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 도서관이 좋아서 내내 머물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다. 마냥 편안하게 있고 싶었지만 차박을 하며 여행하려면 잘 곳을 구해야 하는데 원주처럼 큰 도시는 밤새 차를 새워둘 곳을 찾기 어렵다. 미리내 도서관 주차비가 무료라서 도서관에 차를 세우고 도서관을 내내 이용하다가 자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나같이 주차장을 많이 이용했는지 밤에는 주차 안된다고 써있다.
그래서 일단 무위당 기념관도 보고 원주 시내도 볼겸해서 시내로 나왔다. 차를 중앙거리 시장 주차장에 세우고 길을 걸으니 이게 원주의 중심거리이기는 한 것같은데 영 시골장터 느낌이 세다. 원주는 사실 강릉보다 훨씬 큰 도시다. 원주의 인구는 36만으로 강릉이나 충주의 21만보다 절반은 더 크다. 그런데 그 중앙 거리가 무슨 어디 시골읍같은 느낌이 든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시장으로 보건 중앙 번화가로 보건 뭔가 좀 재미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무위당 기념관을 찾아가 보니 문이 잠겨있다. 찾아 오는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모처럼 검색해서 찾아왔는데 아쉽다. 원주 시내에 실망한 나는 마트를 찾아서 저녁으로 먹을 것을 샀다. 그리고 내일 아침에 걸을 소금산 출렁다리 트레킹 길을 향해 떠났다. 원주 외곽에 있는 소금산 그랜드 벨리에는 아주 큰 주차장이 있고 화장실에 전기차 충전소까지 있다. 주차비도 무료다. 나는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서 충전을 하면서 차박준비를 했다. 내가 주차한 곳은 케이블카 주차장이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시설을 전부 이용하면 입장료가 1인당 만팔천원이나 한다. 트렉킹 코스도 1인당 만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가격이 말이 안되는 건 아니다. 가보면 정말 돈 많이 썼겠구나 싶은 시설이니까. 다만 이 개발이 최선인가는 약간의 의심이 남는다. 시설이 열리는 것은 아침 9시다. 나는 다음날을 기약하면서 차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자다가 일어나서 자존감에 대한 글을 하나 쓰고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길을 떠났다. 이 트레킹 코스는 주차장에서 출발해서 돌아오는데 까지 두시간 정도가 걸리고 8km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이게 3시간을 걸었던 횡성 호수길보다 다리는 더 지친다. 왜냐면 계단을 아주 많이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다해서 한 800계단은 되지 않을까? 처음에만 해도 일단 575계단 정도는 올라야 한다. 이게 싫으면 최근에 만들어진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나야 돈도 아낄겸 운동도 할겸 걸었다. 못걸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 오르고 나면 다리에 힘이 좀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시 한번 결론적으로 말하면 소금산 트레킹 길은 가볼만한 길이다.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마치 멋진 동양화에 스포츠카 그리고 큐피드 그린 것같은 느낌 때문에 그렇다. 출렁다리며 절벽 잔도는 매우 볼만하다. 하지만 사실 그 길을 걸으면 자연보다 그렇게 인위적으로 설치한 인공구조물이 더 눈에 많이 들어온다. 경치는 평범한데 거대한 구조물이 하늘을 나는 숲속 산책길을 만든 느낌이다.
두 개의 출렁다리와 절벽 잔도길을 끝내고 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게 된다. 이것만 봐도 돈을 내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인공구조물이 더 눈에 들어 온다고 해도 풍경도 훌룡했고 인공구조물들이 워낙 대단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운동도 잘했고 볼거리도 봤으니 괜찮았다는 생각을 한 나의 뒤통수를 친 것은 정작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서 주차장쪽으로 빠져 나올 때였다.
정해진 코스대로 갔을 때 나는 내가 이런 멋진 동양화같은 풍경속에 있었다는 걸 잘 몰랐다. 아마 이곳을 이렇게 개발하기 전에 고요하게 흐르는 강변에서 이 절벽들만 봤을 때에도 사람들은 여기 참 좋다는 말을 절로 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개발하고 정해진 대로 걸으니까 정작 가장 멋진 본래의 풍경은 안보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풍경만 보였다. 나는 처음에 이 광경을 보고 산을 올랐으면 감동이 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걷는 방향을 반대로 하면 그럴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운영의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길을 걸으면서 중간에 나왔던 그리스식 정원이 생각이 났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같은 기둥과 큐피드 동상같은것으로 꾸며놓은 정원은 이 동양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좋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좋다. 안가본 분들은 가보면 좋겠다. 좀 더 잘 개발해서 입장료도 이렇게 안들고 보다 다른 이미지를 가지게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은 들지만 볼거리가 있는 산책길이었다. 다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횡성 호수길의 감동같은 건 좀 부족하다. 인위적인 면이 너무 세서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충주시립도서관을 향해 달렸다. 50km정도의 거리다. 나는 이번에 충주에 처음오는데 생각보다 번화했다. 확실히 나는 내가 안가본 도시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같다. 그리고 충주시립도서관도 상당히 훌룡하다. 오래되었지만 잘지었고 규모도 크다. 나는 지금 충주시립도서관에 앉아서 이 글을 쓰는 참이다. 이 도서관은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없고 내 책은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만 있으며, 대한민국철학사는 있다. 어딜가나 이 책은 있다. 좀 부럽다. 어쨌건 그래도 이만하면 책이 좀 있는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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