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연결의 미디어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같은 AI의 특성은 최근 MCP, A2A등 AI의 연결 방식이 발달함에 따라 더 명확해 지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시스템들을 서로 연결해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AI이며 이러한 연결은 AI나 인간의 능력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슈퍼지능을 가진 AI란 단일한 A가 아니라 특수목적을 위한 AI들을 포함해서 수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된 결과로 출현할 것이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그래서 그 결과 인간은 어떻게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새로운 감각기관을 가진 존재 혹은 새로운 신피질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문장은 인간의 몸에 기계를 직접 연결하는 사이보그화를 연상시키며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그런 경우도 있을테지만 그보다는 인간과 AI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AI가 인간의 일부인 것처럼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은 사실 이미 AI의 등장 이전에도 있었다. 그것이 문자다. 인간은 문자를 습득함으로해서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생명체가 된다. 더 복잡한 언어를 발달시켰고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잠재적으로 내 머릿속에 들어올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발달한 AI 환경속에서 그 AI를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능력을 가질 것이다. 우리가 지금 문자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면서 살듯이 미래의 우리는 AI를 우리의 일부로 여기면서 살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대면의 중요성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보자. 왜 백번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좋다고 할까? 이 말은 결국 직접적인 감각경험보다 더 정확한 정보의 출처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해서 많이 듣는다거나 전화나 이멜로 소통하는 것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왜 그럴까? 왜냐면 2차적이고 간접적인 정보는 결국 현실을 왜곡 축소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만나서 악수도하고 얼굴도 봐야 더 신뢰를 하게 된다. 그 신뢰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내 감각신호에 대한 신뢰이다.
신뢰나 정보는 아주 중요하다. 일자리를 만들고, 관계를 만들며, 기회를 만든다. 그래서 도시화의 이유가 되었다.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모여사는 것이 좋다. 그래야 서로 서로 보고 말하면서 정보를 얻고 새로운 일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이 모여 살자면 비싼 댓가가 필요하다. 세포가 모여서 만들어진 우리 몸이 그런 것처럼 도시도 여러가지 물자 시스템이 필요하고 관리가 필요하다. 먹을 것도 있어야 하고 물도 공급되어야 하며, 집도 있어야 하고, 오폐수도 제대로 처리되어야한다. 그러니까 산업혁명 이전에는 도시화가 지금처럼은 진행되지 않았다. 수백년전의 기술을 가지고 지금의 서울처럼 사람이 모여살면 서울이 지옥이 될 것이다. 서울같은 대도시는 끊임없이 물자가 보급되고 오폐수를 빼내는 등 관리업무를 하지 않으면 금방 지옥이 된다.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던 것 같은 대지진이 나면 지진으로 당장 물자 문제가 발생한다. 자칫하면 연료도 마실물도 음식도 없어서 굶어죽을 수 있다. 도시화는 교통의 발달, 물류의 발달, 도시 시스템의 발달등 여러가지 시스템의 발달의 결과 가능해 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땅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모여살면 땅값도 비싸지는데 왜 모여살까? 그건 그만큼 직접대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건 그만큼 인간이 자신의 감각정보를 믿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TV 보도로는 현실을 다 알 수 없다. 편지로는 누군가를 깊고 빠르게 사귈 수도 없다. 우리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그 사람의 얼굴과 옷차림새와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신뢰하는 경우가 많다. 임계밀도가 넘어야 핵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사람이 모여살아야 여러가지 새로운 일들이 생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감각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천명 만명을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산다고 서울에 대해서 다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인간 감각의 한계내지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의 한계는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점차로 심각해져왔고 오늘날에는 그 심각성을 피할 수가없다. 모여살아도 세상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AI의 발달은 무엇보다 이런 인간의 한계로 인한 것이다. 즉 인간이 직접 데이터를 다 처리할 수가 없으니까 데이터를 가지고 AI를 만들고 그 AI로 또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다.
가장 널리 쓰이는 AI인 네비를 생각해 보자. 네비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그걸 안 쓰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작이 불편하다같은 것은 둘째치고 자신이 길을 더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실시간 교통정보같은 것을 반영해서 네비가 길을 찾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슬슬 AI에게 항복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길을 잘 아는 사람도,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도 보이지도 않는 저 앞길의 실시간 교통상황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비를 써서 길을 찾기 시작하자 이제 인간은 길을 외우려고 하질 않게 된다. 어차피 앞으로도 길은 AI에게 부탁할텐데 내가 길을 외우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이같은 것은 어떻게 네비라는 AI가 운전자의 일부로 변해가는 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인간의 직접적인 감각신호를 우선시하고 네비를 신회하지 않던 운전자는 차차 네비에 대한 신뢰를 쌓아간다. 그리고 그 신뢰가 커질 수록 이제 네비는 운전자의 몸의 일부처럼 된다. 그것은 실시간 교통정보같은 새로운 감각신호를 포함해서 길을 찾은 정보를 보내주는 새로운 감각기관이고 신피질이다.
이것은 물론 매우 초보적인 것이며 유사한 변화는 많다. 음식점 추천 프로그램에서 맨 위에 뜨는 음식점을 선택하고 있는 당신은 사실 그 음식점 추천 프로그램을 당신의 일부로 통합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정말 시작에 불과하다. 이것과 비슷한 변화는 금새 아주 많아질 것이다. 챗GPT가 사람들을 놀래킨 지가 겨우 3년정도인데 이미 AI는 너무나 말을 잘한다. 인터넷에서 이런 포스팅이 있는 걸 봤다. 한국의 대학을 그 캠퍼스 크기가 큰 순서로 나열해 보라고 AI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AI는 이런 정보를 금새 준다. AI 역량이 강한 미국의 회사를 10개 보여달라고 하면 바로 그런 회사들을 보여준다. 내 아들의 생일을 위한 맞춤형 생일파티 음악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금새 만들어 준다. 예전같으면 아주 어려웠을 일을 이미 AI는 척척 해내고 있다.
