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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성장에서 조화로 : AI 시대를 위한 새로운 비전

by 격암(강국진) 2025. 7. 26.

요즘 세상을 보면 참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게 얽히고설켜 있다. 한쪽에선 자유무역을 외치며 글로벌 시장을 더 키우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자국민의 일자리를 지키자고 아우성이다. 그런데 이 싸움 자체가 낡은 프레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무역이냐, 보호무역이냐를 놓고 다투는 건 마치 20세기 공장 굴뚝에서 연기 피어오르던 시절의 논쟁을 다시 끄집어내는 느낌이다. 세상은 이미 그때와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생각해보면, 자본주의는 늘 새로운 시장을 찾아 헤맸다. 공장을 짓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소비를 부추기며 끝없이 확장해왔다. 근대적 비전의 핵심은 바로 ‘성장’이었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고, 더 많이 소비하면 행복이 따라온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그 비전이 한계에 부딪혔다. 전 세계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묶였고, 개척할 새로운 소비시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같은 신흥 시장도 이미 글로벌 공급망에 얽혀 있다. 생산성은 계속 높아지는데, 소비가 따라가지 못하니 과잉생산의 문제가 터져 나온다. 중국의 철강이나 태양광 패널이 시장을 뒤덮는 걸 보면, 이 과잉이 어디로 갈 곳이 없다는 게 명확해진다.

 

이 와중에 미국 같은 나라는 보호무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국 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관세를 올리고, 중국산 전기차나 반도체를 막으려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답일까? 글로벌 공급망은 이미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국경을 막는다고 문제가 깔끔하게 풀리지는 않는다. 컴퓨터 한 대를 만들려면 한국의 반도체, 대만의 칩, 일본의 부품이 다 필요하다. 공급망을 함부로 끊으면 자국 경제에도 타격이 온다. 미중 무역전쟁 때 미국 소비자들이 더 비싼 물건을 사야 했던 게 그 증거다.

 

더 큰 문제는 기술의 발전이다. 인터넷과 AI는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그것들은 무엇보다 생산성을 점점 더 빠르게 올린다. 사람들은 생산성이 좋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앞에서 말했던 생산과 소비의 문제를 점점 더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론적으로는 과잉생산의 문제를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생산능력의 증가가 만들어 내는 자본주의 시장의 근원적 문제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트럼프대통령이 추구하는 보호무역은 비현실적이다. 세계가 네트웍으로 긴밀히 연결된 시대에 국경을 기준으로 관세를 매기거나 무역을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소프트웨어나 데이터 같은 디지털 경제는 이미 국경을 초월한다. AI가 만들어낸 코드나 디자인은 세관에서 붙잡을 수도 없다. 마치 물이 새는 양동이처럼, 국경은 점점 더 구멍 난 장벽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유무역도 이미 절대적 선은 아니다. 자유무역은 효율성을 높였지만, 그 이익은 균등히 분배되지 않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미국 러스트벨트의 노동자나 유럽의 농민들은 자유무역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불만이다. 한국의 노동자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니 자유무역을 외치는 사람들을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근대적 비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과 정책으로 모두를 아우르려 했던 시도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지면서 한계에 부딪혔다. 필요한 법이 아주 복잡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법을 만드는 속도가 기술과 사회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AI가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던지고, 기후 변화가 국경을 초월한 협력을 요구하는데, 각국은 여전히 자국 이익만 챙기느라 바쁘다. 경제 성장이 계속될 때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성장이 멈추고 불평등이 커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지역주의, 로컬 푸드, 순환경제 같은 움직임은 이런 불신의 결과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움직임들은 퇴행적이라고 여긴다. 새로운 대안에게 경쟁력을 줄 기술적 근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근대가 나쁘다고 한들 근대는 전근대와의 경쟁을 이기고 올라온 문화다. 그런데 다시 전근대와 다름없는 것을 대안이라고 내민다면 그런 대안들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비전이 필요할까? 근대의 키워드가 ‘성장’이었다면, AI 시대의 키워드는 ‘조화’가 아닐까 싶다. 무한한 소비와 확장은 이제 비현실적이다. 자원의 한계, 생태계의 위기를 생각하면, 더 많이 만드는 것보다 더 잘 나누고, 더 효율적으로 쓰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조화는 그저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각성만으로 촉구하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기반에 의해서 추구되어야 한다. 그 기술적 기반이란 물론 AI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AI를 근대적 도구로 인식해서 그것을 생산의 도구로 여긴다. 즉 AI는 근대적 이상에 따라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생산하게 해주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AI는 더 큰 조화를 위한 도구다. AI는 단순히 공장을 더 빠르게 돌리는 도구가 아니라,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낭비를 줄이고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AI는 에너지 사용을 최적화하고, 지역 농민에게 날씨 데이터를 제공하며,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협력해 기후 문제를 풀도록 돕는다. 

