책에 나올 잔소리같은 것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책이나 AI 책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뜻밖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쉽게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책들은 모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책이다.
지난 번에는 한 출판사에 가서 차 대접을 받다가 뜻밖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이 뭐냐는 대단한 질문을 받았다. 그건 일종의 기습공격같은 것이었는데 나는 출판사에 가서 무슨 인생론강의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때의 대화가 그런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방금전까지는 슈퍼에 가서 장볼 이야기를 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데 인생의 의미가 뭔데요라는 식으로 질문을 받는 셈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뭐였을까? 나는 그게 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답은 이랬다. 결국 내 주변을 잘 살피고 나를 잘 펴서 그때 그때 적당한 답을 고르는 것이 사는 일의 핵심이다. 솔직히 말하면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렇게 말했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유년기부터 고민하게 했던 사는 일에 대한 답은 결국 이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질문이 있으면 그에 대한 일반적이고 객관적이 답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적당한 답을 고르지 못하게 한다.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온갖 상관없는 일까지 끌어들여서 판단을 하려고 하다보니 답이 없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남이 하는 걸 따라하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동네에서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일이 상식적이었는데 여기서는 상식이 다르다같은 일에 대해 당황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면 반대로 한 군데에서 조금 머물렀다고 해서 너무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 된다. 이 동네의 상식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고 나는 더 이상이 이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우리를 좁은 세상에 갇히게 만든다. 그렇게 되면 바깥세상은 몰상식한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AI가 왜 이런 것과 관련이 될까? 그건 결국 우리가 지능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지능적인가 하는 질문은 결국 AI 분야의 핵심적 질문이며 물리학을 하던 내가 인공지능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도 거기에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살아있는 우리는 누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질문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던지거나 이런 질문에 관한 남의 의견을 듣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억압을 느끼게 된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그런 허황된 질문따위는 던지지 말라고 누군가가 우리 뒷통수를 때릴 것같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 답은 뻔한거 아냐?하고 말이다. 그 답이 뻔한데 왜 나는 모를까?
나는 흔한 답들이 틀렸거나 많이 오염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답이든 중요한 것은 그것에 의미를 담는 문맥이다. 그런데 그 문맥이 이제는 잊혀졌다. 또 너무 이상한 말들이 당연시 되어진다. 예를 들어 자아를 찾는 것은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어떤 문맥에서는 좋은 말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턱도 없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오래된 질문을 계속 던질 필요가 있다. 이미 그 답이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답의 진짜 의미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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