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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교, AI 환경

인문학, 과학 그리고 AI학

by 격암(강국진) 2026. 2. 12.

1. 인문학의 기원: 신(神)으로부터의 독립

오늘날 우리는 흔히 인문학을 과학의 반대편에 있는 학문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한 **'스투디아 후마니타티스(studia humanitatis, 인간에 관한 학문)'**는 과학과 대립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지식의 중심이었던 '신학(Theology)'으로부터 인간의 영역을 회복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즉, 인문학의 첫 번째 투쟁 상대는 과학이 아니라 신이었습니다.

 

우리가 유학(儒學)을 인문학이라 부르면서도 동시에 유교(儒敎)라는 종교적 틀로 인식하는 혼란 역시 여기서 기인합니다. 학문의 대상이 인간의 도리와 삶에 집중되어 있다면 그것은 인문학적 성격을 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신념 체계로 작동할 때는 종교의 영역에 발을 걸치게 됩니다.

 

2. 과학의 탄생: 일반적 '앎'에서 '엄밀한 체계'로

우리가 지금 '과학'이라 부르는 개념 역시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영어 단어 **'Science'**의 어원인 라틴어 **'Scientia'**는 본래 분과 학문을 따지지 않는 일반적인 '지식'이나 '앎'을 뜻했습니다. 중세 대학에서는 신학이나 논리학조차 모두 '사이엔티아'라 불렸습니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이작 뉴턴조차 자신의 저서 《프린키피아》를 '과학' 책이 아닌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고 명명했습니다. 실제로 '과학자(Scientist)'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인 1833년, 윌리엄 휴얼(William Whewell)에 의해서였습니다. 즉,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별개의 존재로 인식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볼 때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3. 근대 과학의 본질: 수학적 기술과 '의식적인 무지'

그렇다면 뉴턴 이후의 근대 과학은 이전의 지식 체계와 무엇이 달랐을까요? 첫째는 수학적 엄밀성입니다. 자연 현상을 음양오행이나 4원소론 같은 관념적 틀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언어로 기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는 더 중요한 지점인데, 바로 **'의식적인 무지(Conscious Ignorance)'**를 바탕으로 세워졌다는 점입니다. 근대 과학은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중력의 본질)는 당장 알 수 없지만, 어떤 법칙에 의해 떨어지는지는 수학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증명할 수 없는 '공리'에서 출발해 논리의 탑을 쌓아 올리는 수학처럼, 과학은 본질에 대한 질문을 잠시 접어두고 관찰된 법칙에 집중함으로써 거대한 지적 건축물을 완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인문학적 사유와 점점 멀어졌습니다. 1959년 C.P. 스노우(C.P. Snow)가 지적한 **'두 문화(The Two Cultures)'**의 분열은 바로 이 지점에서 극대화되었습니다. 이후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 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두 영역 사이의 거대한 골짜기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4. AI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제3의 길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현재의 AI 발전은 근대 과학의 출현에 버금가는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AI를 '인문학적 관점' 혹은 '공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보려 하지만, 이는 마치 근대 과학이 처음 나왔을 때 그것이 신학적인지 인문학적인지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그런 질문은 과학의 본질을 놓친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AI는 기존의 과학과도, 인문학과도 다릅니다.

 

발견된 법칙: AI는 인간이 논리적으로 설계한 기계라기보다, 데이터 최적화를 통해 컴퓨터가 스스로 찾아낸 '법칙'에 가깝습니다. 그 내부 구조를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근대 과학이 중력의 본질을 모른 채 법칙을 수용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 2024년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사건은 상징적입니다. 이는 AI가 기존 과학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었던 문제(단백질 구조 예측 등)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론'임을 세계가 인정한 것입니다.

 

5. AI학(學)의 시대: 과거지향적 질문을 넘어

우리는 머지않아 인문학과 과학의 차이를 사소하게 여기고, 그 둘을 합쳐 '전통적 과학'이라 부르며 그것과 **'AI학'**의 차이를 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AI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혹은 "AI가 인간보다 지능적인가?"라는 질문은 흥미롭지만, 어쩌면 과거지향적입니다. 이는 과거에 "과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라고 묻던 것과 비슷합니다. 과학의 발전은 그런 질문에 답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질문과 독립적인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며 이루어졌습니다.

 

AI학의 본질 역시 **'문제 해결'**에 있습니다. 모든 학문의 근본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라면, AI는 우리가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과학의 시대가 엄밀한 '측정'과 함께 시작되어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보게 했다면, AI의 시대는 인간이 가진 지적 한계라는 '장벽'을 허무는 것과 함께 시작될 것입니다.

 

6. 결론: 장벽이 허물어지는 시대

우리는 AI에 대해 인문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의미를 따지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시도는 자명해 보이지만 자칫 퇴행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I라는 새로운 눈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우리 앞에 놓인 난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지식의 장벽들이 하나둘 허물어질 때,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진정한 AI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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