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나 원주는 관광도시가 아니라서인지 인구로 해서 자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작은 속초나 강릉보다도 중앙번화가는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충주 시립도서관을 나와서 걸어본 충주 시내는 별 것이 없었다. 도서관 옆쪽의 자유시장은 낮시간이라선지 굉장히 한산했고 충주무학시장쪽이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나의 도시를 제대로 보고 느끼는 일이란 당연히 하루 이틀로 될 일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과 걷는 길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사실 충주에는 호암호라는 아주 멋진 호수가 있다. 지나가면서 호암호를 보면서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사진을 찾아보니 역시 아주 멋진 곳이었지만 오늘은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수주팔봉 야영지에 가보기로 했다. 수주팔봉 야영지는 차박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명한 곳인데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컴컴할 때 도착해서는 자기 바쁠 것이라 여러가지 유혹을 접고 나는 수주팔봉 야영지로 향했다. 수주팔봉 야영지는 충주시립도서관에서 10km정도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다.
도착해보니 평일인데도 수주팔봉 야영지에는 많은 차들이 캠핑을 하고 있었다. 차를 대고 주변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니까 이게 수주팔봉이로군하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곳이다. 다만 이번 여행의 주제는 번잡한 것보다는 좀 조용한 걸 추구하는 것이라 이 차들이 하나도 없고 이 자갈밭에 나혼자 있다면 정말 멋진 곳이 될거라는 생각이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내 욕심이다.
수주팔봉에서의 밤을 보내고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요즘은 아침 산책을 하는 것이 일과다. 그건 바로 아침 산책을 하면 그 길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멋진 경치속에서 홀로 있는 것은 굉장히 감동적이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에서 아침 세수와 면도를 하고 좋았지만 차들이 많은 수주팔봉을 떠나서 괴산 산막이옛길로 향했다. 이 길은 전체 길이가 왕복 7km정도 되는 길이다. 산막이길 입구부터 산막이 나루터까지의 길이 그정도다. 하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길이라서 약간은 등산하는 느낌이 들고 따라서 생각보다 길게 느껴진다. 나는 중간에 사진도 찍고 물멍시간도 가지면서 두 시간에 이 길을 걸었다.
산막이옛길이라는 이름이 좀 이상했는데 알고보니 이상할 것이 없다. 산막이마을이라는 곳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여행길에 야동휴계소라는 곳이 있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게 뭐야라고 자세히 봤더니 그 동네의 이름이 야동리였다. 산막이 옛길의 중간에는 소나무 출렁다리라는게 있다. 그런데 이게 아주 작아서 마치 놀이터의 장난감 같다. 나 혼자 지났는데도 상당히 흔들렸는데 이걸 단체로 지나면 난리법석이 날것같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지만 좀 위험하고 그리 편하지는 않다. 그냥 우회해서 걸어가도 된다.
아침 일찍 8시부터 산막이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장사를 하는 분도 한분말고는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오르막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내 체력이 생각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느꼈다. 겨우 요정도 거리인데도 숨이 가쁘다. 걷다보면 괴산호 건너편에 데크길이 보인다. 최근에 완성했다는 산막이호수길인데 문제는 주말과 공휴일이 아니면 운영을 안한다고 한다. 운영을 안해도 내가 그냥 걸으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산막이옛길을 따라가서 호수를 건너가야 호수길로 갈 수 있다. 결국 배가 운영을 안하면 갈 수 없다는 뜻이라 이번에는 둘레길을 걷지 못하고 산막이 옛길을 왕복하는 길이 되었다. 즉 갈 수 있다면 산막이옛길과 호수길을 이어서 원형둘레길이 될수 있을 것이다. 안해봐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산책의 종착지는 나루터였다. 나는 아무도 없는 나루터의 끝자락에 가서 앉았고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횡성호수길이 생각난다. 이렇게 습득한 평정심은 번화한 도시로 가면 금방 깨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따금 충전하든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를 가져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도 사람이 북적이는 때에 오면 느낄 수 없는 감동이다.
5월의 한국은 아름답다. 차를 달리고 길을 걸어보면 내가 산책을 하는 나름 유명한 곳들이 아니라도 온갖 나무와 풀들이 나를 좀 봐달라고 하는 것같다. 길가에 하얗게 핀 이팝나무 가로수만 봐도 매우 아름답다. 고개 하나 넘을 때 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도서관은 다르다. 아름다운 도서관은 그렇게 흔치 않다. 괴산 시내는 상당히 깔끔했다. 여기도 촌이라고 부를 곳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괴산은 물론 충주나 원주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인구 86만의 청주로 향했다. 청주역시 딱히 유명관광지는 아니지만 인구가 백만에 육박하다보니 그래도 성안길같은 중심번화가가 발달하고 맛집 거리가 있고 도서관이 훌룡하다. 오늘 내가 들릴 곳은 그래서 청주시립도서관이다.
어떤 도시가 훌룡한 도시인가? 역시 내가 보기엔 산책로가 좋고 도서관이 좋은 도시가 좋다. 내가 그래서 세종과 전주를 높이 평가한다. 여행을 하면서 도서관에 들리니 여러가지 이점이 많다. 공짜 와이파이로 데이터도 좀 아끼고 글을 쓰면서 여행에서 생각했던 것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기록을 해둘 수도 있다. 도서관에 가면 싼 음식을 파는 매점들도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어쩌다 보니 책이 얼마나 있는가를 확인하는 기준이 된 세가지를 말해보면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있고 대한민국철학사도 있다. 내 책은 철학을 하지 않는 닭만 있었다. 이제 여행기를 다 썼으니 다시 출발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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