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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키워드 여행

속초 영랑호 둘레길

by 격암(강국진) 2025. 5. 10.

결국 춘천을 떠나 속초로 왔다. 춘천에 하루 더 머물까하는 생각도 있었다. 자꾸 움직이려고 하는 나를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좋았던 춘천을 떠나 속초로 왔다. 이번 여행에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는 왜 자꾸 지금이 좋으면서도 다른 곳을 향해 가려고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충분히 시간을 가져도 되는데 마치 빨리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이득을 보는 느낌을 가진다. 어디 먼 곳에 진짜 좋은 곳과 진짜 휴식이 기다린다는 식이다. 그러나 대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좀 더 머물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진짜가 보이는 법이니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속초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곳은 사우나였다. 카카오맵에서 사우나를 치고 리스트 맨 위의 속초 해수 피아 찜질방을 골랐다. 그런데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지만 영 모든 것이 별로였다. 사우나만 하는데 만원이라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졌지만 그거야 요즘에 오른 물가 때문이라고 해도 건물도 시설도 낡았고 탕도 낡았다. 오랜만에 목욕하고 머리감는 것이 기분 좋았지만 이런 사우나를 리스트 맨위에 추천하는 카카오맵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찜질방에서 자는 것보다 테슬라 차박이 더 편할 거라는 내 생각이 옳았다. 

 

 

그래도 기분좋게 목욕을 마치고 이번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속초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우나에서 속초 도서관은 1km정도의 거리밖에는 안돼서 차는 사우나에 세워 둔 채 도서관까지 걸으면서 거리 구경을 했다. 속초의 집들은 깔끔하고 예쁘다. 인구 8만밖에 안되는 도시지만 속초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좋은 도시다. 다만 그래도 결국 관광밖에는 없는 도시라선지 인구가 차츰 줄고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속초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속초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나 보다. 

 

 

이번 여행의 테마는 이사간 것같은 여행이므로 마트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는 것이 어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기분이 좋다. 관광객이 갈 것같은 장소는 멋지지만 자극적인 불량식품같다. 하지만 도서관에 와서 글이라도 하나 쓰면 나는 속초 시민이 된 것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시립 속초 도서관은 시설이 깔끔하다. 와이파이도 잘된다. 그리고 사서가 친절하고 기분좋은 표정을 짓고 있다. 1층에는 카페같이 편안히 휴식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다만 주차는 어렵고 책이 아주 많은 것같지는 않다. 내가 쓴 3권의 책 중에 가장 오래된 책인 철학을 하지 않는 닭밖에 없다.

 

글을 쓰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나쁜 기억력 때문인지 나는 글을 써서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적어 놓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머리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뭐가 되건 도서관에 앉아 한편의 글을 쓰고 나면 나는 마치 정신의 목욕을 한 것같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같다. 사우나의 이발소에서 노인들이 하는 말 소리에 떠오른 생각을 어찌저찌 적어놓고 나니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안하다. 

 

 

도서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이마트로 향했다. 속초 이마트는 평이 좋아서 내가 자꾸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봐야 마트일 뿐이지만 현지인들도 회를 먹고 싶으면 마트에서 사먹는다고한다. 아내는 좋은 걸 먹으라고 하지만 이 여행은 그런 여행은 아니다. 이마트에서 고르고 골라 할인하는 햄버거를 샀는데 그만 나오다가 어묵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걸려서 쓸데도 없는 걸샀다. 이런 걸 피해야 한다. 티끌을 모으다가 태산이나 바위는 아니더라도 돌멩이가 쑥 빠져나가면 앞에서 절약한게 도움이 안된다. 저녁거리를 마련한 나는 사우나 앞의 차로 향했다. 차 안에서 이젠 휴식을 좀 취해야 겠다. 아무래도 비오는 거리를 쏘다니는 건 오래하기가 어렵다. 

 

사우나 앞에서 좀 휴식을 취하다가 차를 영랑호의 주차장으로 옮겼다. 오늘밤 잠잘 곳은 그래서 영랑호 주차장이다. 주차장에 도달해 보니 날씨 때문인지 차한대 없다. 속초에는 두 개의 호수가 있다. 하나는 청초호고 또 하나는 영랑호다. 그런데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청초호라서 영랑호는 가본 사람이 적다. 나도 속초에 아주 많이 왔었지만 영랑호에는 처음 와봤다. 그러나 와보니 영랑호도 굉장히 잘 다듬어 놓은 좋은 호수였다. 일단 청초호와는 달리 한바퀴 둘레길을 걸을 수가 있다. 그것도 호수가에 아주 가까이 좋은 길들을 따라 말이다. 청초호 주변은 관광지가 되어버려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식당이 많고 재래시장에도 가까워서 좋은가 하면 반대로 호젓하게 한바퀴를 걸을 수는 없다. 영랑호는 한바퀴를 도는데 약 8km 정도의 거리다. 길이 평탄하고 예쁘게 다듬어 놓아서 걷기에 어렵지 않다. 걷다보니 나무들이 대부분 벗나무였다. 그래서 벗꽃이 피는 계절에는 축제도 하는 모양이지만 지금은 벗꽃계절이 아니다. 대신에 철쭉들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오늘의 일기예보도 비지만 아침에는 비가 좀 멈춘다고 해서 나는 아침 6시부터 호수 주변을 돌았다. 우산은 없이 방수가 되는 점퍼로 머리를 덮고 영랑호 주변을 걸었다. 걷는 것은 생각을 정리하기에 도움을 준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때문에 극한의 도보여행을 하면 더욱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걷는게 나쁠거야 없지만 뭐든지 적당한게 좋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걸으면 다리나 허리생각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못한다. 

 

영랑호 주변은 자전거 타기도 좋은 길이고 데크길도 예쁘게 있었다. 그 길을 혼자 걸으면서 아내 생각을 했다. 해외 여행 중인 아내는 카톡으로 이런 저런 메시지를 보내온다. 거의 지구 반대편으로 가버린 아내와 카톡을 하는 것은 마치 저승에서 오는 카톡을 받는 것같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아내와 계속 카톡을 주고 받고 있어도 이렇게나 거리가 머니 나는 마치 홀아비가 된 것같기 때문이다. 내가 걱정해도 내가 직접 아내에게 뭔가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내와 함께 였다면 하지 않을 선택을 하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좋은 곳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면서 내가 혼자 산다면 나는 이렇게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이게 진정한 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결국 환경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산다. 그녀는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환경중의 하나이니 그게 사라진 지금 나는 달라진 나를 발견할 뿐이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내가 있었을 때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영랑호 일주를 마치고 세수를 해서 몸을 좀 다듬은 다음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노트북으로 글도 쓰고 처리할 일들도 좀 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나면 나는 다음 일정을 생각해 볼 것이다. 이 글도 다시 속초시립도서관에서 쓰는 것이다. 거리를 쏘다니다가 도서관에 앉아서 몇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훨씬 더 편안해 진다. 역시 멈춰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맛난음식, 멋진 카페, 멋진 경치도 좋지만 주민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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