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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키워드 여행

길 위에서 (와코시에서 시모노 세키까지)

by 격암(강국진) 2015. 2. 23.

이사란 당연히 늘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해외이사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아주 좋다고 생각되지만 자동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고민이 늘었다. 그래도 나와 아내는 어지저찌 대충 완벽하게 와코시에서 시모노세키까지의 긴 드라이브를 마쳤다. 오늘은 드디어 한국으로 떠나는 배를 타는 날이다. 우리는 윙 인터네셔널이란 비지니스호텔에서 작은 방 두개를 잡아 숙박을 하고 있다. 


나오기전에 여러가지 노력끝에 드디어 빈집이 되어버린 집의 사진을 찍었다. 집은 낡았다. 거기 살았던 나도 그만큼 낡아졌으리라. 출발하기 5분전까지도 쓰레기를 버리는 작업을 하는 바쁜 일정이어선지 특별히 깊은 감회를 느끼게 되지는 않았다. 몇년이나 여기 살았는데도 그저 시원하다는 느낌이었다. 정말 떠날 때가 되었던가보다. 하지만 언젠가 이 빈집 사진을 보면서 나는 와코시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와코시가 영원히 고향처럼 남을 것이다. 





첫날의 여정은 오사카까지 6백킬로미터를 조금 못되게 달리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사카의 난바호텔에 묵었다. 그리고 다음날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방문 했다. 다시 길을 나서서 시고쿠를 관통하는 길을 따라 4백킬로 그리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또 6십킬로 정도를 달려서 벳부에 도착했다. 배를 타고 시고쿠에서 뱃부쪽으로 넘어 올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마지막 장거리 드라이브는 벳부에서 여기 시모노세키까지 오는 130킬로미터 정도의 여행이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드디어 시모노세키의 호텔에 투숙하고 한국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는 새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산다는 일은 언제나 적어도 어느 정도는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이 밀고 밀리는 과정이다. 익숙한 것들을 모두 밀쳐내어 버리는 것은 위험하고 피곤한 일이다. 아이들에게도 나쁘다. 그래서 우리는 남들이 다 한 여행을 다시 반복하는 것 같은 여행을 전혀 안할 수는 없다. 그런 여행이 좋은 적은 별로 없었다. 때로 여행은 너무 빨라 진다.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고 어떤 때는 늘어난 욕심때문에 즉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 더 보여주겠다는 욕심때문에 그렇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해보지 않은 것을 천천히 하면서 의외의 것을 만나는 즐거움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것과 친구가 되기 어렵다. 그저 소유하고 지배하게 될 뿐이다. 


욕망이란 일단 일어나고 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만다. 가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면 그걸 충족시키는 것 자체가 기쁨이 된다. 그래서 마음이 차분해 지고 나면 애초에 그것이 그렇게 까지 좋을 일은 아니었는데도 그래도 난 가보고 싶었으니 가본 걸로 기뻤다라는 식이 되고 만다. 



오사카 난바 비지니스 호텔


이러한 과정은 언제나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기묘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남들은 불에 손을 집어넣어보았다더라 하는 것때문에 나도 불에 손을 집어 넣고 싶어지는 식이 된다. 불에 손을 집어넣으니 손이 아프다. 그런데 아픈 손을 잡고도 우리는 그래도 나는 불에 손을 넣어보고 싶었는데 해봤으니 좋았다라고 말하는 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어리석은 짓을 하고 얼마나 자주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합리화덕에 이런 식의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일이 쉬워진다. 죽도록 희생해서 만든 돈을 허무하게 써버리고 다시 희생과 고생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나는 그걸 해보고 싶었는데 해봤으니 좋았다라는 말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이 합리화는 특별히 잘못된 것은 없다. 그러나 특별히 옳을 것도 없다. 사실 종종 슬프다. 


