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랜간 가졌던 질문이 있다. 서구 문화컨텐츠 안에서 중세 봉건 질서가 반복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을까? 이 질문을 처음 나에게 던지게 한 것은 SF 장르인데 예를 들어 스타워즈 같은 작품을 보면 미래인데도 세계가 기본적으로 왕국이다. 아쉬모프의 파운데이션도 SF지만 본래 로마흥망사에 영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며 허버트의 듄도 그렇다. 지금의 근대 사회에서도 세상은 공화제인데 은하계 문명이 봉건제라고? 말도 안된다. 일단 이런 질문을 가지고 서구 컨텐츠를 살피면 그런 의문은 커진다. 판타지는 어떤가? 당연하게도 봉건제다. 그리고 언뜻보면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마블코믹스류의 미국 영웅담도 결국은 봉건제적 신화다. 혈통이 중요하고, 보통 인간들의 힘이 아니라 결국 특별한 인간이 세상을 바꾸고 지킨다. 제 아무리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해도 스토리 자체가 힘없는 보통인간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이같은 현실은 서구 문화 컨텐츠가 세상을 지배하는 속에서 너무나 당연시 되어졌다. 그래서 종종 사람들로부터 그것은 그저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이끌어 낸다. 즉 인간 사회의 자연스런 모습이 본래 봉건제라는 것이다. 강력한 리더가 독재하고 귀족층이 지배하는 것이 원래 세상의 자연스런 질서라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런 현실이 굉장히 우려스럽기 시작한다. 근대화가 수백년이나 진행되고 이 세상에 진짜 왕국은 거의 없어진 21세기에도 이런 말이 나오게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에게는 분명 타고난 본성이라는 것이 있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경이다. 즉 인간이 어떻게 사는게 자연스러운가를 결정하는 것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천년전의 기술수준으로는 확실히 봉건제가 자연스러운 시스템이었을지 몰라도 근대화이후 더 빠르게 변하고 복잡해진 세상을 운영하기에는 봉건왕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공화제가 자연스러운 것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기술수준으로는 인간이 사는 자연스러운 방식은 봉건제가 아니라 공화제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런 이야기가 봉건제를 찬양하는 컨텐츠가 범람하는 가운데 망각된다. 그러면서 봉건질서가 인간의 본성에 자연스럽다 운운하는 말이 잘도 나온다.
오늘날은 근대화를 넘어서는 AI 기술의 시대이다.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공화정도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를 찾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정도는 이미 그렇다. 대선이 인터넷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공화정도 영향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기술을 넘어서는 AI 기술의 시대에 공화정을 넘어서는 정치질서를 찾아야 하는데 봉건제에 대한 신비로운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된다는 건 21세기에 나타난 중세인이나 고대 원시인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제트기 조종석에 올라탄 원숭이는 제트기를 추락시킬 것이다. 봉건제의 향수에 젖은 현대인도 비슷한 일을 하지는 않을까?
그럼 왜 문화산업의 현실은 이 모양일까? 세계 문화 산업을 지배해온 선진국들의 역사에 그 원인이 있다. 그들은 단절없이 봉건제를 지나서 근대화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봉건시대의 기득권은 여전히 근대 사회의 기득권으로 상당부분 남았다. 이같은 것은 영국같은 곳에서 엄청난 부동산 재벌들이 알고 보면 대대로 내려오는 귀족가문이라던가 왕가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고 프랑스도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는데 이는 산업화를 하는데 있어서 결국 정치력이나 자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걸 누가 가지고 있었을까? 결국 기존의 귀족계층이다.
그러니까 근대화 이후 공화정이 되었어도 사회적 기득권층은 혈통의 중요성을 말하는 봉건질서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봉건 시대를 미화하고 신비화하는 스토리를 마음껏 퍼뜨린 것이다. 결국 그것이 지식인들과 기득권층의 할아버지의 이야기고 할머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외는 미국을 들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성공할 기회를 준다는 미국도 앞에서 말한대로 결국 봉건질서를 옹호하는 문화컨텐츠를 양산하는 점에서 다르지않다. 그들은 분명 유럽이나 일본과는 다를 지 몰라도 그리고 달랐을지 몰라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21세기 현재를 보면 상당히 보수화되어 있다. 즉 특별한 영웅이 세상을 지키고 구한다는 스토리에 몰두하는, 일종의 우민화컨텐츠에 집착한다. 그같은 태도는 봉건제를 옹호하는 자세와 결이 맞기 때문에 왕이 없었던 미국이지만 미국의 컨텐츠도 봉건 시대 이야기가 가득하다. 미국의 아이들도 아서왕이야기나 디즈니 공주의 이야기같은 것들을 들으면서 크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보다 분명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아주 아주 아주 특이한 나라다. 한국은 식민지 시대를 거쳐서 선진국의 지위에 오른 나라이며 그 나라의 경제규모를 보면 더욱 특별한데 인구 5천만 이상의 나라중에서 라는 전제를 걸면 그런 나라가 한국 밖에 없다. 그리고 오징어게임이나 케이팝 데몬헌터스의 인기가 보여주듯이 한국 문화 컨텐츠는 지금 세계적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식민지 시대를 거쳐서 선진국이 되었다는 역사가 의미하는 바는 그 과정에서 봉건의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뜻이다. 한국은 근대화된 나라지만 조선 시대의 귀족들이 그 자본을 가지고 근대화를 해서 기존의 기득권으로 남은 나라가 아니다. 망국의 역사는 어떤 때는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로 조선의 문화를 철저히 부정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유학적 질서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식의 비판이 한국에는 흔하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보수화되기에는 너무 젊은 선진국이다.