여기서 신기하다던가 편하다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신뢰다. 우리가 뭔가를 크게 신뢰하면 할 수록 그것은 우리의 자아에 통합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팔은 태어난 이래 언제나 우리의 뜻대로 움직여 왔다. 그래서 우리는 그걸 그냥 나라고 여기는 면이 크다. 사고로 팔을 잃고 기계팔을 달았지만 그 기계팔이 내 의지대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것이 기계팔이라는 것을 금새 잊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기계팔을 조작한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우리가 뭔가를 조작한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아직은 100% 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는다는 뜻이다. 지금 나는 타이핑을 하고 있는데 자판을 보지 않고 있으며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신경쓰지 않는다. 내가 글자를 떠올리면 저절로 내 손가락이 자판을 두들기고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나는 글을 쓰는 데 집중하지 자판은 무시한다. 자판은 거의 내 몸의 일부나 마찬가지다.
AI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특히 인간과의 연결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AI를 통해 많은 것과 융합될 것이다. AI는 인간과 다른 시스템을 이어붙이는 접합부가 될 것이다. 이런 미래를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건 걸어서 갈 수 없는 곳을 자동차를 타고 운전해서 가는 것과 다를게 없다. 미래에 AI가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현대사회에서 차를 안타고 걸어서 생활해도 생활이 될거라고 믿는거나 같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생활이 불편한데 AI가 없는 사람은 마치 현대 사회에서 글자를 모르는 문맹처럼 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활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우리를 둘러싼 AI들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이 신뢰가 AI를 우리 몸의 일부처럼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 그리고 직접 대면의 소중함이 결국 우리의 감각신호를 신뢰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사실을 합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결과적으로 우리는 점점 물리적 세계를 떠나게 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물리적 감각신호를 덜 중요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AI를 통해 접촉한 것을 더 믿을 수 있는 정보로 여기게 될 것이다. 왜냐면 AI가 그 사람에 대해서 내가 직접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확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우리가 직접 대면을 완전히 무시하게 될거라는 뜻은 아니다. 자동차가 발전한다고 안방에서 화장실까지 차를 타고 가는 건 아니다. 미래에도 여전히 많은 경우 전통적인 인간의 감각을 활용한 생활이 남을 것이고 그게 편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이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당신은 그 회사의 로고가 멋지다거나 그 회사의 사무실이 멋지다는 이유로 그렇게 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회사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모아서 그 회사를 판단할 것이다. 그 회사의 매출이 어떻다던가 그 회사주식의 PER가 어떻다던가하는 식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하나 하나가 하나의 기업과 비슷할 것이다. AI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혼자서도 지금과는 달리 아주 많은 것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1인 기업의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간은 지금도 복잡한 존재이지만 AI 시대에 훨씬 더 복잡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물론 그 사람을 물리적으로 직접 대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그게 그 사람을 아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가장 위대한 비전가를 만나면 그 사람이 교회에 걸려 있는 예수님 얼굴같은 걸 가지고 있을까? 가장 위대한 사업가는 정말 그에 걸맞는 외모를 가지고 있을까? 복잡한 것은 복잡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어떤 기업을 평가하듯 그 사람에 대한 비물리적인 정보들을 모으고 판단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물론 당신의 AI 비서가 해줄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물리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강하게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사실 우리가 우리의 감각 기관이 만들어 내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믿음이고 결국 우리의 감각신호만큼 믿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은 정보가 폭증하는 시대에 그리고 그 정보를 A가 분석하는 시대에 흔들릴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과학혁명의 시대에도 있었다. 우리는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 못한다. 태양이 도는 것같다. 그렇지만 왜 우리는 지구의 자전을 믿는가? 왜냐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신호보다 더 정밀한 측정에 근거한 과학이론을 믿기 때문이다. 정보처리의 방식이 바뀌면 해석이 바뀐다. 유령이 절대로 없다고 믿는 사람은 유령을 보게 되어도 그것은 착시이며 자신의 정신이 문제가 있다고 믿을 것이다. 유령의 이미지라는 시각정보를 믿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은 우리는 정보가 만들어 내는 세계에 산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획기적으로 효율적인 새로운 정보처리 기관이 생겨나고 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AI는 새로운 감각기관이고 새로운 신피질이다. 그런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기관의 정보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것은 아닐까? 결국 그건 그저 정보의 일부일 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즉 직접 보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은 점점 약해질 수 있다. 어쩌면 미남미녀에 약하고 성형을 했니 안했니하고 떠드는 일도 사라질지 모른다. 지금의 감각기관이 말해주는 것이 곧 실체라는 생각은 과학의 시대에서보다도 더욱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AI는 훨씬 더 많은 정보에 기초한 분석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를 때에도 우리는 AI를 믿을 것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결국 정보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예나 지금이나 가상 세계다. 그리고 우리가 정보를 얻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질 때 그 세계는 달라지게 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세상에 산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과학 이론이 만든 세상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세계관은 고대의 세계관과는 크게 다르다. 미래시대는 이 점이 보다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세상일 것이다. AI가 발달하고 우리가 그것을 더 많이 쓰게 될 때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세계에서 새로운 신피질과 새로운 감각기관을 가진 새로운 인간으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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