 

AI를 매체로 해서 소통하는 사회는 기존의 근대 사회와는 전혀 다른 속력을 가지고 창발적인 조직을 순간적으로 만들어가면서 사회적 문제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왜냐면 결국 그런 조직화나 조직의 운영은 정보처리에 달린 것인데 AI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내가 코로나 사태때 처럼 사회적 위기가 와서 마스크가 필요하다고 하자. 그걸 어떻게 구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나에게 배달해서 올 수 있을까? 그런 문제를 지금은 정부 중심의 중앙조직에서 하려고 한다. 따라서 생산과 물류가 느리다.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기부하거나 자원봉사를 하려고 하는데 그것들이 어떻게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을까? 그런 문제도 지금은 어떤 고정된 조직을 통해서 해결되는데 그 조직을 운영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도움이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된다. 내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을까? 지금은 내가 그것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모아야 했다. 자금과 부족한 기술과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홍보하는 일을 다 하나 하나 해결해야 한다. AI를 매개로 소통하는 지능적인 네트웍은 그걸 더 잘 할 수 있다. AI가 없어도 이미 클라우드 펀딩같은 것이 미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조화로운 세상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새로운 이상을 이해하고 참여하면 그것은 가능해 질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거의 대안이 없다. 지금 이순간에도 근대의 이상은 추락하고 있다. 우리는 물론 더 좋은 대통령이나 더 좋은 법을 만들어서 근대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당장은 살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천천히 생각해 보면 이런 노력은 필요하지만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점점 더 큰 한계에 부딪힐 거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근원적 해결책은 지능적인 네트웍을 건설하고 새로운 이상을 퍼뜨리는 것이다. 지능적인 네트웍이란 AI가 보편화된 세상의 네트웍이다. AI의 대중화는 모든 사람이 AI를 쓰는 시대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저 챗GPT같은 AI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런 AI를 통해서 더 효율적인 소통을 하는 시대를 말한다. 무인도에 7명의 사람이 산다면 그 사람들은 문제 없이 서로 말로 소통하면서 협조하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천만명이나 1억명이라면 어떨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고 플랫폼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같이 사는 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해왔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건 기존의 플랫폼이나 시스템을 통과하지 않고 AI로 무장한 사람들이 훨씬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근대의 한계를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방식이 정말로 작동할 때 우리는 지금의 세계가 상당히 불공정하고 평등과 자유로부터 먼 세계였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왜 누군가는 조각난 하나의 정보로 엄청난 돈을 클릭 한번으로 버는데 누구는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힘들게 살까? 그 근원적 이유에는 정보 불평등이 있다. 그리고 AI는 바로 얼굴을 바꾼 데이터다. AI는 더 넓은 세계로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다. AI의 보편화는 거대한 시스템의 한계로 인해서 생겨나는 불공정을 사라지게 하고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AI의 대중화는 마치 글자를 보급해서 문맹들을 없앤 근대화 시대의 대중 교육 혁신과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AI가 발달하면 그 AI로 이뤄진 네트웍에서 소외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문맹과 같은 처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AI를 대중화하고 AI를 통해서 조화를 추구하는 연결을 만들고 지능적인 망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이 그 지능적인 망으로 가득 찰 때 세상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조화를 가진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가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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