이같은 점 때문에 한국의 문화컨텐츠 안에서는 봉건적 질서의 향수를 느끼기 힘들다. 그나마 요즘은 좀 낫지만 예전에 한국 사극을 보면 조선의 왕이나 왕비는 한결같이 못나게만 나왔다. 아서왕의 전설 따위는 한국 민중에게 통하지 않는다. 분명 한국에도 혈통을 중요시하는 컨텐츠는 있다. 사람들이 소위 막장드라마라고 부르는 드라마들이 그것인데 따지고 보면 결국 회장님의 숨겨진 아이가 어느 날 나타나 혈통에 따라 새로운 회장이 된다는 식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그러나 지금의 한류를 만들고 있는 문화컨텐츠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한국 문화는 일종의 낭만주의적 혁명, 개인주의적 혁명, 르네상스적 혁명을 거치고 급격히 달라졌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한국의 문화컨텐츠가 세계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지금도 이런 분열은 분명히 남아 있다. 그래서 막장드라마를 만드는 공중파 방송은 노인층이나 보고 젊은층은 아예 티비 자체를 안보는 일이 많다. KBS를 보는가, TvN이나 OTT를 보는가는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한류의 주류를 이루는 이 새로운 한국의 문화 컨텐츠안에서는 봉건질서에 대한 향수따위는 거의 없다.
한국문화를 반영했다는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인기도 상당부분 이에 힘입은 것이다. 이 영화속에서 주인공은 특별하지만 특별하지않다. 자신의 상처를 숨기려는 보통 사람의 문제를 가졌을 뿐 아니라 그 힘의 근원도 자기만의 힘이 아니라 팬들의 힘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적 영웅상은 이미 송강호가 나오는 괴물같은 영화속에서 나온바 있다. 엄청난 악과 싸우는 영웅인데 그 힘이 평균이하다. 대단히 정의롭지도 용감하지도 똑똑하지도 않다. 다만 어느 한계를 넘으면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도망가기에는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다.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그래서 평범하지만 나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 이같은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그린 택시운전사, 변호인, 1987같은 영화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거기에 천재나 슈퍼 히어로는 없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할리우드는 마블코믹스의 서사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서사는 기본적으로 근대 사회에도 어울리지 않는 봉건제적인 것이므로 제 아무리 특수한 효과를 더해도 설득력이 자꾸 떨어진다. 영화밖의 현실은 시궁창인데 그게 슈퍼맨이 현실에 있다고 고쳐질 것같지 않다. 진보적이지만 동시에 아주 낡은 메시지인 정치적으로 올바른 메시지를 영화에 더한다고 해도 그 서사가 참신한 서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한국문화의 영향을 받은 케이팝데몬헌터스를 보게된 서양인은 그것이 참신하다고 느낀다. 치유적이라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결국 봉건적 질서에 대한 향수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 집착에 얼마나 많은 보통사람들이 그간 억압당해 왔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알고 보니 특별한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들은 아무 중요성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바로 서양의 카리스마를 가진 록스타 앞에 있는 무명의 군중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이돌은 팬들앞에서 내가 특별하다고 하지않는다.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한다. 우리 같이 역사를 만들어 가자고 한다. 서양에서는 유명 록가수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게 자연스럽다. 한국의 팬덤문화에서는 아이돌이 아니라 팬덤 집단이 정치적인 운동을 알아서 한다. 한국문화는 민중의 힘을 강조한다.
지금은 근대화를 넘어서는 AI화의 시대이다. 이 말은 결국 우리는 공화정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구성하게 될 거라는 말과 같다. 비록 그것이 내년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런 시대에 봉건제에 대한 향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어떤 문화컨텐츠라도 반드시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내가 글의 처음에 말했듯이 다양성의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세계는 봉건제에 대한 향수에 질식할 정도로 과몰입상태다. 그걸 못느끼고 그걸 정상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그렇다. 그같은 스토리들이 지겹도록 반복된다.
이런 현실이 대중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것이 사소하다고 생각되어진다면 이런 생각을 해보라. 과연 진정한 근대화가 봉건제에서 공화정으로의 이행없이 이뤄질 수 있었을까? 여전히 혈통으로 세습되는 왕이 중앙에서 독재하는 정치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진짜 근대화가 가능했을까? 정치와 경제는 결국 심각하게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 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AI 문명을 건설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단순히 기술만이 문제가 되는게 아니라 대중적 의식이 중요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프라를 보급하고 어떤 응용에 먼저 투자될 것인가가 다르다.
이런 시대에 한류는 특별하다. 한국은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상당부분 아픈 과거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봉건제의 역사와 한국만큼 아프게 결별하지 않았다. 이 특별함이 이제 한국의 힘이 되고 있다. 망국은 한국을 끝장내지 않았고 결국 강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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