오사카에서는 호텔이 난바거리와 가까운 이유로 도심의 밤에 나가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한껏 밤의 기운에 도취하여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1차 2차로 맥주를 마시러 다녔다. 타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를 먹고 꼬치요리를 먹었다. 오사카의 밤거리는 한적한 곳은 쓸쓸하게 느껴지는 곳도 있었지만 제일 번화한 곳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린 막내로서는 평생에 처음 이렇게 1차니 2차니 하고 술을 마시는데 따라 간 것이었는데 왜 저녁식사를 두번이나 연거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훗날의 일이지만 시고쿠를 관통하면서 사누키 우동 순례를 조금이라도 해보자고 해서 우동을 연거퍼 두번이나 먹었던 적도 있다. 막내는 여행을 떠나니까 점심을 두번 먹고 배가 불러서 저녁을 안먹는 이런 일이 흔해 지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시고쿠의 와라야 우동집에서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애초에 아이들을 위해서 간 것이지만 이제는 신사같은 것을 질리도록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벳부의 지옥온천 순례와 마찬가지로 재미있고 정성을 들였다는 느낌이지만 정이 들지는 않으며 때문에 한번 봤으면 되었지 두번 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에너지도 돈도 너무 아까울 것같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결국 우리는 살아있는 것에 특히 인간에게 정을 준다. 우리가 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그래서 인간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문화다. 그런데 크고 거대하게 만들어진 테마파크는 정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그저 소비하는 행위같다. 인간을 느끼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정을 느끼게 하는 문화일까? 나는 음식의 예를 들었다. 음식은 대개 기계가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초라한 우동이나 찐빵 한접시라도 그 장소를 방문한 나를 위해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음식에서 우리는 인간을 느끼게 되기 쉽고 그러다보니 음식문화는 우리에게 정을 느끼게 하기 쉽다. 토착음식을 개발하는 일이 지역자치단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무슨 지방의 지역맥주가 맛있다더라라는 말이 있으면 그곳에 가서 맥주한잔 먹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먼 길을 가는 것이다. 



벳부의 지옥온천


오사카나 시고쿠의 어느 가게에서 먹은 오코노미야키나 우동은 때로 우리에게 강렬한 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그 장소에 자꾸 다시 가보고 싶게 만들고 그 장소가 변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려줬으면 하게 느끼게 만든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정을 느끼기 어려워 지는 것들을 더 많이 만드는 것같다. 적어도 내 기준으로는 말이다. 식당이라고 해도 어설프게 외국을 흉내낸 것 같은 화려함만 있는 곳이라면 그렇게 되기 힘들다. 그런데 세상은 여기저기 자꾸 새로운 곳을 보러다니는 뜨내기 손님들을 모으는 일에 광분한다. 그러다보면 정따위는 있기 힘든 것들만 생긴다. 모든 것이 거품같다. 


이번 여행은 거품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오사카의 밤거리는 화려했지만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곳이 가게는 많이 있는데 손님은 없어서 보는 내가 안타까워질 정도였다. 나는 온천도시로 유명한 벳부에 와서도 그걸 느꼈다. 우리는 벳부역 근처에서 잠을 잤는데 그 근처는 도처가 쓸쓸한 풍경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온천도시는 쿠사츠 온천이다. 쿠사츠와 벳부를 비교하여 어디가 좋다나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뭘 말하는가에 따라 다른 이야기지만 쿠사츠는 벳부보다 훨씬 작고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쿠사츠는 작은 마을을 보는 느낌이고 벳부는 큰 도시같다. 그러나 전성기를 지난 탓인지 그렇게 커진 몸통을 모두 먹여살릴정도로 벳부에 사람들이 북적이지는 않는다. 오사카의 밤거리처럼 가장 번화한 곳으로 가면 여전히 번영을 볼 수 있지만 좀 차분히 보면 거품에 휘둘린 나머지 도시가 망가졌다는 느낌도 받는다. 벳부도 좋고 쿠사츠도 좋지만 아무래도 한번 더 가본다면 쿠사츠가 나는 마음에 든다. 중앙 광장을 천천히 돌면서 튀긴 만두나 닭꼬치 같은 것을 먹었던 것이 정의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여행은 이제 마지막이 되었다. 시모노세키에서는 짐은 많고 할일도 많아서 어딘가에 가볼수는 없을 것같다. 어제는 그래도 일본에서의 마지막밤이라고 아내와 함께 술집에 갔었지만 시모노세키의 음식에 실망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유명한 어시장 같은 곳에 가지 않으면 즐기는 일이 쉽지 않은 것같다. 


방에 돌아와서 한국의 집이 정리가 되면 뭘해볼까 하는 생각이 언뜻들었다. 내 머리에 문득 떠올라서 내가 지금 한번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통밀빵을 만드는 것이다. 아내가 오븐을 산다고 하니 나는 그걸로 빵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집은 정이 흐르는 집이면 좋겠다. 통밀빵 만들기가 쉬워서 먹을 만하다면 새로운 집에 흐르기 바라는 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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